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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Oct 14. 2024

 작은 일, 작은 걸음

이李씨(이하 이): 오늘의 책은 내가 평소에 자주 인용하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어.


'작은 일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작은 일을 완벽히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언제, 이 이야기를 하냐면, 학기 초 반 아이들에게 학급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정해지고 난 후에.

분리수거하기, 칠판 닦기, TV 모니터 끄기, 교실 등 켜고 끄기, 노트북 충전함 전원 켜고 끄기, 게시판 관리하기, 그날 시간표 칠판에 적어두기, 등등 학급 살림에 자잘한 손이 가야 하는데, 이걸 한 명 한 명 역할을 부여하는 거야.

한 사람이 하는 한 가지 역할만 보면 뭐, 대단해 보이지 않거든.

하지만, 그 작은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미루지 않고, 성실하게 해 내는 것은 학급 살림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꼭 저 말을 해 두지. 그 이후에 자기 역할을 잘 해내는 친구들에게 저 문장으로 칭찬해 주고.


오늘 소설의 주인공도 자기 자신에게 늘 '작은 걸음 small steps'를 잘 걸어가라고 스스로 다짐하고 격려해.


지금 당장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마음먹은 바가 빨리 이뤄지지 않아 조급함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읽고서 주인공의 결의에 공감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인공 테오도르 Theodore에게는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별명이 하나 있어. 겨드랑이 Armpit(암핏)이라는 이 별명은 캠프 그린레이크 Camp Green Lake에서 얻은 건데, 그곳은 청소년행동교정시설, 우리나라의 소년원쯤에 해당되는 곳이야.


점선면(이하 점): 캠프그린레이크라면, 이李 씨가 소개해준 중2남학생들을 사로잡은 이야기에 배경이 되는 곳 아닌가?


: 맞아. 그곳에서 주인공과 같이 구덩이를 파던 인물들의 후속 이야기 편이랄까.

이번 소설에서는 암핏(이 인물을 이렇게 부를게)이 어쩌다가 캠프에 가게 되었는지 사연과, 출소 후에 집에 돌아와서 생기는 일들이야.


이 소설에서는 공공연히, 혹은 은연중에 흑백인종차별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암핏이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체격의 흑인 청소년이라서 오해받고, 함부로 취급되는 장면들이 있어. 교정시설에 들어가게 된 이유도 폭행사건 때문이었고. 부모님은 혹시나 마약을 하는 건 아닌지, 늘 암핏을 걱정스럽게 관리하려 들어.


하지만, 폭력 전과로 교정시설 다녀온 근육질의 건장한 흑인 청소년인 암핏과는 부조화스럽게 그의 곁에 있어주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뇌성마비를 가진 10세 백인 소년 지니 Ginny야. 암핏은 지니와 같은 지붕아래 사는 한 가구 두 세대 가족인 셈인데, 둘이 산책하는 걸 즐기지.


소설에서 작가는 암핏이 달라지는 시간을 이렇게 말해.

그건 교정시설에서 지내며 노동하던 시간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와 집안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달라졌다고.

보통의 일상, 그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이야. 그와 더불어 연약하지만, 스스로 서려고 애쓰는 지니와 소통하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암핏은 자기 인생을 잘 살아보려고 해. 조금씩 조금씩.


그런데, 같은 교정시설 출신인 엑스레이 X-ray가 찾아와서,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다면서 암핏을 꼬드기고, 마뜩잖아하면서도 암핏은 엑스레이의 제안대로 모아 두었던 돈으로 유명가수 카이라 딜런 Kaira Delon의 콘서트 티켓을 사는데 쓰고 말아.


여기서부터 사건은 어렵게 꼬이는데, 몇 번을 가슴을 졸였다가 쓸어내렸다가 하면서 끝에 도착했네.


점: 암핏은 나름 건전한 삶을 지속하려고 했는데, 엑스레이라는 친구가 문제였던 거네. 결말에는 엑스레이도 어떻게 정신을 좀 차리게 되나?


이: 엑스레이는 한탕주의자라서, 티켓을 재판매해서 한 번에 큰돈을 벌겠다는 계획이었어. 미국에서는 아예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걸 스칼핑scalping이라고 부르나 봐. 위법한 것은 아닌데, 높은 이윤을 남기려고 할 수록 높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지.


암핏은 아르바이트로 조경업자 밑에서 땅을 파는 일을 하는데,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암핏이 엑스레이의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정신적인 위안을 삼는 대목이 여러 번 나와. 암핏은 자신이 정직하게 흘리는 땀과 그에 대한 보상에 더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인물이어서.


소설 말미에는 작업자득으로 후드려 맞은 엑스레이가 암핏과 함께 땅 파는 일에 동참하겠다고 하긴 하는데, 글쎄, 엑스레이의 진실성은 모호하지.


소설의 다른 축 하나는, 유명 가수 카이라 딜런의 서사인데, 암핏과 지니는 어쩌다 대스타인 그녀와 친구가 돼. 그리고 암핏과 카이라 사이의 묘한 기류.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까지는 아니지만, 요즘 말로 썸이 오가고.

오해, 다툼,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카이라 계부의 사악한 계략까지.

중반 이후는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소설이었어.


점: 암핏이 작은 발걸음을 내디디며 앞으로 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했잖아. 정확한 문장이 어떤지 알려줄래?


이: 

The important thing was to take small steps and just keep moving forward.

Life is like crossing a river.

If you try to take too big a step, the current will knock you off your feet and carry you away.


암핏이 자신의 상담선생님께 들었던 말을 카이라에게 들려줘.

"중요한 건 작은 발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거야.

인생은 강을 건너는 것 같아.

너무 큰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면, 물살이 너를 쳐서 넘어뜨리고, 널 멀리 끌고 갈 거야."

                     


오늘의 소설은 루이스 새커 Louis Sachar의 SMALL STEPS입니다.

우리말 번역서는 '작은 발걸음'으로 되어 있어요. 우리말 번역서 표지는 재미있게도 소설 속 인물들을 그려놓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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