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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보리 Sep 06. 2023

숲길에서

10. 청산도

  도청항으로 자그마한 배 한 척이 부챗살 모양으로 물살을 가르며 부드럽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하늘과 순하게 펼쳐진 쪽빛 바다는 배를 위협하지 않았다. 왼쪽 방파제 위에 선 붉은 등대와 오른쪽의 하얀 등대가 길을 열어주었다. 모든 것이 고요한 가운데 바다는 배에게 온전한 안락과 자유를 허용하였다. 

  4월의 태양이 하늘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커다란 소나무에 기대선 채 주머니 모양의 작은 항구를 내려다보던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압도되었다. 동화책에 그려진 크레파스 그림 속에 들어선 것 같았다. 짧은 순간 전율하였다. 그 하늘과 바다, 항구와 배, 그리고 소나무와 바람을 오래도록 붙들어 두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다.

  “여기는 청산도야. 네게 꼭 보여주고 싶어.”

  도시는 편리하다. 가게 병원 놀이터가 가까이에 있다. 그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에 나는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편리를 얻은 대신 포기하는 것도 많다. 계곡의 솔바람 소리, 고요한 하늘과 흐르는 구름, 설산의 정적, 바다 위의 붉은 낙조를 대도시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동차와 기계의 소음이 하늘의 흰 구름과 겹칠 때 아쉽고 미진한 기분을 떨치기 어렵다. 아스팔트 도로가 깨끗하기는 하지만 그윽한 풀내음과 귀여운 들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일상은 힘이 세다. 가슴은 자연을 그리워하면서도 각종 편리에 취해 쉽게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한 나는 대체로 일상에 순종하며 산다. 때로는 익숙한 일상에 고마워하면서. 그러나 누르고 누른 자연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 순간 폭발할 지경이 되면 충동적으로 여행가방을 싼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많다.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 페와 호수에 비친 설산 안나푸르나, 붉은 해가 떨어지는 데칸 고원, 동양화 같은 계림과 장가계, 전설을 품은 블레드 호수, 빙하가 만든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지중해를 내려다볼 수 있는 미하스 언덕, 장엄한 그랜드캐년, 화려한 부처가든, 운해가 펼쳐진 노고단. 어디가 되었건 간에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면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그 순간을 붙잡아 두고 싶다. 영원히 그대로 머물고 싶다. 그 장면에 스며들거나 녹아들고 싶다. 

  청산도는 그런 아름다운 곳들 중 하나이다. 청산도는 다도해상국립공원의 일부이다. 완도항에서 2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청산도(靑山島)라는 지명은 사시사철 푸르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슬로시티인 청산도에서는 돌담길, 흙돌집, 고인돌 등 옛 시절의 삶의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완도항에서 연락선(連絡船)을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그곳에 도착한다. 섬은 반경(半徑)이 4킬로미터를 넘지 않으며 동그란 모양이다. 섬의 남쪽 범바위에서 바다를 조망하면 자그마한 여서도가 항해하는 배처럼 떠 있다. 날씨가 맑으면 제주도 한라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도항과 청산도 사이의 바다는 대체로 잔잔한 큰 호수 같지만, 청산도의 남쪽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태평양으로 열려 있어 분위기가 다르다. 바다 색깔도 다르다. 

  내가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이동하는 자동차가 별로 없어 한가하고 조용하였다. 도청항에서 당리까지 걸어서 갔는데, 비탈길이기는 하지만 게으르게 걸어도 20여분 남짓이면 충분하였다. 당리 마을 입구에는 큰길 두 개와 작은 길 세 개가 한꺼번에 모이는 지점이 있다. 바다와 항구를 좀 더 잘 보려면 언덕배기인 그곳에서 돌담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한다. 거기에는 고분과 수십 그루의 노송이 있다. 

  나는 가쁜 숨을 진정시킨 뒤 소나무 그늘에서 쉬면서 항구 쪽을 내려다보았다. 어느 순간 솔바람이 만드는 고요 속에서 나는 전율하였다. 바다와 항구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났다. 나도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먼바다를 지나온 작은 배가 등대 사이를 지나 복주머니처럼 생긴 포구로 들어오고 있었을 뿐이다. 하늘과 바다가 거기 그렇게 있었을 뿐이었다. 벅찬 감정이 놀라웠고 기뻤다. 나중에는 아쉬웠다. 

  그 기분은 한 개의 예쁜 진주가 되어 내 가슴에 새겨졌다. 종종 그 감동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물론 혼자만 느끼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몇 차례에 걸쳐 가족과 때로는 친구들과 청산도를 다시 찾았다. 청산도는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었고, 풍광 역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처음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끼기는 어려웠다. 말하지 않았을 뿐 아쉬운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그 기분을 굳이 말로 내뱉어 동행에게 전염시킬 필요는 없었다.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간 사람들도 내가 처음 느꼈던 벅찬 감동을 느꼈을까? 못 느꼈을까? 아니면 나보다 더 깊은 감동을 느꼈을까? 나는 모른다. 모두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깊이를 내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어느 해 플리트비체에서 만난 한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들이 호수와 폭포, 단풍 숲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에 취해 탄성을 반복하는 가운데, 말없이 걷기만 하는 여자가 있었다. 혼자서 여행을 온 여자였다. 일행 중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름답지 않나요? 환상적이네요.”

  “여전히 예쁘네요. 그렇지만 제가 다시 보고 싶었던 그 풍경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예전에 여기에 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네. 몇 년 전에 와서 보았던, 실안개가 흐르는 플리트비체를 잊을 수 없었어요. 처음 와 보았을 때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여 다시 왔어요.”

  추억을 더듬으며 그곳을 다시 찾은 그녀는 실망감을 숨기기 못하였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조금 서운하였다. 그녀의 시큰둥한 기분이 나의 감동을 덜어내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똑같은 장소가 보여주는 여러 모습 중 최고 멋진 모습을 못 보고 있다는 뜻인가? 짧게 생각하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느 여인이 어떤 옷을 입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지를 묻는다면 대답이 쉬울까?  

  세상 사람들이 관광 명소로 손꼽는 곳을 가면, 그곳에 가기만 하면, 가는 사람 모두가 똑같은 감동을 느낄까? 잘 모르겠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나의 경우, 청산도에 갈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왜 그랬을까? 감동은 마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풍광과 감각과 마음이 어우러져 한 기분이 현상(現象)하는 까닭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기분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상황 속에는 언제나 마음이 들어있다. 명소 자체가 기분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명소는 기분의 한 요소일 뿐이다. 관광명소를 수집하듯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그곳에 가면 언제나 벅찬 감동을 느낄까? 그럴 수 없다. 때로는 유명하다는 그 말에 의해 어떤 도식화된 기분을 강요당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의심스럽다. 진정한 감동 여부는 오직 자신만이 알 뿐이다.

  내게도 깊은 감동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진주처럼 내 가슴속에 점점이 새겨져 있다. 그 감동을 선물한 곳이 반드시 유명한 곳은 아니었다.  

  나를 처연한 슬픔과 황홀 속에 빠뜨린 노을을 만난 곳은 서해 바닷가의 아시래 마을이다. 40여 년 전 봄 해질 무렵, 스물여섯 살의 나는 어떤 학생 집을 방문했다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시래의 당산나무 근처를 지날 때 우연히 천지를 가득 채운 노을을 만났다. 노을은 커다란 느티나무 가지들 사이사이로 붉은 빛을 보냈다. 붉은 빛이 새어 나오면서 가지 사이의 윤곽이 또렷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밝은 붉음은 차츰 어두운 붉음으로 변하였다. 바닷가의 염전은 커다란 거울이 되어 붉은빛으로 번들거리면 불타고 있었다. 그렇게 불타는 거울 위로 밀짚모자를 쓴 검은 윤곽의 한 염부가 당그레를 밀면서 이리저리 미끄러지고 있었다. 무성영화 같았다. 그때 거기에서 본 장엄한 노을의 순간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곳은 관광명소가 아니었다. 지금도 그러하다. 그저 평범한 바닷가 작은 마을일 뿐이다. 그러나 그때 그 순간은 내 인생의 풍광 중 하나이다.  

  청산도와 아시래를 다시 찾아가면 예전의 그 순간을 다시 맛볼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풍광도 내 마음도 변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소에 대한 기억 역시 그러할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내게 선물로 주어진 감동의 순간들을, 그 기억들을 고이 간직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의 흰 구름이, 날마다 찾는 산책길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가족의 웃음소리가 나의 청산도이자 아시래임을 자각하며 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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