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과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지 Feb 07. 2024

우리는 글을 왜 쓰는가?

책 패티 스미스 <몰입>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되고 그 운명이 패티 스미스를 자신의 창작물로 이끈다.
우연이 모여 운명이 되고 그 운명이 패티 스미스를 자신의 창작물로 이끈다.
어느 모로 보나 이 여정의 족적이 한 걸음 디딜 때마다 읽고 보는 모든 것들에 ‘몰입’하고 ‘헌신’한
패티 스미스의 경건한 태도, 그 Devortion으로 인해 빛난다는 것.

‘몰입’ p.134


먼지의 형태가 비치도록 따듯한 빛이 들어오는

어느 독립서점에서 품에 안고 온 책이었다.

사실은 봄도 아니었던 그날에.


사실 책을 읽다가 패티 스미스의 소설이 시작하는

2장쯤에서 읽는 걸 그만뒀었다.

‘헌신’이라는 단어에서 시작된, 아니 어쩌면

그냥 스케이트를 사랑하는 한 소녀의 몸짓으로

시작된 이야기였는데, 난 자꾸만 그 단어를

거부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어서였나. 너무 역설적이었기 때문이었나 왜였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핑계하는 틀에 던지고

다시 오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빙하의 끝을 눈앞에

그리며 불가침의 빙벽에 둘러싸인 은밀한 온천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간다.’


난 이미 블랙커피를 두고 펜을 바삐 움직이는

패티 스미스의 파리였다.


02.05




p.0

불타는 상상력이 낳는 충동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반짝이는 불빛으로 남몰래 이동하는 별자리를 표시한 지도처럼 명멸하는 신경종말을 어찌할까? 별들은 펄떡 거린다.


별들의 이야기가 책에서 많이 나온다.

좋아한 구절 중 하나가 2장 헌신(p.59)에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별이 될 운명인 그녀의 몸에서 반짝이는 별 가루가 살짝 떨어졌다.’였는데

알렉산더가 유지니아의 스케이팅을 볼 때

나온 표현이었다.

부서지는 별 가루만큼 연약하지만

부서질수록 미치도록 반짝거리는 게 또 있을까.




p.45

카메라의 벨로스를 열고 렌즈를 조절한 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시몬의 이름 아래 작은 꾸러미를 놓으려고 무릎을 꿇자 말들이 어린 시절의 동요처럼 굴러 나와 모양을 갖췄다. 나는 무기력하게 평화로웠다. 비는 흩어져 사라졌다. 신발은 진흙투성이였다. 빛은 부재했으나 사랑은 있었다.


패티 스미스가 급하게 챙긴 책을 읽고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고 사업적으로 간 여행에서 우연히 본 영화 예고편과 그물망 같은 파리의 일정 같은 '계획'하지 않은 여정을 따라가다가 잠시 멈춰 서게 된 구절.


거기서 시몬을 만나게 될 줄도, 비가 올 줄도, 오빠의 생일날 이곳에 올 줄도 몰랐던 거니까.

그 담담한 마지막 문단은

내게 따듯한 잿빛으로 읽혔다.




p.47  

 내가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왜 그렇게 도착적으로 처음의 길에서 일탈했는지, 그 과정은 고찰할 수 있겠으나 왜 그랬는지 이유는 말할 수 없다. 범죄자를 추적해 구속하는 데 성공한들 범죄자의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와 ‘왜’는 분리할 수 있는 걸까? 나 자신을 심문하면 몇 초도 안 되어 그런 글을 쓰고 나서 느낀 이상한 회한을 자백하게 된다.  


그녀의 ‘헌신’을 읽으며 사실 알렉산더와 유지니아 둘 다 완벽하게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녀에게 ‘왜? 어쩌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의이야기를 쓰게 됐냐고 물을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말로 구속하지 말자. 나는 그게 좋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심문을 한다는

표현이 재밌었다.

가끔 나도 내가 쓰는 글의 주인공을 모르기에.

너의 얘기일까? 아니면 그냥 허구의 이야기일까?

난 대답할 수 없다.




p.79-81

“왜 필라델피아예요?”           

”한때 자유의 온상이었으니까.”

.

그렇게 나는 필라델피아가 되었다,

라고 그녀는 나중에 일기에 적었다.

‘자유의 도시처럼. 그러나 나는 자유롭지 않다. 허기가 그 자체로 교도관이다.’


유리니아는 그렇게 알렉산더의 필라델피아가 된다. 어쩌면 자신의 스케이팅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 것이다. 순결하지 못한 방식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햇살이 녹아드는 계절에도 스케이팅할 수 있다는 건유리니아의 전부였을 테니까.

얼룩진 시트를 완벽한 새것으로 바꿀 때도,

덩어리의 고기와 라지 사이즈의

커피를 혼자 먹으면서도,

자신을 얻으며 자신을 잃는

아이러니한 참으로 허기진 속박의 시작이었을 테다.

역설적이어서 더 매력적인 이야기의 시작.




p.90

새 스케이트를 신어본 건 까마득하게 오랜만이었다. 물집이 잡혀 불편했지만 이 정도 대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꽃이 피는 계절에 스케이트를 탈 수 있다니 기적 같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기억에 남는다.

정확히 그녀가 알렉산더만의

필라델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




p.106

원본의 텍스트는 자살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이었다. ‘삶은 살 가치가 있는가?’           

그는 여백에 아마도 더 깊은 질문이 존재할 거라고 써두었다. ‘ 나는 살 가치가 있는가?’

그녀의 존재를 뿌리째 흔들어버린 네 마디.


처음엔 한 세 번 다시 문단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두 질문의 다른 점을 못 느껴서였다.

네 번째 읽고 삶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조금 분리하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삶은 살 가치가 있는가?’

참으로 많은 답이 나올 수 있다.

나도 입을 열자면 원하는 카테고리로 답을 낼 수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삶을 포기한다고 생각할 때에도 난 첫 질문만을 해왔지 두 번째 질문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더 깊숙이 질문해 볼 용기가 없었나.

난 정말 끝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웃기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이었던 회피였다.


유지니 아는 알렉산더와 지내며 자신의 순수함을 참으로 많이 잃고 스케이팅도 포기하려고 했다.

결국 알렉산더를 죽이며 손목에 묶인

피투성이가 된스케이트 끈을 풀어냈지만

결국 이 질문을 읽고 악착같이

그 호수 위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수에 금이 가도 상관이 없을 만큼

온 힘을 다해 스케이팅할 수밖에.




p. 111  

그러나 그녀의 내리깐 눈길은 아버지가 쓴 최후의 몇 마디에 머물렀다. 편지가 손에서 툭 떨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편지를 다시 집어 들지 않았다.

‘ 삶을 헤쳐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자질들은 내게서 받은 것이다. 천국에서 환영을 받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자질들은 네 어머니한테서 받은 거란다.’


심장을 열어 아버지의 감정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열일곱 소녀에겐 무거울 것이라 느꼈다.

편지를 떨어뜨리고 줍지 않았다는 그녀의 행동에서 눈을 감고 그녀의 표정과 공기의 흐름, 발자국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감히 내가 공감은 못할지언정

너무 재빠르게 필라델피아로 살아가던 지나간

시간 속에서 잊고 있던 사실은

자신은 누군가의 축복을 받은 비록

함께 있지 않지만 사랑받은 사람이라는 것.




p. 121-129

어째서 글을 쓰지 않고 못 배기는 걸까?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치 속에 파고들어, 타인이 없는데도 고독 속에서 황홀한 기쁨을 느끼기 위해서.           

.

첩첩이 쌓인 공책들이 무위로 돌아간 수년의 노력을, 김이 빠져버린 황홀을, 끝없이 무대 위를 서성인 발자취를 말해준다.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

나는 글을 왜 쓰는가? 내 손가락이 초침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질문을 추적한다. 젊었을 때부터 내 앞에 놓인 익숙한 수수께끼. 언어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놀이와 친구 들과 사랑의 계곡에서 한 박자 바깥으로 물러서기.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 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책 마지막 페이지에서 패티 스미스는 전한다.

‘ 이 책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우리가 눈앞을 알 수 없는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읽고 보고

생각하는 과정의 치열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책을 덮을 무렵, 우리도 여행을 떠나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위대한 작가들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치열하게 숙고하고 삶의 소중했던 순간들을 묵상하고,

마침내는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라고.


책과 영화는 가끔 놀라운 힘을 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떠한 단어나

문단으로 형용할수 없을 때.

고립된 것 같을 때 차분히 정의를 도와준다.

그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어쩌면 글을 쓰는 건 허구이기도 하다.

진실이긴 하지만 누구도 증명할 수 없다.

허공에서 혼자 고립되어 쓰는

온전히 나라는 사람의 세상에서 나온 것들.

세상에서 한 발짝 멀어지지만

그만큼 좀 더 전체를 보게 되는 연습.

이 충동은 즐겁고 외롭고 사랑스럽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