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나와 세상은 뗄 수 없다
대개 ‘내가 사는 세상’과 ‘나’는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따로, 나 따로’라고 믿는다. 세상은 ‘나의 바깥에’ 또는 ‘나와 무관하게’ 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진실은 세상이 곧 나고, 내가 곧 세상이다. 나는 나의 세상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나는 이런 세상을 원치 않는데 어떻게 이 세상이 나란 말인가?’라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이 어떤 모임에 갔다고 상상해 보자. 평소에 미워하던 사람이 먼저 와서 앉아 있다.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불편한 세상과 당신을 따로 떼어낼 수 있는가? 없다. 불편한 세상, 바로 거기에 당신이 있다. 불편한 세상에서는 당신의 맘도 불편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당신이 미워하던 사람이 아니다. 비슷한 복장을 한 다정한 친구였다. 분노가 가라앉고 편안해진다. 편해진 세상과 당신을 분리할 수 있는가? 없다. 당신의 마음이 편하면 당신이 머물고 있는 세상 역시 편하다.
언제나 나는 내 세상을 산다. 책을 읽으면 책을 읽는 세상에서 산다. 청소를 하면 청소세상에서 산다. 도박을 하면 도박세상 속에 있다. 개에게 쫓기면 공포의 세상 속에 있다. 시험을 치를 때면 불안한 세상에서 초조해한다. 내가 죽지 않고 사는 한 나는 내 세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내가 내 몸 밖으로 나갈 수 없듯이, 결코 내 세상을 초월할 수 없다.
나와 내 세상은 따로 분리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확장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맘을 편히 먹으면 편한 세상이 될까? 아니다. 그건 오해다.
나와 세상을 분리할 수 없다는 말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런 불편한 세상과 나를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내가 편한 맘을 가지려 해도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한 불편한 세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령 만나기만 하면 늘 나를 괴롭히는 건달이 또 나를 괴롭히려고 다가올 때 어떻게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내가 마음을 편하게 먹으면 그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편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상대에 대한 기대 수준을 낮추면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자녀가 100점 맞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50점만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화를 덜 내게 된다. 건강하기만 하면 다행이라고 기대하면 마음은 더 여유로울 것이다. 쉽지 않지만 마음을 크게 넓혀 군자의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그나 나나 언젠가는 죽어갈 가여운 존재’라는 연민으로 그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종교가 권하는 바람직한 자세다.
미운 마음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을 안 만나면 된다. 전화번호를 지우거나 이사를 가면 된다.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의 불평불만을 기꺼이 받아주면서 견디기도 해야 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가 있는 회사의 상사를 피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그가 큰 힘(지위 돈 등)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는 권력자라면?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서 그와 맞서 싸울 수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되었건 간에 그때그때마다 전개된 세상과 나를 분리할 수는 없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세상은 즐겁다.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세상은 괴롭다. 그는 내 세상이다. 쓰고 달고 시고 맵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의 세상이 된다. 회사 상사에게 나는 어떤 세상일까? 또 아내나 딸에게 나는 어떤 세상일까?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온전히 알 수 없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세상이길 소망할 뿐이다.
반대로 그들은 그들이 내게 어떤 세상인지 알 수 있을까?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선의가 없어서 그럴까? 아니다. 인간의 한계 때문이다. 그들은 내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싶을까? 궁금하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내가 내 세상을 살듯이, 그들은 그들의 세상을 살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는 내 세상에서 산다. 지금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 편한 세상이라면, 내 맘이 즐겁다면, 어떻게 잘 관리하고 가꿔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불편한 세상이라면, 내 맘이 불편하다면, 어떤 방법을 써서 개선할 것인지를 강구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