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지 이유로 늘어나는 이른둥이가 요즘은 비율이 10%에 육박한다. 그에 대비해 관련 의료진들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을 꼬집은 뉴스였다. 내가 이른둥이를 낳지 않았다면, 그냥 흘려보냈을 뉴스였겠지만, 귀가 쫑긋했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 건강한 임신을 유지하고 있었고, 조기진통으로 입원하기 이틀 전 정기검사에서도 태아도, 엄마도 다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불과 일주일도 안된 29주 차 4일에, 몸무게가 고작 1490g 밖에 안 되는 극소 저출생 체중아, 팔삭둥이 아기를 낳았다.
자궁수축 억제제를 투여하며 입원해 있을 때,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나에게 안부와 위로의 말을 전했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자궁경부가 1cm도 안 되는 것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 모르셔서 내가 며칠 뒤에 퇴원할 것이라고만 믿고 계셨기에 크게 위로가 되는 말을 건네주시진 못했었다. 심지어 남편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다들 "괜찮아, 곧 퇴원할 거야" 이런 구태의연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단 한 명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건 친오빠였다. 우리는 평소 안부인사도 잘 안 해서 전화도 어색한 '찐 남매'인데, 오빠는 전화 와서 이렇게 말했다.
"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그러니까 자책하지마"
이 말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나쁜 일을 겪으면, 보통 '대체 내가 무슨 일을 잘못했던 걸까, 나는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 사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큰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런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고통을 준다.'
여태 내가 큰 고통을 겪지 않았기에 내가 겪어야 할 고통은 이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냉담자였지만 아기를 낳고 난 뒤에 성당에 갔다. 미사 내내 눈물이 흘렀다. 아기를 위해 기도하러 갔지만, 솔직히 하느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꾸 불쑥 올라왔다.
'다른 고통으로 주시지, 왜 우리 아기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나요?'
그런데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그 미사에서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혹시나, 고통받고 있는 교우들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시겠지요.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하지만 꼭 잘못했다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는 그리스도님께 솔직하게 좀 원망하셔도 됩니다."
그 미사 동안에 하느님에게 내내 원망하며 눈물을 쏟아냈고, 그 덕분인지 세상 모든 슬픔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던 내 슬픔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매일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아기를 보며 나 또한 삶의 의지를 다지게 되었다. 엄마와 아기는 이심전심인 건지 아기는 나날이 건강해져서 입원 54일 차에 온전히 내 품으로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