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빛날영 Apr 10. 2023

네덜란드 집 구하기(4) - 집주인이 따로 보자 한다.

집주인이 커피를 마시자는데..


집주인과의 모든 의사소통은 이메일로!


드디어 원하던 집의 세입자로 선택받았다. 집을 구했다는 말보다 "선택받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현지에서 발품 팔 생각으로 미리 비행기표를 끊어놨기에 네덜란드에 입주일보다 일찍 도착했다. 게다가 내가 들어갈 집은 처음부터 즉시 입주가 가능하지 않다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페인트를 새로 칠하는 등 내부를 손볼 거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10월 중순 조금 넘어 네덜란드에 들어갔는데, 입주 가능일은 11월 중순이었다. 혹시 모르니 11월 초에 입주하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다행히 작업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입주 전 호텔에서는 2주 정도 지내게 되었다.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상태


집주인과 직접 처음 연락하게 된 것은 이메일을 통해서였다. 입주 전에 미리 인터넷, TV, 전기, 난방, 식수 등 계약을 체결해 놓으면 새 집에 딱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와 관련하여 질문하고 확인할 내용이 있어 임차인 계약서에 명시된 이메일로 연락하였다. 계약서 자체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해당 이메일 주소로 연락하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명시된 이름으로 봐서 남자라는 게 명확했다. 나 혼자 지레짐작으로 40대 이상 남성이겠거니 했다. 이메일로 입주일을 앞당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궁금한 점을 물어봤고, 집주인은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장해 주었다. 이메일의 끝에는 입주일에 진행되는 체크인 자리에 본인이 가지 못해 아버지와 에이전시 담당자가 참석할 것이라고 하며, 대신 입주일 이후에 커피 타임을 갖자고 제안하였다.



친구와 약속을 잡듯이 커피 타임을 갖자는 집주인


집주인과 커피를 마신다고? 내 생각의 바운더리 안에서 집주인은 그저 형식적으로 상대하게 되는 사람 그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살게 될 집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하니 의아했다. 괜히 경계심이 생기고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체크인도 한 이후에 굳이 따로 만나자고 하는 의도가 뭐지? 네덜란드에서 집주인이랑 커피를 마신다는 건 어떤 의미지? 이게 괜찮은 건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 집을 구매한 유럽인에게 물어봤다. 집주인으로서의 입장을 들어보고 싶었다. 돌아온 대답은 만나서 커피를 마시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나자고 하는 건 오히려 세입자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좋은 거다."


그러니까 그 집에서 살다가 집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나 몰라라 할 사람은 아니라는 시그널이라는 뜻이었다. 나도 몇 번 네덜란드에서 세입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집주인이 무시하거나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그렇게 약속을 잡았고 입주한 지 좀 지난 후에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집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집주인을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었다


지인을 만난 것처럼 카페에서 집주인을 만나 한참을 얘기했다. 그는 더치(Dutch: 네덜란드인, 네덜란드어를 의미)인데 지금은 독일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젊은 남성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하러 갔다고 했으니 어쩌면 20대 후반, 많다 해도 30대였을 것 같다. 체크인 당일에는 독일에 있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 사는 아버지가 대신 온 거였다.


대학에 다닐 때 본인도 이 집에 살았고 직장을 구한 이후 나오게 되었고, 이후에는 어떤 외국인 여자랑 본인의 친형도 이 집에 살았다고 한다. 형이 나간 이후에는 집이 얼마동안 비어있는 상태였다. 본인이 독일에서 하는 일, 내가 네덜란드에서 하게 될 일에 대한 얘기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더치들은 영어를 잘하는 인구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서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하다. 편하게 수다를 떨었다. 다른 얘기는 희미하게 기억나는데, 브라질 국적의 남자친구가 있다는 얘기는 아직도 기억난다. 커피값은 그가 냈다.



집주인과 함께 '나의 집'에 방문하기까지


만나기 전 이메일로 매트리스 얼룩과 전자레인지 겸 오븐 고장에 대해 얘기했다. 세팅된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니 찝찝한 얼룩이 군데군데 있었고, 전자레인지 겸 오븐은 숫자가 다 깨져 보여 도저히 작동할 수가 없었다. 매트리스는 바로 새 걸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전자레인지는 숫자판이 고장 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커피 마시기로 한 날에 집에 방문하여 숫자판이 안 보여도 작동할 수 있는 방법을 직접 알려줘도 괜찮겠냐고 미리 물어봤다. 미리 얘기한 대로 커피 타임을 마친 후 같이 집으로 향했다.


고장난 스메그 오픈 계기판


본인이 세 놓은 집이긴 하지만 그 집에 사는 건 나니까 세입자인 나를 배려하는 게 느껴졌다. 오븐 작동법을 알려주러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물어본 것도 그렇고, 들어갈 때 신발 벗는 것도 그렇고. 먼저 부탁하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은 운동화를 신은 채로 집에 들어온다. 물론 미리 부탁하면 손님은 신발을 벗고 들어와 준다. 어쩌면 당연한 거긴 하지만 그 배려가 고마웠다. 집 내부를 환기시키는 환풍 장치가 있는데, 거기에 넣을 필터도 새 걸로 챙겨 와서 직접 교체해 주고 사용법도 알려주었다. 고장 난 전자레인지 작동법도 직접 보여준 덕에 분/초 설정이 읽히지 않아도 사는 동안 잘 사용했다.


용건만 마치고 안녕을 고하며 그는 '내 집'을 떠났다.


작가의 이전글 네덜란드 집 구하기(3) -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