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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y 20. 2024

우연은 없어

이李씨(이하 이): 이 소설에서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이었어.

There are no coincidents.(우연은 없다.)

정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우연이란 없는 걸까?


점선면(이하 점): 성경말씀에 그런 거 있잖아.

하나님이 너의 머리털까지 세신 바 되었고,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고.

모든 것이 우연처럼 보인다 하더라고 사실, 이 세상 만물의 시작과 끝, 그 안에 인생의 생사화복이 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뜻으로.


: 절묘한 타이밍으로 하필, 그때에, 그 장소에, 그 사람이 있어서 사건이 일어나고, 또 어쩌다 그때에, 거기에 그 사람이 있어서 일어난 오늘의 이야기도 우주적인 관점에서 신의 개입이라고 봐야겠군. 그런 의미에서라면, 개연성을 가장한 우연의 연속을 두고, 등장인물 가오리 Kaori가 말하는 '우연은 없다'는 세계관은 기독교적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


소설의 3분의 2는 총 다섯 명의 소년소녀가 겪는 하루동안의 해프닝이고, 서두의 3분의 1은 이것을 위한 빌드업인데, 이렇게 밀도 높은 묘사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건과 인물이 묘사되니까 중간에 이야기가 늘어질 틈이 없어서 흥미롭게 읽었어.


작가의 노트까지 꼼꼼하게 읽는 편인데, 인터뷰어가 소설을 구상할 때 다음 중 무엇이 첫 번째인가를 물었거든: 줄거리, 주제, 인물.

작가는 항상 인물이 먼저라고 답했어.


그러니, 나도 오늘 이 소설의 다섯 명 인물에 대해 말해볼까 해.


첫 번째 주인공, 작가가 자신과 가장 동일시한 인물로, 11살 소년 버질 살리나스 Virgil Salinas. 필리핀 이민자 가족의 두 번째 아들이고 수줍음이 엄청 많고, 학교공부를 따라가는데도 조금 어려움이 있어. 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지. 그러다 보니 가족이나 학교동급생들이 짓궂게 구는데도 아무 저항도 못하고.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애완 기니피그 걸리버 Gulliver를 돌보는 것. 그리고 조심스럽게 짝사랑하는 소녀를 떠올리는 것.


두 번째 주인공, 버질 살리나스의 사랑의 대상. 발렌시아 서머셋 Valencia Somoset. 청각장애이인이서 보청기의 도움을 받아. 하지만 완벽하게 소리를 듣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모양을 봐야만 소리를 이해할 수 있어. 어렸을 때 청력소실 이전에 발화를 연습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가능해. 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친구들에게서 멀어져 가고, 끝내 혼자 고립되었다는 느낌에 그를 암시하는 악몽을 꾸지. 하지만, 씩씩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기 때문에 그런 마음의 괴로움을 표현하지는 않아.


세 번째 주인공, 우주를 읽고 운명을 예언하는 능력을 소망하는 소녀 오리 타나카 Kaori Tanaka. 첫 번째 고객으로 버질을 얻었고, 두 번째 고객으로 발렌시아를 만나지. 버질과 오리는 이전부터 친구사이였고, 오리에게 자신의 연애상담을 의뢰한 차였어.  발레시아는 오리의 비즈니스카드 광고지를 보고, 자신의 악몽에 대한 해석과 해결책을 얻고자  오리에게 연락을 했어.


네 번째 주인공, 오리의 여동생 젠 Gen. 오리의 조수 역할을 하며 가오리 뒤를 쫓아다니지. 아직은 어려서 천방지축이고 배워야 할게 많은 이지만, 오리에게는 꽤나 든든한 조수이자,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도우미 역할도 하지.


마지막 주인공, 버질과 발레시아를 못살게 구는 악역의 쳇 불렌 Chet Bullen. 소외되는 약한 친구들을 못살게 구는데서 만족감을 느끼는 못된 성격을 가졌어. 버질이 자기를 두려워하고 아무 반항도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 기세등등하지. 하지만 발렌시아는 만만치 않게 저항을 하고,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어려운 면은 있어.


: 하루동안에 해프닝은 어쩌다 시작되는 거야?


: 시작만 말해두지. 버질은 오리에게 연애상담을 받기 위해 토요일 오전에 약속을 잡고, 오리의 집으로 가고 있었어. 빠르게 가는 길은 숲을 지나는 거였지. 그런데, 그 시간에 쳇도 숲에 있었어. 쳇의 목표는 뱀을 사로잡는 거였어. 동급생 중 하나가 뱀껍질을 봤다고 자랑하는 걸 듣고는 시샘을 부린 거지.


숲에서 버질과 쳇이 딱 마주쳤네. 쳇의 못된 성질이 발동을 했겠지. 버질의 백팩을 낚아채어 달리다가, 그 가방을 오래된 우물 속에 떨어뜨렸네. 그런데, 그 가방에는 버질의 애완 기니피그 걸리버가 들어있었다는 것.


자기 악몽에 대한 해결책을 물으러 오리의 집으로 가는 발렌시아. 그녀도 이 시간대에 숲을 지나고 있었어. 좋아하는 옛 우물의 뚜껑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들여다 보아도 어둠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녀는 청각장애가 있잖아. 다른 동물들이 혹시나 떨어질까 하고 우물의 뚜껑을 닫아두지.


: 이런, 그 우물 속에 버질이 있었겠구나!


: 결말은 모든 시련과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어찌 다 마무리가 되는데, 그게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해.


이 하루동안의 사건으로 각자 자신을 대면하고, 그 이전과 달라지는 계기가 되니까.


버질은 자신을 하찮게 여기며 조롱하는 쳇에게 굴하지 않는 눈빛으로 대결하고, 엄마에게도 자기가 싫어하는 별명을 그만 부를 것을 요구하지.


발레시아는 오리가 비즈니스 동업자, 친구가 되어달라는 요청에 하늘을 날 것 같은 행복감에 젖어.


오리도 발렌시아에게 자신에게는 좋은 미덕과 재능이 있는 것을 알아봤고, 이 날의 해프닝으로 역시나 이 세계에 우연은 없는 거라며 자신이 두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이 있음을 알지.


쳇, 어느 것 하나에도 우수하지 못한 것이 그의 가장 취약한 열등감의 근원이자 근심거리며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동기였는데, 버질에게도 발렌시아에게도 된통 깨어지지. 쳇의 불안정한 마음도 이맘때 아이들의 걱정거리를 대변하는 것일 수 있어. 무엇 하나에라도 뛰어나고 싶고, 그래서 부모의 인정을 받고 싶은데, 그게 안되다 보니 초조해지고, 이상한 방법으로 자기 효용감이나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것 말이야.


: 그런데, 하루 동안의 경험만으로도 그렇게 극적인 변화가 가능할까? 특히나 주인공 바질은 너무나 극단적인 변화인데?


: 사실, 바질의 수줍은 성격은 별안간 고쳐지는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발렌시아가 앞에 서 있는데도 가까스로 안녕 이라는 말만 겨우해.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으로 숲을 벗어나 집으로 향하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도 성찰하고 있었지.

그래서 쳇이 딱 자기에게 조롱을 했을 때, 그때는 정말 더 이상 비참했던 자기의 옛 모습을 더 이상 붙들고 싶지 않아서 강하게 나섰던 게 아닌가 해.


바질은 우물 안 어둠 속에서 온갖 상상을 하는데, 당연히 죽음도 생각했겠지?


내가 좋아하는 문장 있잖아.

"죽음을 직시하면 현실이 충만해진다"

바질에게도 그런 비슷한 각성이 온 거야.

 

말 안 듣는 못된 개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본 적이 있는데, 생존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그 주인이 강아지를 구하고 돕는 역할을 하게 해 주잖아?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는, 개들이 주인의 말을 잘 듣는 순종적이고 겸손한 개가 되더라.


생존에 대한 불안이 몰려올 때, 그런 순간에 현재현실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얻게 되는 것 같아.


: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그런 걸까?


: 작가의 주제는 이거였어.

You are not alone. 너는 혼자가 아니야.


아마, 책을 읽는 어린 독자들은 버질일 수도 발렌시아일수도, 오리 혹은 쳇일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면 조금씩 이 사람 저 사람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작가님의 메시지처럼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따뜻하게 얘기해 주는 소설이라 생각해.


 성격 때문에, 장애 때문에, 친구가 없는 고립감, 무엇하나 잘 해내지 못한다는 두려움 이런 것들에 위로하고, 격려하고, 못되게 굴다 보면 바보 같은 생각에 빠지고 우습게 된다는 교훈까지.


이번의 책은 'Hello, Universe', 우리말 번역서 제목은 '안녕, 우주'입니다.

문장이 쉽고 간결하고, 글자크기도 무척 시원시원합니다. 스토리 전개도 산뜻해서 부담 없이 페이지가 쭉쭉 넘어가는 성취감을 느끼기에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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