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하고 살아?에 대답하는 법

흑백사진 에세이 1

by 준성
L1004116.jpeg 내가 가는 길이 내 길이고.. 어쩌고..

좋아하는 사진이다.

하천에서 찍은 사진인데, 마침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아저씨의 걸음걸이가 잘 드러난다.

성큼성큼.




백수로 지낸지 3개월이 되어간다.


대학원에 떨어지고 한달은 정말 아무런 부담이나 생각도 없이 철저히 쉬었다. 다음 한 달은 브런치에 썼던 것처럼 내가 뭘 하고싶은지 파고들었다. 마지막 한 달은 파고든 것들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재밌는 건 이러한 것들이 딱히 계획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진짜 그냥 영화보고 게임하고 싶어서 쉬었고, 그러다보니 음 다 쉬었군 싶어서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것들을 정리하고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그럼 이것들을 바탕에 깔고 도전을 해봐야겠다 싶어서 슬슬 해보는 중이다.


대학을 다니고 인턴을 했던 시간들보다 훨씬 충만하게 살고있다. 집을 잘 안 나간다는 단점이 있지만, 나의 생산성에는 영향이 없다. 지금 이 시간들이 아주 편하고 좋다. 강아지와 고양이만 있다면 더 부러울 것이 없다.


조급해하지 말자, 라는 생각으로 지내니 붕뜬 느낌없이 착 가라앉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루틴을 세운다. 그러다보니 쌓이는 것들이 있다. 조금씩의 변화를 느끼는 것이 요즘의 내가 집중하고 있는 행복이다.


가끔 축구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면 요즘 뭐하고 사는지 질문을 받는다. 난처하다. 내가 살고싶은 방식대로 살고 있지만, 딱히 사회적으로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응, 나 백수야."


부끄럽지는 않지만, 듣는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슬며시 궁금해진다.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그럴 시기지' 하는 사람도 있고, 응원해주는, 혹은 빨리 취업해야지 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나 많은 반응이 있다는 것이 재밌다.


그러다보면 가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제 진짜 묵직하고 긴 똥을 쌌어. 황금빛 똥이었어. 건강하다는 뜻이지."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은 보통 나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보다는 사회적 상태에 대한 호기심일 텐데, 이에 그냥 진짜 사소한 얘기를 해버리는 거다. 이런 책을 읽고 있어, 어젠 슈프림 양념치킨을 먹었어 같은 영양가 없는 대답. 그런 생각을 하며 혼자 쿡쿡 웃는다. 다들 굳이 내 상태를 말하기 싫다면 이 방법을 써보자.




이렇게 쉬면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주변에서 쪼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연인도 나를 내버려둔다. 그들이 쪼아댄다고 내가 움직일 사람도 아니긴 하지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거다. 대신 너무 한량처럼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긴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던지.. 신청해야할 서류를 제때 신청한다던지.. 밥을 해먹는다던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싶을 때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내가 그린 카툰이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고 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보는게 좋다. 그리고 이건 그냥 내 예상인데, 언젠가 이런 활동들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인드 맵으로도 그려봤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떨어져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목 없는 디자인.jpg 손으로 쓰는 재미


요즘 노트를 진짜 많이 쓴다.

원래 핸드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문장이나 생각을 늘 적어왔지만, 손으로 쓰는 건 또 달랐다. 뇌에 들어있는 것을 손으로 끄집어내는 느낌이다. 타자를 톡, 톡 치는 것과는 다르다. 생각을 쓰기도,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한장씩 쌓여가는게 눈으로 보이니까 실물로 내 생각을 만질 수 있는 느낌이다. 앱은 한 화면에 하나의 메모밖에 보여주지 못하지만, 노트는 바로바로 넘나들 수 있으니까. 쓰고 그리는 행위 자체가 뇌를 더 깨워주는 것 같다. 각 메모간의 연결성도 훨씬 높아졌다. 김정운 작가의 에디톨로지를 지금에서야 실현하다니...


카툰이 조금씩 반응이 온다.

얼마 전에 SNS 팔로워 도합 1000명을 넘겼다. 1일 1게시물을 지킨지 약 한 달이 됐는데, 한 달 동안 계정의 컨셉을 잡느라 고생을 좀 했다. 이제는 조금 원하는 모양새가 되어간다. 이걸로 일러스트 페어도 가보고 영화/음악/책 광고도 받아보고 싶다. 게시물이 좀 더 쌓이면, 광고를 돌려보려고 한다. 플랫폼은 인스타, 틱톡, 유튜브 다 한다. 틱톡커라고 놀림 받을 것 같지만, 플랫폼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제는 양보다 질에 조금 더 집중을 하려고 한다. 좋은 이야기를 쓰는게 목표다. 내게 그림은 매우 언어적인 글쓰기와 시각언어로만 말하는 사진 사이에 있는 충전재 같은 느낌이다. 글, 그림, 사진은 그렇게 이어진다. 재밌다.


어떤 유튜브 채널에 코미디 작가로 합류했다.

유튜브를 진작에 하고 싶었는데, 나는 플레이어는 아니었기 때문에 유튜브에 뛰어들지 못했었다. 그런데 재능 있고 목표의식 있는 한 코미디언/배우 지망생 형의 연락을 받아 합류하게 되었다. 기획과 연출 위주로 하게 됐다. 일반 예능형 채널이 아니라, 내 감성과 맞게 꾸려갈 수 있을듯 하다. 그런 느낌이 드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분명 언젠가 성공할 형 같아서 지금 합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없이 성공하면 너무 배아플 것 같은 사람. 그리고 코미디가 생각보다 재밌다.



그 외에는 그림 그리는 김에 회기 유나이티드 계정에 축구 공감짤도 올리고, 이틀에 하나씩 영화보고, 책 읽고 요리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너무 먼 미래까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쌓아가다보면 저 위에 아저씨처럼 길이 보이겠지. 성큼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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