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u Mar 03. 2023

모두가 잠든 밤에도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건 참 이상해

<졸업>(2010)

브로콜리너마저 - 졸업 (2010)


군대에서, 교대근무를 했다. 그것도 근무시간이 매일 바뀌는 4교대 근무였다. 어떤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고, 다음 날은 밤을 꼬박 새고 다음 날 아침이 돼서 자고, 다음 날은 새벽에 자고, 다음 날은 이른 밤에 자는, 그런 생활이었다.


신진대사가 느려졌다. 밥을, 특히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몸이 뜨겁고, 어지럽고, 졸렸다. 잠을 얼마나 자든 피곤해서 점호시간을 놓치기도 했다.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실수가 잦았다. 무기력감이 심하게 들어 하루종일 누워서 휴대폰만 쳐다보게 되었다. 바로 옆방으로 가서 세탁기를 돌리는 것 같은 간단한 일도 행동으로 옮기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버틸 수 있었다. 가장 끔찍한 건, 누워도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일찍 잠에 들 생각으로, 밤 열 시쯤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잠은 전혀 오지 않는다. 열두 시, 한 시, 두 시... 지금 자면 몇 시간쯤 잘 수 있지? 내일은 여섯시 반에 일어나서 일하러 가야 하는데. 정신은 또렷해지기만 했다.


밤의 그 빈 자리는, 지난 실패의 기억들이 대신 채우고는 했다. 일을 실수해서 주의받은 일, 인사를 받아주지 않던 선임, 아무 대화도 나눠보지 못하고 서먹해진 사람들, 그들이 나에 대해 나눴을 말들. 내가 알 수 있는 것들과 알 수 없는 것들, 알아야만 하는 것들과 알기 싫은 것들. 기억의 파편들이, 잔상이 되어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작은 그릇이 담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설 때쯤이면, 가만히 누워있는 일은 일종의 자학행위가 되었다. 휴가는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내일도 일이 많을까? 그 사람은 그때 왜 그랬지? 내가 잘못한 건가? 이 정도면 할 일은 다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걸까?... 여기에 끝이 올까?


생각들이, 서로를 증폭시키면서, 나를 천천히, 집어삼킨다.


이나 게임으로 털어버릴 수도,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태블릿에 저장해놓은 음악을 듣는 것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거의 듣지 않았다. 한국어로 된 가사는 지나치게 명시적으로 느껴졌던 나는, 차라리 프랭크 오션의 회상적인 멜랑콜리아나 아발란치스의 반짝이는 따뜻함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는 했다.


그 날 우연히 브로콜리너마저 듣게 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새로운 운드와 멜로디를 찾아다니던 중에, 국내의 인디밴드도 한 번 들어보자는 생각. 하지만 첫 번째 트랙을 재생하고 얼마 안 있어 나는, 몇백 장의 음반을 들으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노랫말에 몰입해 있었다.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근무를 마치고 부서원들이 있는 생활관으로 돌아오면, 으레 한두 명씩은 깨어 있어, 수고했다는 말로 나를 맞아주고는 했다. 그러면 나는 이번에 중국이 비행기를 얼마나 띄웠느니 우리나라에 얼마나 가까이 왔느니 하는 이야기를 토로하고, 우리는 근무의 어려움이나 까다롭게 구는 간부의 욕을 나누고는 했다. 대화 주제는 주로 그런 것이었다. 서로가 힘든 상황에서 그 이상의 이야기는 응석이 됨을 알고 있었기에. 그 전까지는 알 수 없었던 사실들과,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노랫말들.


왜 잘못하지도 않은 일들에 가슴 아파하는지

그 눈물을 참아내는 건 너의 몫이 아닌데

왜 네가 하지도 않은 일들에 사과해야 하는지


스무 살의 내가 이 곡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분명 가사가 너무 노골적이라며 싫어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군용 침대에 누워 밤을 지새우던 나의 감정을 가장 깊게 들쑤신 노랫말은 분명 저것이었다. 결국 나는, 스무 살의 내가 바라던 것 - 음악을 '느끼는' 것을 넘어, 들으며 눈물을 흘려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게 속편한 일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내가 음악을 들으면서 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모두가 잠든 밤에도 이렇게

뭐 그다지 우울한 기분도 아닌데도

잠들지 못하는 건 참 이상해


정말이지, 불면증으로 기진맥진해있던 내가 체념하듯 재생한 하나의 앨범이 <졸업>이었다는 건, 운명이 아니었을까. 마치 내 사연을 들은 DJ가 숙고 끝에 골라준 곡처럼 말이다. 모두가 잠든 밤에, 정신은 말똥말똥한 채로, 난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홀로 메말라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에 빨려들어갈 때쯤, 마지막 곡 <다섯시 반>, 그런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울지 말고 잠이 들면

아침 해가 날아들거야

울지 말고 잠이 들면

아침 해가 날아들거야

알잖아


일단 잠에만 들면 새로운 아침이 찾아올 거라는 말도, 알고 있지 않냐는 말도, 전부 사실이었다. 당연한 건데, 잠시 잊고 있었나 보다. 저 말이 그렇게나 위로가 되었던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어느샌가 잠에 들었고, 다음 날 아침 극심한 수면부족에도 불구하고 제때 일어나는데 성공했으며, 근무를 마치고 무사히 생활관으로 돌아왔고, 그것을 몇백 번 반복한 다음 결국 전역의 날을 맞았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무엇일까?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키고 음악은 인간을 위로한다는 것? 노래 들을 땐 연주만 듣지 말고 가사에도 주의를 기울여 보자는 것? <보편적인 노래>도 좋지만 <졸업>도 참 좋은 앨범이라는 것?... 이게 일반적인 앨범 리뷰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려 했겠지만, 이 글은 자전적으로 시작한 만큼 그렇게 끝내려 한다. 그냥 예전에 이런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고 말이다. 하여간 뭐 그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로의 소망과 두려움이 마주볼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