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장난감
아이가 엄마와 함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태어난 지 10달 된 아이를 돌볼 때는 잠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아이는 아직 걷지 못한다. 하지만 부엌과 거실, 안방과 작은 방 사이를 부지런히 기어 다닌다. 거실 탁자와 소파는 물론이고 작은 미끄럼틀도 수시로 기어서 오르내린다. 어느 한 물건에 오래 집중하지 않는다. 이 장난감에서 저 물건으로 눈길을 옮긴다. 몸도 따라 움직인다. 나도 아이의 눈과 몸을 따라다닌다. 엉덩이를 흔들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 앙증맞고 귀엽다.
아이가 하는 일은 먹고 자고 싸고 노는 일이다. 노는 아이에게 세상 만물은 모두 장난감이다. 두드려 소리가 나면 고사리 손으로 소리가 나는 물건을 만져본다. 스테인리스 쟁반에 자기 얼굴을 비춰본다. 입을 갖다 대본다. 푸쉬카와 붕붕카를 타면서 속도감을 느낀다. 바퀴를 굴리면서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화초 잎사귀를 만지고 잡아 뜯는다. 책꽂이의 책을 앞으로 잡아당겨 바닥에 쏟는다. 스프링카 말을 타고 구르기를 한다. 스프링의 반동에 몸을 싣는다. 그네를 타면서 무중력을 느낀다.
아이에게는 사람도 장난감이다. 안아달라고 팔을 벌리고 목을 끌어안는다. 어깨에 매달리고 젖내 나는 얼굴을 어른 가슴에 파묻는다. 품에 안긴 아이의 표정은 더없이 편안하다. 목마를 타거나 어른 배에 올라탄다. 말타기 놀이를 한다. 누워있는 엄마의 배와 가슴을 오르내린다. 엄마의 긴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벼댄다. 거기에서 오는 감각을 즐긴다.
아이가 노는 동안 집안은 온통 아이가 내뿜는 생동감으로 넘친다. 아이가 있는 공간의 중심은 아이다. 엄마와 할머니는 아이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한다. 아이의 표정을 살펴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킨다.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산책을 하거나 시장에 갈 때는 아이의 즐거움과 안전이 최우선이다. 거실에 장난감을 배치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있는 동안 거실은 놀이동산이 된다. 볼풀장을 만들고 알록달록한 작은 공들을 쏟아붓는다. 문 벽에 봉을 붙이고 그네를 설치한다. 미끄럼틀 주변에는 요가 매트를 깐다. 아이가 노는 동안 장난감들은 활력을 갖는다. 제 몫을 다한다. 어른들도 아이와 함께 장난감 주변을 맴돈다. 아이의 놀이 세상에 동참한다. 집안이 부산스럽다.
아이가 떠나면 고요가 찾아온다. 장난감들이 침묵하며 내 눈치를 살핀다. 주인을 잃은 장난감들은 자기의 목소리를 잃는다. 거실의 중심에서 밀려나 창고와 작은 방으로 쫓겨난다. 아이의 관심에서 멀어진 장난감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다. 장난감들은 아이가 돌아오기를, 다시 쳐다봐 주기를, 함께 놀아주기를 기다린다. 나도 마찬가지다. 부름 받지 못한 사람은 외롭다. 그리움은 부름 받기를 원하는 외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이모티콘 (꾸벅). 안녕하세요? 혹시 그 장난감 지금도 살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네, 있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제가 사고 싶어요. 언제 어디로 가면 되나요?”
“저는 회사에 있습니다. 저녁에 오실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먼저 당근페이를 보내주세요. 그러면 상세주소를 알려드릴게요.”
(당근페이 지급 완료 메시지)
“차로 오시나요?”
“네.”
“차량을 등록해 드리겠습니다. 8시부터 집에 있고요, 문고리를 원합니다.”
“좋아요. 저도 문고리가 편합니다. 제 차 번호는 00고0000입니다.”
(예약 중 메시지)
“차량등록도 하였고 예약도 하였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아이가 기어 다니자 타이니러브 모빌이나 아기 체육관이 필요 없게 되었다. 생후 10개월 된 아이는 생후 6개월 때 입었던 옷을 더 이상 입을 수 없다. 아이는 빨리 자란다. 아이의 성장에 맞추어 장난감과 옷을 바꿔야 한다. 모든 것을 새것으로 구비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새것을 사도 몇 번 사용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중고시장을 찾는다. 장난감과 유아용품을 거래하는 중고시장 규모는 작지 않다. 나의 경우 지금은 아이가 어려서 주로 물건을 구입하는 편이다. 머지않아 아이가 더 자라면 나도 물건을 나눔 하거나 내다 팔 것이다. 2024년 현재는 어린아이가 형이나 언니 또는 사촌의 옷이나 장난감을 물려받는 세상이 아니다. 낯선 사람과 거래하는 일이 더 많은 세상이다.
낯선 사람과의 거래에는 상호신뢰에 대한 기대와 경계심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情)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거래관계는 삭막하다. 나는 차를 몰고 낯선 골목 낯선 빌라 낯선 아파트를 찾아간다. 대개 휴대폰으로 돈을 먼저 보낸다. 상대방과 약속한 시각에 찾아간다. 판매자가 판매한 물건을 자기 집 출입문 문고리에 걸어두거나 문 앞에 놓아둔다. 산 물건을 집어온다. 열에 여덟 정도는 문고리 거래를 한다. 서로 얼굴을 보지 않고 거래한다. 편하면서도 차갑고 허전하다. 허전함이 심하면 배가 고프다. 정(情)에 주린 것이다. 현대 대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런 세상을 산다.
종종 그런 기분과 싸운다.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지 않느냐고 자위도 한다. 중고시장에서 문자로만 만나는 관계이지만 대개 우호적인 말들을 주고받는다. 소액거래를 할 때도, 나눔을 할 때도 판매자들은 대개 물건을 잘 포장해서 내놓는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는 것이다. 온기를 느낀다.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팔 때 갖는 마음이다. 장난감을 살 때는 아이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상상한다. 옷을 살 때는 옷을 입고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 아이가 예쁘고 따뜻하게 입기를 또 잘 놀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도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상황에 따라 판매자도 구매자가 된다. 아이에게 불필요한 것은 내놓지만 필요한 것은 산다. 서로 역지사지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사는 사람은 아이를 잘 키워보려는 의욕이 있기에 그 물건을 산다. 의욕이 넘칠 때는 허무감이 사라진다. 권태와 허무감은 의욕이 사라진 빈자리를 찾아온다.
아직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본다. 아이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이런 아이 앞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이는 그냥 산다. 사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삶은 본디 그 자체로 충만한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를 돌보면서 또 아이의 장래를 염려하면서 엄마아빠가 되어간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간다. 아이 덕분에 어른이 되어간다. 이런 큰마음에 비하면 작고 대수롭지 않은 불편에 마음 상할 일이 아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는 마음은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아이를 보살피는 마음은 우리의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