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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16. 2024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부처님 오신날.. 입대한 아들의 자대배치를 보면서

입대한 아들의 자대배치를 보면서..유감


오늘은 입대한 아들이 자대배치를 받는 날이다. 

입대 후 신병훈련과 후반기 교육을 마치니 벌써 70일이 지났다. 이제야 비로소 남은 군대 생활을 하게 될 안식처로 배치되는 것이다. 자대를 어디로 받느냐에 따라서 남은 군대 생활의 난이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입대하는 아들에게 자대배치는 주특기와 함께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머니는 5명의 아들을 모두 현역으로 군대를 보냈다. 특히 둘째, 넷째 아들은 공군사관학교를 다녔다. 1980년대, 아들 둘을 사관학교에 보내니 온 동네가 떠들썩 하기도했었다. 임관 후 동생들은 30여 년 동안을 직업 군인으로 있다가 모두 대령으로 전역을 했다. 그러니 어머니는 군대에 대해서 이것저것 많이 아시는 편이다. 


큰아들의 늦둥이 아들인 장손이 군대를 가야 할 때가 되니 매년 걱정이었다. 군 생활의 어려움과 본인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뉴스를 빠지지 않고 시청하시는 어머니는 잊을만하면 터지는 군대에서의 사고에 민감해진 까닭도 있다. 늦게 얻은 장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어느 군을 갈 건지, 언제 갈 건지, 무슨 특기로 갈 건지, 자대는 어디에 배치할 건지가 모두 궁금하고 걱정이다. 아들 자신도 꽤 많은 고민과 검토를 하는 것 같았다. 입대 시기나 병과 모두 아들이 선택했다. 그렇게 준비 과정을 거쳐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올해 3월 입대를 했다. 무사히 신병교육과 후반기 교육을 마쳤다. 마지막 남은 하나는 자대배치인데 가장 중요한 만큼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육군의 자료에 의하면 자대는 무작위 추첨에 의해서 결정한다고 되 있다. 그러니 운이라는 얘기다. 어머니는 운이 있어야 자대배치를 잘 받는다는 얘기를 듣고는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어머니는 예전 나이로 95세다. 한평생을 자식 잘되기를 바라면서 부엌에 정한수를 떠놓고 빌면서 지내신 세대다. 조금 세월이 지나자, 사찰을 다니기 시작했다. 자식들에게 무슨 중요한 고비가 있다고 하면 절을 가거나 스님에게 전화를 한다. 부처님앞에 공양을 하고 삼배를 하면서 자식들의 무사 안녕과 소원 성취를 빌어주었다. 이젠 대를 넘겨 손자들에게까지 그 무한 사랑이 넘어왔다. 요즘 어머니가 기도하는 장소는 산방산에 있는 산방굴사다. 산방굴사는 산방산 주차장에 내려서 200여m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천연동굴에 석가모니 상을 갖춘 법당을 만들었다. 제주에서는 유명한 소원 기도처 명당이다. 전국각지에서 찾는다. 관광을 왔던 사람들도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들르는 곳이다. 


95세의 어머니는 이젠 올라갈 수가 없다. 그 역할을 대신한 게 어머니의 큰딸인 나에게는 누나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으면 대형 초를 준비하고, 시주금을 봉투에 넣고는 누나에게 지시한다. 산방산에 다녀오라는 짧은 한마디다. 70이 다된 누나도 몸이 그리 건강하지는 않은 편이다. 산방산의 수 많은 계단을 올라가기란 쉽지않다. 한번 갔다 오면 휴유증이 있어서 얼마간을 쉬어야 한다. 그러나 9남매의 뒷바라지를 이런 식으로 해오던 어머니의 방식을 변하지를 않았다. 여기에 손자들까지 챙기려니 횟수나 대상이 더 많아졌다.      

산방굴사 기도처


몇 번의 재촉을 받고야 누나는 무거운 초를 메고 산방굴사를 다녀왔다. 자대배치를 받기 전부터 촛불을 켜고 축원해야 한다고 해서다. 이런 일들이 실제 도움이 될는지를 떠나서 이렇게 하면 일단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무슨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들은 입대 후 수료식이 항상 특정한 날과 겹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신병훈련 수료는 총선인 4월10일과, 후반기교육 수료는 어버이날과 겹쳤다.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자대를 가는 날은 부처님 오신날과 겹쳤다. 그날이 공휴일이다보니 전날인 5월 14일 자대발표를 하고, 하루 쉬고 다음날인 5월 16일 자대로 이동한다고 연락이 왔다. 편한 것 같지만 그리 편하지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자대배치를 발표하는 날이다. 오후쯤에 발표를 하리라는 생각으로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동네에 있는 사찰로 갔다. 1년에 몇 번은 우리가 찾는 사찰이다. 매년 초파일 날은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등을 켜기에 올해도 미리가서 등을 켤 참이었다. 주차를 하고 아내는 법당 사무실로 들어갔다. 스님을 만나고, 등에 걸 문구를 작성해서 와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있으니 내폰에 문자 알림이 들어왔다. 얼른 보니 발신이 육군본부라고 되 있었다. 자대배치 안내문이었다. 육군에서는 입영 장병들이 자대배치 결과를 문자로 알려준다. 


순간 긴장이 되고 걱정이 됐다. 얼른 링크를 열고 접속했다. 인적사항을 압력하고 검색을 누르니 자대배치 결과가 나왔다. 쭉 아래로 스크롤을 하다가 순간 멈칫했다. "아니 이게 뭐야?" 내 눈을 의심하고 다시 입력하고 검색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들이 제일 피하기만을 기다리고 고대하던 그곳으로 자대배치가 되었다. 순간 나도 얼음이 되었다. 얼마나 얼음이 되었는지 밖에서 아내가 차를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하는 외침도 못 알아듣고 있었다. 자대배치 결과가 나왔다는 내 얘기에 얼른 차 안으로 들어온 아내도 결과를 보고는 아연실색 했다. 

" 아니, 아들이 가장 피했으면 하던 곳인데.... 이에 뭐야...부처님도 도와주시지...이것도 절간 마당에서..."   

아내는 무의식중에 속에 있던 감정을 드러내면서 불편을 말해버렸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 자료를 찾아보니 아들이 피하기만을 바랐던 이유가 있는 부대였다. 없는 일이다. 이게 운명인 것을 ........




일과를 마친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 아빠, 어떻게 저에게 이런 피를 물려 주셨습니까? " 였다. 

나하고 같은 병과는 아니지만 같은 성격의 부대에 배치되었음을 탓하는 말이었다. 


어쨌든 주어진 결과,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아빠로서의 내 마음도 내내 편치 않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주어진 결과의 과정에 대해서는 모른다. 물론 공정하게 했다고 하겠지마는 결과가 안 좋은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했다는 말 하나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또한 천차만별인 군 근무 환경을 두고 똑같은 대우로 근무하라는 것은 불공정의 문제이다. 실제 군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군대에서 꿀 빨던 사람과 개고생하던 사람과의 차이는 어떤지를 대충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극과 극, 임금과 노비의 차이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들은 다음 날까지 편치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여러 가지로 근무 환경은 좋지 않은데, 훈련은 가장 많고, 휴가는 없는 부대라는 선배들의 평가에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동하기 전 마지막 어젯밤 통화에서는 많은 생각이 있는 듯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이 시간 아들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자대로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사회는 정의롭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말이다. 때로는 운이라고 얘기되는 불명확한 것들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지배할 것이라는 생각도 가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슬프게한다. 



어제,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이 처음 입대했을 때 매일 써주었던 카톡 편지를 다시 썼다. 

물론 아직 읽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무쪼록 남은 15개월여 자대에 적응을 잘해서 무탈하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라는 일 밖에는 부모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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