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
마지막 글을 쓰고 시간이 좀 지났다.
매주 1편은 썼었는데, 어지러운 머릿속이 어느정도 정리가 된 순간부터는 글을 쓰지 않았다.
토해내듯 썼던 글들은 혼돈의 시기에 말 그대로 어딘가에 내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던 것들이었다. 그 시기가 지나고서는 잠시 글쓰기에 제동이 걸렸다.
굳이 분류하자면 지금껏 써온 글은 에세이에 속한다.
그래서였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차라리 혐오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에세이의 범주란 너무나도 넓은 것이어서, 내가 즐겨 읽은 각종 철학, 과학, 교양 서적도 에세이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까지 부정하는가? 하면 아니다. 그러므로 실은 에세이 분야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 중에서도 특정한 양식의 글을 싫어한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고전, 혹은 고전으로 인정 받게 될 에세이는 뒷통수와 가슴을 아주 치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다. 반면 천진하게 고대로부터 수천년간 이어져온 표현 방식을 비틀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인양 내놓는 낯뜨거운 글들도 있다. 그런 글을 싫어한다. 그런 가사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양산형 일상 에세이, 그런 것들 말이다.
매끈한 철판에 달라붙는 문어 빨판처럼 온갖 종류의 책들을 찾아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에도 양산형 일상 에세이는 단 한 번도 내 독서량에서 큰 파이를 차지한 적이 없다.
게으른 경험과 생각과 표현을 대리체험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들은 직접적이고 생생한 나의 것이 될 수 없었다.
20대의 초입을 지날 때, '괜찮아도 괜찮은' 에세이들이 우후죽순 인스타 광고와 베스트 셀러 코너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들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연한 것을 진부하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그들의 글이 너무 싫었다. 대개 이런 식이다. '사랑은 네가 밥을 잘 챙겨먹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우-웩.
하지만, 하지만...
이제껏 없었던 과격한 혐오의 표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오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두어 달간 글을 쓰다보니 문득, 내 글이 점점 내가 싫어하는 바로 그 에세이를 닮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로 인해서 내가 아무것도 세상에 내놓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브런치에서 어느 순간부터 자기 복제가 심해지고, 무의미한 재점검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주 심해지기 전에 가까스로 멈춰야만 했다. 무서웠다. 아래는 글에 대해 그간 느낀 글에 대한 감정들이다.
* 이상하게도 긴 글을 계속해서 써야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긴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 누군가에게 읽힐 것을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글 한 두개가 터지면서 유입이 많아진 이후부터였다. 일기도 누가 들춰 볼 것을 걱정하며 쓰는 편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장 개인적이어야 할 글에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나도 모르게 개입하기 시작했다.
* 사진 에세이를 써보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찍은 사진에 쓸 데 없는 의미 부여를 하게 되었다. 포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에서 의미를 잡아챈 것처럼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모든 일상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 싫었다.
글을 아주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손으로 노트에 글을 많이 썼고, 이는 타자를 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와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어딘가에 발표를 하는 글은 아니었다.
모든 글이 그럴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 내가 쓴 글에 공감하거나 비난을 하기 바란다면 일단 세상에 공개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양산형 일상 에세이에 대한 나의 혐오는 타당하지 않다. 그들의 글도 내가 그러했듯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글이었을 수 있다. 출판과 마케팅이 목적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었을 수도 있다. 좆 같이 못 쓴 글이긴 하지만, 그건 나의 의견일 뿐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려고 했거나 최소한 근접하기라도 했다. 아니 설사 그 모든 행위가 오로지 자신을 팔아 사람들의 관심을 챙기려는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조금 게으른 것 이외에 그게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나는 도저히 지적할 수 없다.
그들은 어쨌든 글을 썼고, 세상에 내어놓았다.
'나는 달라야 한다' 라는 생각이 단단히 뿌리를 내려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는 일은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 겁쟁이가 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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