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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10. 2024

노벨트, 펜실베이니아

이李씨(이하 이):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리고 아플 때, 그래서 따뜻한 온열치료로 통증을 달래주고 싶을 때, 생각나는 소설 하나 소개할게.


2022년 3월 말, 오빠와 바통 터치로 제주대 병원에서 어머니 간병 첫 담당  일주일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동네 정형외과를 갔어. 시큰거리는 손가락 관절을 돌봐줘야겠더라고.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마비가 심하게 왔기 때문에 어머니의 몸을 움직이는 일부터, 옷을 갈아입히고, 시트를 가는 일, 전부 나의 물리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깨 근육이랑 손목, 손가락에 심한 무리가 왔던 거야.


어깨 물리치료를 마치고 나자 나를 다른 별도 공간으로 가라고 하더니, 액체가 담긴 네모난 용기 앞에 앉히고서는 파라핀 치료의 과정을 설명해 주시더라.

안내된 대로 손을 파라핀 용액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이 소설을 생각했었지.


파라핀 치료가 효과적이었는지, 치료를 마치자 손이 훨씬 편안해졌고, 아직까지 그때의 경험이 한번뿐, 아직 내 손가락은 그때만큼 아파본 적 없이 살고 있네.


소설의 주인공 잭 Jack이 이웃 할머니 미스 볼커 Miss Volker를 도와주라는 엄마의 명령을 받고, 그 집으로 갔다가 놀라서 혼비백산하는 장면이 있는데, 할머니가 불 위에 놓인 냄비 안에 손을 넣어 끓이는 걸 봤거든.


손가락 관절이 좋지 않아서 직접 집에서 파라핀 치료를 하는 걸, 잭이 내용을 모르고 할머니를 기괴한 마녀정도로 생각했던 거지.


이 대목에서, 처음 손가락 관절이 안 좋으면 이렇게도 통증완화를 하는구나, 하고 나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직접 파라핀 치료를 하고 있자니 재밌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하더라고.


점선면: 손가락 관절이 좋지 않은 이웃할머니를 돕는 일이라니, 집안일을 도와드리는 일인가?


: 여기, 이 소설의 특이점이 있는데, 잭은 손이 불편한 볼커 여사를 대신해서 부고를 작성해. 볼커 여사가 구술하면 잭은 받아 적는 거지. 소설의 배경이 1960년이고, 마을 신문이 주된 마을 공동체의 소식통이었던 시절이란 점, 말해둘게.


볼커 여사는 간호사 생활을 오랫동안 해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검시역할도 했어. 무엇보다 그녀는 노벨트Norvelt라는 마을이 생길 때부터 마을주민이었기 때문에 마을과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러기에, 볼커 여사가 작성하는 부고 기사는 단순하게 죽음을 알리는 정도의 기사가 아니었어. 사망자의 인생 축약판이기도 했고, 덧붙여 사망일자에 일어났던 중요한 역사적 사실(미국, 세계 통틀어)을 함께 부고기사에 싣는 거야. 볼카 여사는 그 의미를 이렇게 잭에게 말하지. '잘못한 일을 기억함으로써 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함'이라고.


: 흠, 잭은 볼커 여사를 도우면서 사망자의 사연이나 마을의 역사, 더 나아가 미국과 세계 역사까지 배우게 되는 거였네. 흥미로운 역사수업이다!


: 잭과 볼커 여사가 사는 마을, 노벨트도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공간이야. 별생각 없이 읽다가 노벨트가 실제로 마을이 대공황기에 서민들을 돕기 위해서 정부가 계획한 서민주거용 단체주택지이며, 이름을 루스벨트 대통령의 영부인Eleanor의 이름 뒷부분에서 따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작가인 잭 캔토스Jack Cantos가 태어나 자란 마을이라고 하니, 소설 속 잭의 모습과 작가의 어린 시절이 실제로도 닮았을 것 같아.


 소설 속 잭은 엉뚱한 상상력과 기발한 행동들로 주변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일이 많은데, 잭은 악의라고는 1도 없는 천진난만한 소년일 뿐. 천방지축의 사고뭉치 잭은 이상하게도 흥분을 하면 코피를 터뜨리는데, 작가도 어린 시절 그랬다고도 해.


주인공 잭은 내심 볼카여사를 두려워하게 돼. 마을에서 사망자가 연속적으로 생겨나는데, 볼카 여사에 대한 의심을 새록새록 키우거든. 그 와중에 볼카 여사가 잭에게 코피가 멈추도록 수술을 해주겠다고 하니, 잭은 또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의 상상 발동! 아무튼 독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해 주는 주인공이야.


: 천진한 소년과 나이 든 할머니의 독특한 역사수업 정도의 소설일 거란 생각에서 갑자기 연쇄적인 사망자라니, 뭔가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네.


: 그렇지? 누가, 왜, 노벨트의 사람들을?

잭은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의 책은 'Dead End in Norvelt'입니다. 우리말 번역서는 제목은 '노벨트에서 평범한 건 없어'입니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입니다.

원서 책 표지의 경비행기, 우리말 번역서 표지의 생쥐와 쌍안경과 기타 다른 사물의 그림들이 다 소설과 관련된 상징들이랍니다. 잭이 많이 엉뚱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우리말 번역서에 나온 잭의 모습이 너무 희화화된 거 아닌가 조금 아쉬워요.

제목도 '노벨트의 막다른 골목'정도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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