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척 외면했던 나를 바라보다
2021년 겨울 어느날, 강남 교보문고를 둘러보다가 그림책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 푸들 한마리가 그려진 표지의 그림책이다.
"폭풍이 _ 영원한 집을 찾는 길 위에서의 만남" 이라는 그림책이다. 이 표지를 보니 집에있는 우리 구름이가 생각이 났다. 구름이는 흰색의 비숑이지만 그림책에 나오는 강아지의 아련한 눈빛과 닮아보였다.
책장을 넘기며 그림책을 보다가 눈물이 울컥 쏟아질것 같았다. 사람많은 교보문고에서 눈물을 쏟을 수는 없기에 책을 사들고 나와 얼른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그날 밤,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 눈물흘릴 각오를 하고 그림책을 펼쳐봤다.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폭풍이는 글이없는 그림책이다.
길에서 지내는 강아지가 한 여자와 가까워지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집과 가족이 생긴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책에서 방황하고있던 나의 모습을 봤다. 지난 10년여의 시간동안 모른척 외면했던 나의 모습이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강아지는 어두운 밤이 되어도 홀로 공원 벤치 아래에 잔뜩 몸을 웅크리고 밤을 보낸다. 이 장면에서 그동안 외롭고 힘들어했던 나 자신이 보였다.
물론 나에게는 따뜻한 집도있고, 든든한 가족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긴 시간 어둠속에서 살고 있었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를 하면서 내가 알아차리지못했던 산후우울증은 만성 우울증이 되어 있었다.
연년생인 두 아이를 오로지 혼자 돌보는동안 홀로 눈물 삼켰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잔뜩 웅크리고 있는 강아지의 모습은 밤마다 웅크리고 있던 내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나의 유일한 낙은 결혼 전부터 알던 동생과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것이 다였다. 새로 이사온 동네라 친구도 없고, 지리도 익숙하지 않았다. 이렇게 쓰다보니 마치 가족도 남편도 없는 여자 같지만, 친정도 시댁도 부모님들이 계시고 남편도 있다.
하지만 친정 시댁 모두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고, 남편도 육아나 살림을 잘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쌍둥이 보다도 키우기 힘들다는 연년생을 키우는 일은 오로지 나의 몫이었다.
남들 다 키우는데 뭐가 그리 힘드냐 하겠지만, 그 시간 나에게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터널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 같으면 운전해서 못가는 곳이 없고, 부모님이나 주변에 도움을 받을 생각도 하겠지만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내가 다 해야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힘들다거나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미련곰탱이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가족도 남편도 다 있는 나였지만, 늘 홀로 외딴 섬에 있는 것 같았고,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는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이 너무나 힘들다고 속으로 울부짖고 있었는데, 이 어두운 바닥에서 꺼내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긴 시간 애써 외면하고 꾹꾹 누르며 살아왔던거다. 그 사실 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신을 마치 다른 사람보듯 그렇게 모른척 지내왔던거다. 그림책에서 강아지 폭풍이를 보며 외롭고, 지쳐있는 나의 모습이 투영되어 보였고 한없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의 그 감정을 뭐라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참고 참기만 하며 그게 당연한듯 누르며 살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라는 사람이 말할 수 없이 짠해서 눈물이 났다. 양팔로 내 어깨를 감싸고 한참을 울었다.
그 많은 시간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대견하다고,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외면하고 모른척해서 미안하다고…
그날 이후로 나는 오로지 나로 살겠다 다짐했고, 지금 여기까지 와있다.
나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고,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앞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여전히 성장 중이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지만 분명 변화가 있었고,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다.
45살 아줌마의 성장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