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을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끌려다니게 된다.
하루 종일 요청에만 반응하다 보면 퇴근길에 ‘오늘 나는 무엇을 한 걸까’ 하는 허무함이 남는다. 기획자는 그렇게 일할 수 없다.
기획자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일정 관리다. 한국에서는 기획자를 Product Manager, Product Owner와 거의 같은 역할로 분류한다. 그만큼 스케줄링 능력이 중요하다. 개인 일정뿐 아니라 팀, 그리고 회사의 일정까지 바라보고 조율하는 힘이 필요하다.
일정을 주도한다는 건 단순히 캘린더에 할 일을 적어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일을 먼저 배치하고, 마감과 협의, 리스크까지 고려해서 내가 판을 끌고 가는 것이다. 기획자는 배를 타고도 키를 잡지 못하는 선장이 될 수 없다. 결국 마도를 잡고, 일정을 끌고 가야 한다.
리더가 될수록 그 무게는 더 커진다. 나의 일정만 챙기던 시기를 지나면, 팀원의 일정과 회사의 로드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재 일정은 물론이고 미래 일정까지 내다보는 힘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시간 관리가 아니라 성과와 결과를 만드는 힘이다.
나는 지금 노션(Notion)을 활용해 일정을 관리한다. 퍼블리에서 제공하는 템플릿을 받아 아주 약간만 커스텀해서 쓰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테스크(Ticket)'만 생성하면 된다.
To Do 티켓을 만들면 캘린더, 타임라인, 칸반보드가 자동으로 채워진다.
회고와 백로그는 별도로 관리한다. 월별로 회고를 작성하고, 끝나지 않은 테스크는 백로그로 옮긴다.
티켓 안에는 회의록, 이슈 리포트, 진행 상황을 꼼꼼히 기록한다. 댓글로 남긴 히스토리는 티켓에 마우스를 올리면 바로 보인다.
덕분에 Jira 티켓 관리하듯이 내 업무를 한눈에 정리할 수 있고, 단순한 할 일 관리가 아니라 아카이빙에 가깝게 기록이 남는다.
내가 사용 중인 템플릿은 링크 : https://publy.co/content/7115?s=qkr8fj 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브런치 작가 '그라데이션' 님이 작성한 글로 2025년 기준 갓 5년 차 PM이신 것 같은데 글솜씨도 좋으셔서 인상 깊게 읽었다. (퍼블리에서는 5회 무료 공유 링크를 제공하기 때문에 혹시 열리지 않는다면 댓글로 링크를 재공유하겠다.)
매달 마지막에는 회고 페이지를 연다. 이번 달 내가 어떤 일에 집중했고, 어떤 부분에서 흔들렸는지 돌아본다. 잘한 점도 적지만, 일에 끌려다닌 부분을 더 솔직하게 기록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일정 관리가 단순한 ‘시간표 관리’가 아니라 ‘나의 성장 기록’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일정은 곧 나의 기획 결과물이고, 기획자의 역량은 거기에서 증명된다.
기획자의 성장, 그리고 리더로서의 성장은 결국 일정을 지배하는 힘에서 비롯된다.
일정은 나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일정을 통제해야 한다.
기획 업무는 세세한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이다. 회의록을 남기고, 채팅과 메일을 주고받아도 구두로 오간 이야기는 빠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건 안 하기로 했던 기능인데 왜 추가됐냐”, “기획서에는 빠졌는데 에는 왜 들어가 있냐” 같은 상황이 종종 생긴다.
실제로 개발팀과 협업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개발팀에서 확인 및 의사결정이 늦어져 홀딩 중인 기능을 두고, “그건 빼기로 한 기능이다”라며 협의되지 않은 결론을 꺼내는 경우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 어떤 경위로 홀딩되었는지 모두 아카이빙 해둔 기록을 근거로 공유했고, 그 순간 대화의 무게추가 달라졌다.
내가 기록을 남기는 이유는 누군가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업하다 보면 가끔은 말이 안 통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 중요한 건 내가 모든 상황을 꼼꼼히 인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내 말을 신뢰하게 되고, 쉽게 우기지 못한다.
특히 만약 외주업체와 협업하거나 고객의 기능을 개발해 주는 형태의 프로젝트와 같이 상호 계약 기간이 정해진 상태에서 개발하는 상황이라면 잘못된 주장 하나는 곧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록은 곧 방어이자 무기이고, 무엇보다도 신뢰를 쌓는 기반이다.
기획자에게 중요한 것은 결국 신뢰다.
신뢰를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기록만큼 분명하게 드러나는 요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