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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랑 Aug 10. 2023

짧은 만남, 오랜 따스함.

첫 여행의 온기가 여전히 느껴지는 그곳 Venice, Italy

카타르항공은 팀제로 비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서 매 비행 다른 승무원들이 모여 한 팀을 이뤄 일을 한다. 만 명에 육박하는 승무원이 근무하고 있기에 한 번 만났던 동료를 다시 만나는 일은 손에 꼽을 만큼 어렵다.


매 비행 새로운 동료와 일하는 것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은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에 일터에서 느끼는 단조로움이 줄어든다는 점. 처음 보는 사이이기 때문에 서로 잘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 가급적 서로 지켜야 할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단점은 너무 좋은 동료라면 더 오래 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에 성향이 안 맞는 동료를 만나더라도 '이번 한 번만 보고 말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몇 시간만 어금니 꽉 물면 된다. 국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았던 걸로!





이탈리아 베니스로 처음 비행하던 날, 그날도 처음 보는 동료들과 일을 했다. 처음으로 가보는 곳에 비행을 가는 날은 유난히 더 설렌다. 도착하면 뭘 할지, 어디 갈지, 뭘 먹을지 미리 알아보고 계획을 하기도 하고 그날 비행에서 만난 승무원들과 마음이 맞으면 즉흥적으로 같이 움직이기도 한다. 베니스로 향하던 비행 팀에는 나뿐만 아니라 두 명의 신입 승무원들이 있어서 같이 시티투어를 하기로 했다. 운 좋게 그날 이탈리안 운항승무원이 세 명이나 있어서 초행길이어서 힘들 수 있는 신입승무원들을 가이드해 주기로 했다.


베니스는 물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대운하 옆으로 마치 물에 떠있는 듯 길이 나있고 꼬불꼬불한 길을 걷다 보면 길목마다 멋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수상버스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 가면무도회를 연상시키는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들, 물 위로 떠 있는 백조들. 어느 하나 놓칠 수 없어 눈에 담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많이 걷다 보니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했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이탈리안 캡틴이 맛있는 파스타집이 있다며 앞장섰다. 현지인의 입맛으로 고른 레스토랑이라니! 더욱 기대가 됐다. 모두 고심끝에 메뉴를 골랐고 먹음직스러운 파스타들이 우리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포크에 면을 돌돌 말아먹는 나와는 달리 면을 나이프로 쓱쓱 잘라 포크로 떠먹는 캡틴을 보며 '현지 스타일은 이런 거구나'하고 무릎을 탁 쳤다.



두둑이 배를 채우고 나와 대표적인 명소인 리알토 다리로 향하기 위해 배를 탔다. 불빛들이 물결에 반사되어 도시의 밤이 온통 반짝였다. 이탈리안 캡틴 리알토 다리로 가는 내내 그 다리에 대해 분주하게 설명해 주었고 이야기 들으랴 눈으로는 멋진 야경 담으랴 모두 바쁘게 촉각을 세웠다. 동료들에게 자랑스러운 고국의 문화를 알려주며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던 캡틴. 캡틴 덕분에 정말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배를 타고 한 바퀴 돈 다음 모두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때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숙소까지 가는데 시간이 걸릴거라 차를 타기전에 화장실에 가야했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처음 가 본 외국이었고 저녁이라 어두워 혼자 화장실에 다녀오는 게 조금 무서웠다. 아무리 가까운 화장실이라도 길을 잃을지도 모르고 여러명이 정신없이 움직이다 먼저 가버릴까 봐 걱정이 됐다. 그때 마침 옆에 있던 부기장에게 "나 화장실 다녀올 테니 절대 날 까먹으면 안 돼요"하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부기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떻게 널 잊고 그냥 가니? 걱정 말고 다녀와"라고 했다. 기다려준 동료들 덕분에 맘 편히 화장실도 들리고 편하게 숙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외국인끼리 일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위, 아래 없이 서로를 '동료'로 대한다는 것이다. 격 없이 지내면서도 예의를 갖춰 서로 챙겨주며 동료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첫 이탈리아 베니스 비행이라 관광도 시켜주고 모두 함께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운항승무원들에게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 후로 베니스 비행을 서너 번 더 갔었는데 갈 때마다 첫 비행의 기억을 떠올리면 분이 좋았다. 선뜻 시티투어를 시켜준다고 마음을 내어준 이탈리안 캡틴과 퍼스트오피서. 하하 호호 떠들며 신나게 함께한 승무원들. 한 번 비행하고 스쳐가는 인연이었지만 서로의 기억 속에선 그 장소와 함께 깊숙이 남아 생생히 살아있는 존재가 됐다. 지금도 이탈리아 베니스 하면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 또다시 그곳에 갈 수 있다면 다시금 그때의 우리를 더 가까이서 떠올려볼 수 있겠지? 그런 날이 오기를 조용히 바라며 그날의 추억을 선사해 준 그들에게 마음으로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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