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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11. 2024

이등병 아들의 어버이날 선물

오늘은 늦둥이 아들이 후반기 교육을 마치는 날이다. 

수료식이라 고민 고민을 하다가 면회하러 가기로 했다. 

신병훈련은 총선 전날 하더니, 후반기 교육은 어버이날이 수료식이다. 연휴가 겹치면 제주에서의 탈출이 쉽지 않다. 비행기 티켓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면회를 안 와도 좋다고 극구 사양하던 아들의 의사를 거부하기로 했다. 



아들은 운전병으로 입대했다. 후반기 교육은 흔히들 야수교라고 불리는 곳인 수송학교에서 교육받는다. 4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료식을 하면 그날은 가족의 면회가 되는 날이다. 수료식이 끝나는 10시 반부터 저녁 6시 반까지 시내에서 외출이 허락된다. 외출을 허락하는 데는 좀 특이한 2가지 조건이 있었다. 반드시 부모님중의 한 사람이 와야 한다는 것과, 차량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님들이 차량을 가지고 면회를 와서 연병장에 대기하고 있으면 수료식이 끝난 아들이 순차적으로 탑승을 하고 외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리 차량을 등록해야 한다. 차량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면회가 안 된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다. 



제주에서 차를 가지고 서울까지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면회 시간을 맞추려면 부득이 하루 전에 가야 한다. 서울에 있는 딸 집에서 1박을 하고 차는 렌트를 했다. 차가 있어야 면회가 가능하다니 할 수 없다. 8시에 렌트를 하고 출발했다. 가평까지는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면회 시작인 10시 30분까지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첫 운전이고 고속도로를 타고 가야 하는 낯섬 때문에 미리 서둘렀다. 조수석에 앉은 큰애가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을 잘해주어서 무사히 서울에서 탈출하고, 목적지까지 충분한 여유를 두고 도착했다. 10시간 훨씬 되기 전에 도착하고 수속을 마치고 연병장에 들어서는 순간 놀랐다. 먼저 와 있는 차들이 숫자를 세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았으니 말이다. 장병들의 안내대로 차를 일렬로 세우고 나서 세어보니 내가 70번째였다. 나도 서둘렀는데, 도대체 저 부모님들은 몇 시에 도착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만나기까지는 한참 동안을 기다려야 했다. 어제까지 산발적으로 비가 내려서 오늘 길을 걱정했었는데, 날씨는 쾌청이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봄 햇볕은 따스함이 지나쳐서 따갑기까지 하다. 한참을 있노라니 저 멀리서 군복을 입은 무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대기해 있는 차들 앞에 멈추는 걸 보니 오늘 우리가 면회할 아들들인 것 같았다. 부모님들의 손짓과 부름으로 마침내 만남은 성사되었고, 아들을 태운 차들은 하나둘 연병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지난달, 신병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을 하던 날의 웅장함과 기대감, 떨림은 없었다. 그건 모든 부모나, 아들들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들도 엄마와 누나들의 손에 이끌려 차에 탑승했다. 까맣게 그을린 모습에 틀이 잡힌 군복 모습이 갓 신병을 벗어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 이거 어버이날 선물인데. 손에 들고 못 나가게 해서 이렇게 해서 가져왔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아들이 군복 건빵 주머니 좌우에서 부스럭부스럭하더니만 뭐를 꺼냈다. 얇은 비닐 속에서 먼저 꺼낸 것은 건강보조제였다. 그리고 오른쪽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그 건강보조제 박스였다. PX에서 어버이날 선물로 건강보조제를 샀는데 그대로 가지고 나올 수 없어서 내용물과 박스를 분리해서 주머니에 담고 왔다고 한다. 꺼내서 둘을 합쳐 놓으니 비로소 제대로 된 선물이 되었다. 


"아빠, 엄마가 드시라고 PX에서 샀어요. 뭐를 살지 고민하다가 몸에 좋다는 걸로 ... , 눈에 좋은거와 콜라겐인데..먹어 보시죠" 


운전석에 앉은 나는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말소리만 들어도 상상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군에서 얼마의 월급을 받았다고, 지가 번 돈으로 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지만, 조금은 쑥스럽게 말을 건네는 아들의 모습이 정말 고마웠다. 기특하기도 했다. 오늘 면회를 잘 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었지만, 수료식장에서 오늘 면회할 장병들의 이름을 부르는데 자기 이름이 안 나와서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혹시 "오늘 못 왔나" 하는... 거의 중간 무렵이 우리 순서였으니까 기다리는 순간이 지루했을 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8시간의 허락받은 외출이다.

북한강 변 카페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라 뭐를 먹기에는 부담이 되는 시간이다. 차를 한잔씩 들고 노천 테라스에 앉았다. 바로 앞에는 북한강이 봄날의 뜨거움을 안고 유유자적 흐른다. 딱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인 듯했다. 


똑같은 이름의 음식을 먹더라도 군대에서 먹는 음식은 사회에서 먹는 음식 맛이 안 나는 것은 참 이상하다. 기분 탓일까? 분위기 탓일까? 아들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자고 누나들과 약속했던 모양이다. 미리 봐둔 음식점으로 이동했는데, 맛집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가득이다. 마침, 비어 있는 한자리를 채웠다. 쟁반짜장에, 탕수육에, 군만두에, 짬뽕에, 볶음밥을 테이블 가득 채워서 성난 오찬을 했다. 한 달 만에 먹어보는 동그라미 가족 밥상이다. 

북한강 변  카페 노천 테라스 / 한상 가득한 오찬

자라섬은 잠시 걷기에는 너무 좋은 곳이었다. 북한강과 연못도 있지만 섬을 가득 채우고 있는 녹음과 수목 사이로 난 오솔길들은 걷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화려함을 벗은 벚나무들의 울창한 녹음속으로 한참을 걷다 쉬기를 반복했다. 운동을 해야 저녁까지 먹고 부내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별다른 놀이기구가 없어도 남매들 3명만 있으면 즐겁게 놀 줄 아는 애들이기에 오디오가 쉬지를 않는다.


작은 마을 가평에는 오늘은 어디를 가나 외출 나온 장병들이 보인다. 아들도 가다가는 아는 동기생들이 보이는지 손짓하며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곤 한다. 남이섬은 춘천이나 주차장은 가평이라고 한다. 오늘 아들들이 외출 가능지역이 가평이다. 가평을 벗어나면 안 된다. 디저트와 차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움직이다 보니 남이섬이다. 남이섬 선착장이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오늘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했다. 오가는 배들이 보이는 선착장 앞 노천 테라스에는 손님이 없다. 이제 조금 있으면 잠시 헤어져 있어야할 우리 가족의 마음답다. 차를 시켜놓고 물멍을 하기도 하고, 이따금씩 몇 마디를 하기도 했다. 이 시간이면 지치기도 하지만 또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앞섬에 정리를 해야 한다는 기분으로 말수가 적어진다.

자라섬 오솔길 걷가 / 남이섬 카페에서

조금 이른 외출 마감 시간, 18시 부대 앞을 맴돌던 우리는 아들을 내려주고 서울로 향했다.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면서 서로를 놓아주었다. 예정에도 없고, 생각지도 않았던 우리 동그라미 가족의 짧은여행이었다. 




2024년 5월 8일 어버이날, 늦둥이 아들이 후반기 교육을 마치고 수료하는 날은 이렇게 저물어 갔다.

오늘 우리 부부는 아주 기억에 남을 선물을 받았다. 

입대 65일 차 아들이 이등병 월급으로 사준 엄마, 아빠의 건강을 염려해 주는 마음이다. 

꼬깃꼬깃 감추고 나와야 할 만큼 깊은 곳에 담아두었던 마음이기에 받는 내가 제대로 챙기기 못할까 봐 걱정이다. 


또한 군대에 있는 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었고, 

동그라미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짧은 가족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에 이 모든 게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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