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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Mar 12. 2023

기억 저편에 갇힌 과거의 나를 위하여

<스즈메의 문단속>(2022)


삶은 가끔, 인간을 잔인하리만치 흔들어놓는다. 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너무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이토록 쉽게 인간을 잡아삼키는 절망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결국 어떤 들은 감당하기 힘든 기억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는 문을 굳게 잠가버린다.


닫힌 문 안에는 어린아이가 살아간다. 그 속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아이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인 채로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상실된 탓에, 찾기 요원해 보인다.


홀로 남겨진 아이의 갈 곳 잃은 감정들은, 서서히 응축되며 독성을 띄어간다. 유독성의 증기는 점점 짙어지다 결국 닫힌 문을 열고 뿜어져나온다. 아이는 그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는 데 몰두한 탓에 문을 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주인공 스즈메 역시 마음 속에 그러한 문을 가진 인물이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어버린 탓에 말이다. 그 까닭에 스즈메는,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정체 모를 하얀 문을 볼 수 있게 된다. 우연히 마주친 소타가 문을 닫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목격하고 그를 돕는다. 명확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소타를 도와 전국에 퍼진 뒷문을 하나씩 닫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


요석은 뽑힌 순간 다이진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로 변해, 전국을 쏘다니며 문을 열고 다니기 시작한다. 스즈메 일행은 다이진을 붙잡아 요석으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실패한다. 이 정체 모를 고양이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행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일까?


다이진은 스즈메의 자기이해를 상징한다. 스즈메는 두 요석 중 하나였던 다이진을 우연히 뽑아버리고, 이는 미미즈가 출현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과거를 무의식 속에 묻어두는 기존의 방식에는 한계가 찾아왔으며, 따라서 새로운 각성을 요구받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것도 자신의 감정과 가치관에 혼란을 겪기 쉬운 사춘기를 지나면서 말이다.


스즈메가 소타를 돕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다이진은 나타났다. 스즈메가 그를 받아들이자 핼쑥했던 다이진은 순식간에 건강한 모습으로 변한다. 그 이후로 다이진은 요석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스즈메 일행에게 시련을 안겨준다. 지쳐버린 스즈메는 결국 다이진에게 책임을 돌리며 모진 말을 쏟아내고, 그것을 들은 다이진은 원래의 홀쭉했던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그럼에도 다시 요석이 되지는 않는다. 자기이해의 과정은 혼란스러우며 종종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필수적이며, 비가역적이다.


다이진은 소타를 스즈메의 의자에 빙의시켜 버린다. 의자에 다리가 하나 빠져있던 탓에, 소타는 절뚝거리며 걷는다. 그 노란 유아용 의자는, 내적 결핍이라는 면에서 스즈메의 어린 마음과 닮아 있다. 스즈메는 그 결핍감을 소타에게 투사하여 바라본다. 명징한 자기이해를 갖추지 못한 까닭에,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자신의 옛 고향에서, 스즈메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말썽만 부리는 것 같던 다이진은 사실, 곧 문이 열릴 장소로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정의 끝에는 스즈메 자신의 문이 있다. 그제서야 스즈메는, 뒷문을 닫으러 다니며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바라본 경험이 자신에게도 힘이 되었음을 느끼고, 오래도록 외면해왔던 기억과 마주할 다짐을 한다. 그러자 다이진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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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는 뒷문을 닫는 과정을 통해, 그곳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에게 공감한다. 그것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관심이지만, 동시에 내부로도 향한다. 스즈메는 불행이란 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꽤나 일반적인 일임을 깨닫고, 그 속에서도 의연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이토록 쉽게 인간을 잡아삼키는 절망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이미 많은 것을 잃었고, 언제 불행이 다시 찾아올지도 알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시 세계와 마주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다 넓은 외부 세계와 교감하며 스즈메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고향 땅에서, 스즈메는 어릴 적 만들었던 자신의 뒷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사다이진은 거대한 백호로 변해 미미즈에게 달려든다. 다이진이 자기이해의 표상이라면, 또 하나의 요석인 사다이진은 용기를 상징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삶을 살아볼 다짐을 한 그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이 말이다.


사다이진은, 스즈메의 고향으로 가는 여정에 타마키 이모와 함께 합류했다. 그리고 타마키로 하여금 인정하기 힘든 감정들이 자신의 마음 속에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동안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 결과 타마키는 속에 담아놓고 있던 생각들을 스즈메에게 털어놓게 된다. 13년간 함께 했음에도 차마 밝히지 못했던 진심을 말이다. 그 대화는 명백히 파괴적이었지만, 동시에 해소적이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 타마키와 스즈메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방향으로 기능했다.


다이진과 사다이진이 미미즈를 잠재우고 뒷문을 봉인하기 위한 두 요석이었다는 사실은, 타인(소타)에 의존하여 이루어지는 문제 해결은 불안정하며 결국 지속 불가능한 것이므로, 내적 문제의 극복은 자기 내면의 힘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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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는 문을 열고, 처음으로 기억 저편에 갇혀 있던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아이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다니기를 잠시 멈추고 스즈메를 바라본다. 스즈메는 울먹이는 아이에게, 그동안의 여정을 통해 깨달은 사실들을 말해준다.


이제는 다 괜찮다고. 당시의 너에게는 너무 버거웠던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새로운 아침이 찾아올 거라고. 너는 죽지 않고 살아갈 것이며, 언젠가는 분명 어른이 되어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너를 위해주는 그들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문 속의 옛 기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드넓더라고.


그러니, 더 이상은 갇혀있지 않아도 된다고.


삶은 가끔, 인간을 잔인하리만치 흔들어놓는다. 영화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어렸을 적 큰 불행을 겪었던 스즈메라는 인물이 내적 성장을 통해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은유와 상징을 통해 하나의 신화로 만든다. 보편적이며 그만큼 상투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르는 위로의 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영속적인 진정성을 얻는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 3부작이라는 구조 속에서, 재난 피해자나 생존자들을 위로하기 위한 영화라는 평을 받고는 한다. 하지만 예술이란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는 것이니만큼, 마음 속에 잠긴 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들에게 그 범위가 미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크든 작든 마음속에 작은 혹 정도는 가지고 살아가기 마련이고, 인격의 완전한 통합은 언제나 요원해 보이니 말이다. 지난 기억의 극복과 성장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신카이는 섬세하면서도 독창적인 비유를 통해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호소력 짙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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