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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l 29. 2024

사라진 여인

Gone Girl_나를 찾아줘

이李씨(이하 이) : 여태껏 내가 책으로 만난 인물 중에 가장 사이코패스적인 인물, 에이미 Amy를 소개할게.


앞선 글에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 대해 말하면서,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했었지.


이 소설 '나를 찾아줘 Gone Girl'에서 에이미가 자신의 일기로 부린 농간이 딱 떠오르더라고.


우리가 기록물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가?

어떤 사건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정황들을 채집하는 과정에 발견하게 되는 기록물.

그것은 얼마나 정확하고 정당하며 진실한가? 그에 대한 의심 없이 쓰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때, 과연 그 기록물은 정당한 증거로서 가치가 있을까?


대부분. 우리는 쓰인 내용을 '진실'하다고 믿고, 그것이 유의미한 '증거'라고 생각하지.


그런 오류를 미리 간파하고, 기록자에게 유리하도록 왜곡된 기록물이면, 그를 길잡이 삼아 진실을 찾으려는 사람은 미궁에 빠질 수밖에.

더군다나 그것이 특정 인물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면.


점선면(이하 점): 그러니까 이 씨의 말은 에이미가 쓴 기록이나 그녀가 남긴 어떤 메시지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거네. 보고 듣고, 읽는 대로 믿지 마라.


: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에이미가 벌인 일들을 보면, 그녀의 말과 기록에 속아 넘어간 인물들, 혼란에 빠진 인물들의 연속이지.

미안, 너무 결말로 직진한 것 같네.

소설의 전제는 아름답고 착하고 능력있고 매력적인 에이미인데, 이 중대한 반전 트릭을 대놓고 떠벌이고 있으니.


: 왜? 처음부터 에이미를 의심하면서 행간을 읽어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방법이 될 것 같은데?


영화 포스터를 보니 어느 날 에이미가 실종되었고, 그녀를 찾아가는 미스터리물인 것 같군.


: 완벽한 커플, 아내의 갑작스러운 실종. 자, 그럼 처음에는 남겨진 남편에 대한 걱정과 염려, 사라진 에이미의 안전에 대한 이슈들이 떠오르겠지. 그다음 차례는 어떻게 될까? 사건의 인물과 가장 가까이 있는 남편, 어느 순간 그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되지.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렇게 된 게 아니라면?


orchestrate-복잡한 계획, 행사를 세심히 또는 은밀히 조직하다-는 단어가 걸맞은 에이미의 큰 그림을 하나 씩 맞춰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일 수도.


고백하건대, 가끔은 소설을 읽다 말고 뒷부분으로 가서 결말을 미리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서 읽어나갈 때가 있거든.

아무도 나의 독서생활에 관심이 없으니 뭐라 타박을 들을 기회도 없는데, 오래전 연수 시간에 함께 읽기를 하는 책 결말이 너무 궁금해진 거야. 복도 벤치에 앉아서 뒷부분을 열심히 읽고 있다가 딱 지도강사님한테 걸렸네. 내가 무안해질 만큼의 액션을 하셨지.


하지만, 어쩌란 말이냐.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일단 결말을 알아야 맘이 편해지니까. 그리고 왠지 전능자의 능력을 가진 것 같은 느낌이잖아.


실제 인생살이에서 느껴보지 못할 예지의 희열 혹은 권세.

아마 내가 책 읽기를 통해서 잠시잠깐 누군가의 인생에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된다는 게 나의 '결말먼저 읽기'에 대한 변론일 수도 있겠다.


소설을 에이미와 남편 닉 Nick의 시점이 번갈아 나오는데, 처음에는 불운이 닥친 부부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깊게 파면 팔 수도록 서로에게 실망하고, 칼날을 갈아온 라이벌이 두뇌게임을 벌이는 것 같은 양상이 되거든.


결정적으로 닉은 에이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갈파한단 말이지. 자신이 살인 용의자가 아님을 밝히는 유일한 방법은 에이미가 살아 돌아오는 것 밖에 없는데, 닉은 에이미를 움직이기 위해서 에이미가 만족할 만한 유인책을 써야 하잖아.

그가 선택한 것은 '허점이 많고, 실수도 하고 아내에게 잘못도 하였었으나, 이제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반성하고, 다시 돌아올 아내를 진심으로 아껴 줄 각오가 되어 있는 남자'의 연기였어.


모처에서 닉의 기자회견을 보고 있던 에이미, 이제 자신에게 필요한 남편의 자질을 보여준 닉에게 돌아가기로 마음먹지. 그리하여 조우한 그 둘.


소설은 그 둘의 마지막 대화가 이제까지 몇백 장의 페이지를 달려온 소름 끼치는 조작과 사건들보다 더 충격적으로 공포감을 갖도록 하고 끝이 나.


: 뭐야, 화해가 아니라 적과의 동침인 거야?


: 처음부터 에이미를 사이코패스형 인간이라 소개했잖아. 순수한 마음으로 소설을 읽다가 그녀가 얼마나 나쁜년인지 감이 오는 순간부터 그녀의 말, 기록, 행동들이 다르게 해석이 되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잘 몰라. 너무 교묘하게 속여서. 그런데, 제대로 그녀를 아는 닉... 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 이 씨는 왜 이런 책을 읽은 거야? 이런 침침하고 찜찜한 이야기가 좋아?


:  그러게. 내 영혼을 살찌운다는 느낌은 안 들고, 뭔가 너덜너덜하게 털린 기분인데. 읽을 때만큼은 몰입이 되잖아. 끝도 궁금하고.

못된 인간들이 못되게 굴려면 정말 한도 없겠다 하는 인간의심과 회의. 그러기에 어쩌면 평범한 오늘 하루 일상이 견딜만하고 행복한 것일 수도. 헷.


원서가 아니었으면 안 읽었을 텐데, 읽는 동안 꾸준히 영어는 나의 무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겠지. 그걸로 위안 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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