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Mar 02. 2024

A/S 기사는 뭘 하는 사람인가?

회수 사거리 봄봄 앞에서

"아이 사장님, 이거 D, 드라이브에 놓고 시동을 걸면 걸립니까게?"

"네..?"아주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어제 저녁 마신 한잔 술이 거북해서 아침에 라면으로 해장했다.  

아침 이른 시간 기상을 해서 예정치도 못했던 일정으로 움직였더니 꽤 피곤한 하루다.

계속되는 겨울비는 사람의 기분을 축축하게 만든다.

서귀포로 넘어가는 길이다.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계속오는 상태라 귀찮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간이다. 어머니를 뵙고,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서 제주시로 향했다.

비가 오고 안개가 많은 날이라 어두워져 가는 길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일찍 서둘렁 가라" 어머니가 갈 길을 재촉한다. 일어섰다.

비는 강약을 조절하면서 세차게 내린다.



계기판을 보니 제주시까지 갈려면 주유해야 할 것 같았다.

주유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예민한 일이다. 몇 달 전 조그만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는 길을 생각해 보니 지난번 주유를 하고 이상이 없던 곳이 생각나길래 그리로 코스를 변경했다.

휘발유 가격을 보니 제주시보다 조금 저렴하길래 30리터를 채웠다.


이제 분위기를 잡고 제주시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추적추적 윈도 밖으로 내리는 겨울비는 스산하기도 하다.

오후 4시를 넘어선 시간이라 배꼽시계도 가동을 하는듯하다.


" 뭐 먹고 갈까? " 일단 아내의 의향을 들어본다.

" 아니 출발했는데 그냥 갑시다.." 귀차니즘이다. 날씨도 그렇고 해서 달렸다.


아침에 못 마신 커피 생각이 자주 났다. 비가 오고 추운 날씨라 커피 한 모금은 딱 일 것 같았다.

가는 길 도로변에는 여러 개의 커피숍이 있다. 드라이브족들을 위한 맞춤형 가게다. 내가 종종 이용하기는 하지만 커피 맛은 없다. 그냥 분위기와 기분으로 찾을 뿐이다.


커피숍 앞에는 차들이 몇 대 있길래 우리도 적당한 장소에 차를 세웠다.

주차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아내에게 카드를 주고 나는 차 안에서 시동을 켜고 있기로 했다.

늘 하던 방식이다.



"나는 따아, 당신도 먹고 싶은 거로 한잔하시고, 내가 사비로 살게 ㅋㅋ.."

아내가 주문하고 이리저리 가게 앞을 서성이는 걸 보니 차례를 기다리는 모양이다.


좀 전에 주유를 하고 나올 때 차가 심한 떨림을 받는 느낌이었다. 

시동을 끄지 않고 아내를 기다리는 중에도 차가 왠지 막혔다가 뚫리는 퍽퍽한 기분, 툭툭 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오랠 것 같아서 일단 자동차의 시동을 껐다.


잠시 후 아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시동을 거는데 시동이 안 걸린다.

시동 버튼을 여러 번 돌렸는데도 세라 모터가 탁 걸리지가 않는다.

몇 번 했는데도 마찬가지다.


"추워, 가자" 아내가 두 잔의 차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다. 근데, 차 안에는 커피향이 없다.

"응, 좀 기다려봐, 차가 이상해, 시동이 안 걸려"

"무슨 말, 천천히 다시 한번 해봐" 이게 오늘 사건의 시작이었다.


몇 번을 시도하는데도 마찬가지다. 차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차가 정차해 있는 곳은 커피숍 앞이다. 바로 앞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차선은 우회전 차선이다.

수없이 차는 오는데 내 차가 떡 서 있으니, 정체가 심하다. 보이지 않는 눈총이 많다.


머리가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이 차를 구입하고는 이런 적이 없었다.

나는 차를 사전에 정비하는 성향이라 A/S 센터 사장님도 칭찬을 해주시는 편이다.

그런데 현실이 이러니 어쩌랴.


다시 한번 자세히 경고등을 체크했다.

시동을 걸려면 안 걸리고 나중에는 연료게이지 위에 있는 길쭉한 타원형의 경고등이 들어온다.

빨간색으로 LOCK이라고 뜬다.

이런 때 매뉴얼이라도 봐야 하는데, 매뉴얼은 지난번 집에서 체크할 부분이 있어서 거실에 두고 왔다.  



일단 차는 움직여야 하기에, 급히 보험사에 전화했다. 몇 년 만에 해보는 긴급 출동 신청이다. 사정을 얘기했다. 만약 견인하게 되면 기본 10km는 보험상 무료이나, 제주시까지 가면 10km를 벗어난 거리만큼 1km당 2,200원의 견인료를 내야 한다고 한다. 할 수 없지 않은가? 승낙하고 견인을 보내달라고 했다. 이제는 기다려야 한다. 제주에서 10km 이상 견인할 일이 없다. 그래서 난 매년 보험 갱신 때마다 항상 10km를 신청한다.


기다리는 동안 일단 내가 다니는 자동차 A/S 센터에 전화했다.

다행히 기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 현재 상황을 얘기하니 해결책이 없다고 한다. 경고등 상황을 얘기해도 답변이 없다. 연료를 제대로 못 보내주는 경우도 있고, 세라 모터 쪽이 문제 일수도 이고, 전기 쪽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쨋든 차를 봐야 진단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견인해서 오더라도 연휴이기 때문에 3월 4일이 돼야 A/S가 가능하다는 말만 하고 끊는다. 참 야속하고 무책임하다.


저녁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는 시간이고, 원래 차량 통행이 많은 곳인지라 길목을 막은 내 차를 앞에 두고 난리다. 방금 차를 주문하고 가져오긴 했는데 마실 기분이 아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고 당황하기만 할 뿐이다.


"고장 차량을 표시하는 삼각대를 세워야 하지 않나요?" 아내가 얘기했다.

"어, 그래, 트렁크에 있나? 사용을 해본 적이 없어서..찾아보자"

오가는 차들에게 우리의 상태를 알리기 위해서라도 삼각대는 세워야 한다.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일단 트렁크를 뒤졌다. 10여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채로 고이 묻어 있었다. 얼른 삼각대를 세웠다.


제주에서는 불법주정차 단속을 정기노선 버스들이 이동형 카메라에서 한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주정차를 금하는 버스정류장 인근이라 버스가 올 때마다 불법주정차로 찍힌다. 나중에 과태료 청구서가 날아올 것이다.


비상주차한 모습



비 내리는 저녁 시간이라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방금 주문한 차라도 마시면서 긴장을 풀어보기로 했다. 커피숍 처마 밑에 서서 아내와 나는 둘이 차를 마시면서 물끄러미 움직이지 않는 차만 쳐다봤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3월5일 아들이 입대한다.

가기 전 주말에는 이것저것 준비를 해야 하는데 차가 없으면 움직일 방법이 없다. 깜깜하고 막막하다.

아내와 나는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혹시나 이 난처한 자리를 벗어날 방법이 있나 해서다.

차를 아는 지인에게도 통화를 해보고, 다시 자동차 A/S 센터로도 전화했다. 그러나 별만 무소득이다.


이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 견인 기사들이 비도 오고, 내일부터 연휴라 모두 집에 들어가서 기사들이 없네요. 일단 제주시로 갈 수 있는 견인차를 수배해야 하니까 되는 데로 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보험사 긴급출동 서비스에서 전화가 왔다. 날씨와 일정도 묘하게 꼬인다.


잠시 후 다시 휴대전화가 울렸다.

" 견인 기산데요, 방금 제주시까지 견인하고 지금 서귀포 가는 길입니다. 지금 위치는 한라산 5.16도로구요, 거기까지 갈려면 빨라야 30분 이상이 걸립니다. 어떻게 할까요? " 어렵게 구한 견인기사란다. 방법이 없다. 기디리겠노라고 가급적 빨리 와달라고만 해서 전화를 끊었다.


또 하나 난감한 일이 생겼다. 차를 견인할 때는 동반자 탑승이 1인밖에는 안 된다고 했다.

아내와 난 같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고민을 하다가 일단 아내는 먼저 버스편으로 제주시로 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우리 차가 멈춘 곳이 제주시로 가는 급행버스의 정류장이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이 비 오는 날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는 "Bye Bye"를 하면서 헤어졌다. 아내는 버스를 타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방법이 없으니, 아내는 먼저 가긴 하지만 혼자 나를 남겨두고 감에 불안하고 미안한 모양이다.


"견인차가 오면 연락해" 메세지만 남기도 떠났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 비 오는 날이다. 남의 집 처마 밑에 혼자 있자니 처량하기도 하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다났다. 여기는 1980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한창 쏘다니던 시절, 친구가 있어서 몇 번 찾아왔던 기억이 전부다. 이 마을이 산간이라 접근성이 그리 좋은 곳은 아니고 교통도 불편한 곳이다.  


기다림은 길고 어렵다. 죄 없는 휴대전화의 시계만 자꾸 본다. 약속한 30분이 훨씬 지났는데도 견인 기사는 연락이 없다. 지나가는 차들만 떡하니 서있는 삼각대와 비상등을 보고는 멈칫한다. 바로 옆에 서있는 내 모습을 애처로이 보는 것만 같았다.


집착이고, 선입견이다.


자꾸만 좀 전에 주유했던 영수증을 꺼내봤다. 휘발유 30리터라고 내역이 인쇄돼 있는데, 진짜 휘발유를 넣었나? 주유하고 나오자마자 차가 떨리는 게 이상하던데...

휴대폰을 꺼내서 검색했다 " 휘발유 혼유 승용차.." 검색 결과가 지금 내 차의 현상과 거의 유사하다. 시동이 안 되는 거, 힘이 약한거....

온갖 생각과 망상이 밀려온다. 일단 견인 기사가 오면 뭔가는 답을 줄 테지 하고 침착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 A/S 센터 주차장에 차를 놓고 가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전화를 주면 정비를 하겠습니다."

견인하고 제주시에 가면 퇴근 시간이 넘을 것 같아서 A/S 센터에 전화를 하니 나오는 답변이다.

이럴 때 인간은 시스템이나 제도 앞에서 아주 나약한 미물이 된다. 어찌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울분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시간을 보니 여기 내가 멈춘 지도 1시간이 넘어간다. 6시 되기 전에만 조치가 되면 좋겠는데.

이런저런 오만가지 생각을 하노라니 모양이 좀 이상한 차가 비상등을 켜고 달려온다.

견인차였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급히 손을 들고 기사님을 안내했다.


"먼저 차를 한번 볼게요" 견인 기사가 급히 서둘러서 운전석을 열고는 고개를 삐쭉 넣었다.

" 아이, 사장님 D, 이건 D잖아요, 여기서 시동이 걸립니까?"  무슨 소리여..

당황하면서 자세히 보니 기아가 D에 있었다. " 아니, 이런!!!"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기어를 드라이브 모드에 넣고 시동을 걸려했던 것이다.


할말이 없다.

기사가 기아를 P에 넣고 LOCK을 풀고 시동을 거니 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호음을 내면 시동이 걸린다. 멍해진다. 나는 바보였구나.


견인 기사는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처리하고는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리고는 "이젠 뙜죠..가세요.." 한마디 말과 함께 유유히 사라진다.

나도 급히 삼각대를 차 안에 담아놓고 주위를 살피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멍하니 달리다가 아내에게 전화했다. 차를 가지고 가니 중간에 내리면 픽업해서 가겠노라고 말이다.

어떻게 된 거냐고 들어보는데 할 말이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내가 왜 이랬는지를 말이다.  

가다가 멈춘 상태, 그러니까 드라이브 모드에서 시동을 건채로 아내가 커피 주문하는 것을 기다리다가 그냥 시동을 껐다(D 모드). 그리고는 그 상태(D 모드)에서 그대로 시동을 건 거다.


" 걸린다? 안 걸린다 ? "


왜! 그랬을까, 평소 침착하고 주의 깊던 내가 말이다.

난 온통 주유하는 부분에 집착이 돼 있었다. 혹시 혼유를 한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다.

차도 출력이 약해서 떨렸고, 시동을 끄기 전에도 막혔다 터지는 듯 퍽퍽하는 소리가 났고, 차도 이상하게 출렁거렸고, 그래서 아예 시동도 안 걸리는 거고..

나 혼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기본을 무시하고 말이다. 집착과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운전 경력 34년만의 낭패다.



어두운 밤, 추적추적 내리는 밤비를 뚫고 달리면서 가 모를 황당함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다. 차는 밟으면 밟을 수록 쌩쌩 나간다. 100, 120KM까지 잘나간다. 빨리 가야 아내를 목적지에서 픽업할 수 있다.


"무사, 뭐 때문에 안된 거 ?" 나를 보자마자 아내는 궁금한 듯 물어온다.

" 안 고라줘, 쪽팔려서, 얘기 못해..." 난 그저 웃기만 했다.

" 어쨌든 다행이다. 이일 저일 준비할 게 많은데 차를 쓸 수 있어서" 아내는 마음이 놓이는 듯 웃는다.

차가 정상이니 오늘 스케줄을 수행해야 한다. 아들놈의 입대 전에 먹고 갈 갈비찜을 만들어야 해서 갈비를 사러 가는 길이다.


"무사, 고라줘봐 ..?" 자꾸 아내가 재촉한다. 무지 궁금한 모양이다.

"소문내지마이.. 아까 기아를 D에 놓고 시동을 걸언.." 어이 없다는 듯 얘기를 했다.

"기이, 나도 이상하다 했는데.."

그렇게 맗을 하면서도 자꾸만 어이없음에 실소가 나온다. 기본에 충실하자. 다시 한번 되뇌였다.


나와 같은 바보가 또 있었다. 믿었는데...


다음 날 아침, 거실에서 자동차 매뉴얼이 보이길래 도대체 경고등의 의미가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명칭은 "LOCK 경고등"이었다. 이유와 조치 방법이 나와 있었다. 간단하고 선명하게..


내 차가 멈춘 1시간여 동안 자동차 A/S 센터에는 4번이나 전화를 했다. 기사에게 LOCK 경고등이 들어온다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그것도 몇 번이나, 왜 이런 답이 안 나왔을까?

물론 LOCK 경고등이란 이름을 몰랐기에 정확히 그리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모양을 얘기하고 LOCK이라는 문자가 뜬다고 얘기를 했는데...이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이걸 전문 A/S 기사가 몰랐다고? 이 과정을 한번 체크만 해 주었어도 아주 간단히 끝났을 건데...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한편으로는 화도 나는 부분이다. 다음번 A/S 센터를 방문했을 때 꼭 들어봐야겠다.

나보다 더한 바보가 아닌지 말이다.




2024.2.29일 4년 만에 준 보너스의 날,

그날은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보너스로 주고 저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유할 때마다 신경 쓰이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