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을 마주한다.
20대 중반에 사고를 당하고 몇 차례 수술을 한 후 시간이 흘러 어느새 20대 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요즘 정보가 넘쳐나는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나와 같은 사례는 찾을 수 없었기에 그저 언젠가는 걸을 수 있을 거라고, 뛸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지내고 있었다. 몇 차례 수술 후 병원에서 다시 걷고 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던 치료 기간인 1년은 이미 훨씬 흘러갔다. 그렇게 나도 어느 정도의 체념과 함께 목발의 도움을 받아 거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지금의 삶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실제로 최근 나의 일기장에는 근래 나의 삶에 안도하며 살아간다는 말은 아니지만 꽤 만족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을 써 내렸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회복한 일상의 편안함이 나에게는 꽤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수술하시죠.”
평소와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최근 외래진료를 갔다가 나의 두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을 들었다. 마지막 수술을 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고 일전에 수술 일정을 물어보았을 때 없다고 말해주었던 담당 교수님이 먼저 수술을 하자고 말을 꺼냈다. 나에게는 정말 기분이 좋아야 할 소식이지만 마음 한 구석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어찌 됐건 지금 다친 다리의 상태가 악화되어서 하는 수술이 아닌 지금 나의 다리 상태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막연하게 기다려 왔던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익숙해진 일상을 다시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함과 두려움이 함께 느껴졌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서 오는 좌절감. 일전에 긴 병원 생활을 할 때 정말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상황과 감정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스스로 원하지 않고 피하고 싶은 상황을 마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다치고 나서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올린 익숙한 일상들이 잠에서 깨고,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변하지 않고, 깨지지 않고, 그저 온전하게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다시는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았던 병원에 다시 입원해서 글을 쓰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 올린 일상의 익숙함은 사라지고 무너지겠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서 새로운 일상의 익숙함을 쌓아 올리겠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지만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었던 내가 배운 것은 다시 일어서는 법이다. 아무리 무너지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위로의 말들보다 나에게 더 큰 위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준다.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은 오로지 지금만 내가 느낄 수 있는 정돈되지 않은 감정들을 보기 좋게 글로 써 내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인 것을 알기에 지금 내가 하는 경험, 감정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