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Jul 01. 2024

누가 소년인가?

어바웃 어 보이_about a boy

이李씨(이하 이): 표지만 보고서는 제목의 boy가 모자를 쓴 푸른 눈의 소년을 가리키는 거라고 생각했어.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아하, 정작 제목의 소년은 모자 쓴 소년 마커스 브루어 Marcus Brewer가 아니라 그 뒤의 윌 프리먼 Will Freeman이었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지.


열두 살 소년의 성장기인 줄 알았는데 36살 남자의 성장기라고 해야 할까.

물론 마커스도 소설이 진행되면서 점점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철없던 윌이야말로 때늦게 철드는 존재다 보니, 청소년 소설이라는 범주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생각.


남편한테 영화 다운로드를 부탁했더니, 영화소개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영화가 12세 관람가냐면서 의아해하기도 했지.


간단한 인물 소개가 다음과 같아. 윌 프리먼은 이성교제에서 책임지는 일은 싫고, 가볍게 즐기는 관계만을 추구하는 남자여서 진지한 교제로 전환될 시점에는 여자를 차버린다. 다른 말로는 도망쳐버리는 사람.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최적의 대상을 찾아내는데, 바로 아이를 둔 한부모가정의 여성성들. 어느 날 교제하던 여자가 스스로 자신은 아이를 위해서 더 이상 윌, 당신과 교제를 할 수 없다는 여자 쪽의 선언을 먼저 듣게 되고서 바로 원하던 바라 생각하고, 이런 한부모 가정의 남녀들이 모이는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자신을 아이를 둔 아빠라고 속이고서.


점선면(이하 점): 남자 주인공 소개만 봐서는 12세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이지 않은 것은 확실하네.  마커스는 어때?


: 마커스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년이지. 엄마가 히피이고, 우울과 불안이 있다 보니 마커스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급기야 엄마의 자살시도장면까지 마커스가 보게 되면서, 엄마의 안녕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되었어. 어떻게 하면 엄마를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마커스의 결론은 윌과 엄마를 연결시켜 주는 것.


이제부터 마커스는 윌을 찾아가 그와 시간을 보내. 그를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야 하니까. 그러다가 이 어른애 윌과 애어른 마커스는 서로 알리고 싶지 않았던 자신들의 진짜 모습들을 들키고(혹은 자연스럽게 노출하게 되면서), 결국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스며들게 되지.


: 소설도 읽고, 영화도 봤으니, 각자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해?


: 소설은, 작가의 약간은 냉소적인 것 같기도 한 유머감각. 묘사나 대사에서 재치와 유머가 있어. 읽는 재미가 있어. 윌이라는 인물 자체가 조금 별나잖아. 아빠가 남겨놓은 유산(크리스마스 캐럴곡 하나의 저작권 수입)에 의지해 사는 중년 백수남이라는 처지부터가 특이하고. 그의 사고방식도 남달라서 웃음포인트가 많아. 마커스와 주고받는 대화나 상황에서도 그렇고.


영화는, 인물들의 영국식 악센트가 매력적이지. 그리고 영화다 보니, 아무래도 시청각적인 이미지. 그중에서도 윌이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웃고 떠드는 파티장면이 좋았어. 물론 대조적으로 혼자서 오도카니 거실에 앉아서 그 따뜻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떠올리는 쓸쓸한 모습도 대비되어서 좋았고.


: 결국 윌은 스스로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해 왔지만, 마커스를 만나면서 삶의 다른 국면을 경험하게 되는 거구나.


:음, 연결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마커스의 보호자 역할, 그러니까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지는 관계까지 나아가는 거야.


책임감은 성숙한 정서라고 생각해. 꼭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책임만으로도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살피게 되면서 인성면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고상한 정서이지. 그래서 그런가, 책임을 허투루 대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


때로, 책임은 나의 자유와 상반되어, 자유를 구속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 책임이 나를 지켜주기도 한다는 말, 이해할 수 있을까?


: 가요 중에 '아름다운 구속' 같은 거네.


: 노래가사는 연인에 대한 이야기지만, 연인뿐 아니라 결혼관계에서도 배우자에게 대한 헌신과 책임이 내 가정을 지키는 비결이고, 내 가정이 지켜지기에 나도 지켜지는 거라 할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의 혼인 외의 모든 성적인 관계를 금하신 것은, 자유에 대한 속박이 아니라, 결국 그들이 건강한 인생과 가정을 지키기 위한 보호조치라고 생각해.


부부에게 주어지는 자녀는 어떤가? 탄생의 기쁨에 비할 바 없이 다가오는 우주적 크기의 책임. 아기에게 세상의 전부가 된다는 이 놀라운 자아 영역의 확장. 인생의 그런 경험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게 소중하며 성스럽기까지 하다는 것.


그러기에 이타심이 없는 사람은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나의 의견이고,

없던 이타심이 결혼을 한다고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는 게 나의 관찰이기는 하지만


소설에서는 다행히 윌이 마커스와의 만남으로 '결혼'이 아닌 관계임에도 불고하고, 나뿐 사람(나뿐인 사람)에서 한 발짝씩 타인을 생각하고 이롭게 하는 경험을 쌓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네.


그리고, 마땅히 어른으로부터 지지와 사랑과 격려를 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우울한 유년과 청소년기를 보내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그래서 조금 더 따뜻한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대하겠다는 다짐까지.


소설과 영화가 나온 지는 꽤 되었으나, 여운이 여전한 좋은 글과 영화이니, 읽거나 보기를 권할게.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라는 개연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