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李씨(이하 이): 소설은 작가의 머릿속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니까 글로 읽으며 우리의 상상 속에 만들어지지만, 영화는 실제 형체를 가진 인물이 나오니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보는 사람의 상상이 필요하지 않지. 그냥 인물 자체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게 되잖아.
그래서인가, 소설로 읽으면서 상상했던 주인공 오기 Auggie(August)의 모습을 영화에서 확인하는 순간,
'어? 상상보다 정상적인데!'라며 조금 실망을 했더란다.
영화를 먼저 봤더라면, 분명 오기의 얼굴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느껴지고, 그로 인한 어려움도 충분히 수긍이 갈만했는데도 말이지.
선천적 안면기형에 청각장애로 인공와우까지 끼고 안명 복원을 위해서 스무 번이 넘는 수술까지 받았다는 대목으로는 훨씬 더 심각한 기형을 상상했었거든.
생각해 보면, 영화에서 지나치게 세밀하고 심각한 기형 표현을 했다가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겠어. 더군다나 오기는 초등학교를 다닌다는 설정으로 아역배우가 연기해야 하는데.
연극심리를 배우면서 deroling(디롤링_역할 벗어나기)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어. 자신의 역할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자기로 돌아오는 과정을 말하는 건데, 일부 배우들은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에서 디롤링이 안되어 힘들어지는 경우들도 있다고 했어.
아역배우들에게는, 특히 오기같은 역할을 맡은 아역배우에게는 디롤링이 정말 중요할 것 같아. 영화 속에서 학교 동급색과 선배들에게 상처 입고, 좌절하고,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냉담해지고 거리를 두고, 자신에 대해서 실패감을 갖게 게 되니까.
물론, 정말 좋은 마음을 가진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지지, 격려를 받기도 하고, 아름답고 훈훈한 결말로 이야기를 끝이 나기는 하지만, 안면기형이 완전히 정상이 되지 않는 이상 그 아픔의 상처와 앞으로 예상되는 인생의 난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잖아.
점선면(이하 점): 포스터에 나오는 헬맷을 쓴 어린아이가 오기이구나. 저렇게 헬맷을 쓰고 학교에 다닌 거야?
이: 선척적인 안면기형에, 청각장애로 인공청각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어서 오기는 유치원을 다니는 대신 부모님과 홈스쿨링을 했어. 그리고 10살에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거든. 영화에서는 엄마(줄리아 로버츠)가 오기를 학교에 처음 데리고 가는 날, 또 등하교를 하는 모습에서 엄마의 설렘과 걱정이 화면으로 전달이 되지. 이런 건 영화가 확실히 이점이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의 시선이 불편했던 오기는 외출할 때 헬맷을 쓰고 다녔는데, 학교에 다니기로 하고서는 부모님과 더 이상 헬맷을 쓰지 않고 등교하기로 했어. 사람들의 시선을 있는 그대로 받으면서.
점: 성숙한 어른들이야 오기의 얼굴을 보고서도 평범한 소년으로 대해주겠지만, 나이 어린 학생들은 그런 게 쉽지 않겠는데? 오기의 학교생활이 걱정된다.
이: 교장선생님은 자네가 말한 것처럼, 오기를 평범하게 대해주지. 그리고, 학교생활을 막 시작한 오기에게 도움이 되라고 세 명의 동급생을 불러 모아서 오기를 도와주도록 당부했어. 잭, 줄리언, 샬롯인데, 줄리언은 교장선생님의 기대와 달리, 오기를 괴롭히는 못된 일을 주도해.
줄리언이나 교장선생님의 부탁이니 마지못한 정도로 대하는 샬롯에 비해서 잭은 오기와 마음을 터놓은 친구사이로 발전해. 그렇게 마음을 주었던 때문에, 결정적으로 오기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
줄리언 패거리한테서 왜 오기랑 어울리냐는 질문을 받고서는, '교장선생님이 시켜서 그런 것'이라고 대답하는 걸 오기가 우연히 듣게 돼버렸거든.
점: 아이코, 정말 마음의 상처가 컸겠다.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힌 기분이란 그런 걸 두고 하는 말인 듯. 그럼 오기는 학교에서도 찐 외톨이가 되고 마는 거야?
이: 먼저 오기에게 다가온 아이가 한 명 있어. '서머 summer'라고.
소설은 챕터마다 화자가 달라지면서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오기의 친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화자의 역할을 해. 그리고 오기가 잭에게서 멀어져 버린 이유를 알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잭이 서머가 주는 힌트를 듣고서, 결국에는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오기에게 용서를 구하게 되었어.
서머나 잭은 오기와 교류하면서 오기가 외모가 주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며, 쾌활하고, 지적이며 진실한 친구가 될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오기의 편에 서 주지.
이렇게 오기의 내면이 단단하게 잘 성장한 데는, 단연 가족들 특히 부모님의 역할이 지대한데, 정말 소설 속 영화 속에서 볼법한 좋은 어른이자 엄마아빠가 오기를 지켜와 준 거였어. 하지만 이 좋은 부모님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건 오기의 탄생 이후로 가족에서 소외된 느낌을 갖는 이가 있었는데, 바로 오기의 누나 비아 via(Violet)이야. 소설 속에서는 비아도 1인칭 화자 중 한 명이야.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동생에게 빼앗겼다는 상실감도 있지만, 사춘기의 흔들리는 감정선 속에 그래도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있어.
이렇게 소설은 여러 화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감정과 관찰을 서술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거라서 읽는 맛이 있어. 영화도 아름다운 구성으로 무리 없이 볼만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때 더 매력적인 것 같네.
점: 일단, 오기 곁에는 부모님과 누나. 가족들이 똘똘 뭉쳐 그를 사랑해 주고 있으니, 이 씨가 제목에 적은 것처럼 험난한 인생의 바다에서 방파제를 두른 기분이겠다.
이: 바로, 그거야. 때론 가족들이 가장 아픈 존재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 힘껏 날아오르려고 하는데, 날개를 부러뜨리는 존재인 것 같은 느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발목에 매달린 모래주머니 같은 느낌, 달리고 싶은데 등에 올라타 나를 누르고 있는 짐 같은 느낌. 가족을 생각하면 존재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아 땅을 뚫고 내려갈 것 같은 먹먹함으로 괴로운 이들.
여기 오기의 가족들은 오기의 날개가 되어주고, 앞으로 전진하는 동력이 되어 주고 있어.
무엇보다도 오기가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상황, 거센 파도와 같은 공격을 막고 보호해 주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기에, 제목을 그렇게 붙여 봤어.
바닷가 방파제, 테트라포드에 부딪치는 파도를 본 적이 있다면 무슨 말이진 이해할 거야.
그게 없다면 파도는 그 무서운 속도와 수량으로 들이닥치겠지만, 방파제가 있기에 방파제 안쪽은 파도의 힘으로부터 안전하게 되잖아.
오기의 가족이 그런 것처럼, 이 세상의 가족들이 아이들을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내는 부모가,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