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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17. 2024

아들의 눈물 박스를 받은 날

아들의 눈물박스를 받았다

아들이 입대하면서 입고 갔던 사복을 담은 택배가 도착했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흔히들 눈물 박스라고 부른다. 아들이 군복을 입으면서 벗어놓은 사복들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감싸던 아들의 체취가 묻어있는 것들이다. 


군에서 운영 중인 THE CAMP라는 앱이 있다. 군에 간 자식들에 대한 정보도 얻고 부대나 부모님들과도 교류, 소통할 수 있는 앱이다. 여기를 보면 갓 입대한 아들을 둔 부모들이 자식들이 훈련소를 수료하기까지의 아련한 기다림과 걱정들이 모래알처럼 쌓여있다. 언제 전화를 받을 수 있는지, 언제 편지를 보낼 수 있는지, 입고간 옷은 언제 돌려보내 주는지, 하루하루 부모들의 애타는 일과가 녹아있는 듯한 사연들이 올라온다. 

눈물 박스에 대한 사연들도 많다. 대부분 언제 올 거며.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의 감정과 느낌들이다. 많은 엄마가 아들이 입던 옷만 돌아왔다는 것에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흘린다고 해서 눈물 박스라는 별칭이 붙여진 모양이다. 


예전 내가 입대를 하던 1981년, 나는 논산 훈련소 출신이다. 훈련소로 들어가기 전 수용연대에서 군복을 지급받고 환복을 했다. 입고 갔던 옷을 전부 벗어놓고 군복을 입었다. 갑자기 조교가 이 옷들은 모두 고향집에 보내진다. 만약 여러분이 사고가 나면 이게 부모님에게 보내는 마지막 채취일지도 모르니 머리카락을 뽑아서 옷위에 놓으라고 한다. 빡빡머리라 뽑을 머리카락도 없던 시절이다. 침울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농담이라고 하고 끝을 맺었으나, 당시 울컥했던 기분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내는 아들을 보내놓고 힘들어하는지라 사실 눈물 박스를 받는 게 걱정이 된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지만 엄마로서 감정이 이입이 된다면 한바탕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입대날 부대에서 나눠주던 안내문에는 4주 차에 사복을 택배 빌송한다고 돼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보내지?!" 란 나의 반응 속에는 

"왜, 이렇게 늦게 보내?"하는 생각과 "응, 늦게 보내줘서 다행이다" 하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으나, 후자가 더 많았다. 안심이 되었다. 4주 차 정도지나면 아들이 훈련소 생활이 매듭지어질 때라 아내도 좀 감정 정리가 되어서 괜찮을 듯싶었다. 군대에서도 그런 걸 고려해서 4주 차에 보내는구나 하는 사려깊음으로 감동을 먹었다. 그러나 그건 거기까지였다. 


웬걸 2주차, 입대한 지 12일 되는 오늘 외출에서 돌아오니 아파트 현관문 앞에 커다란 박스가 있었다. 가까이 보니 부대에서 보낸 사복 택배였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펼쳐진 것이다. 박스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어떻게 개봉 할까,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시작할까 하는 고민을 했으나 대답을 얻지 못했다.


현관 앞 계단에 놓여 있는 눈물 박스

  



오늘은 주말이다. 아들이 신병교육대에서 휴대전화를 1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날이다. 매주 토·일요일에는 아들의 전화가 온다. 우리도 외출 나갔다가 아들의 전화 올 시간에 맞추어서 급하게 귀가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눈물 박스를 영접한 것이다.


'응. 아들!!' 옷을 갈아입자마자 때마침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내는 아들이 군대 간 후 처음으로 아들과 휴대폰의 맑은 소리로 통화를 하는 것이다. 휴대폰 사용은 지난 주말부터 가능했는데, 아내는 지난 주말 잠시 외국을 다녀온다고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근래 아들과 몇 번의 통화는 공중전화여서 잡음 때문에 아들의 밝은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음에 아쉬워했었다.

   

" 택배가 도착했네 " 눈물 박스라고는 못하고 그렇게 얘기했다. " 열어봤어요? 안에 편지가 있는데" 그 말을 듣고 내가 박스를 열었다. 속에는 봉투에 담기지 않은 편지 4통이 있었다. 겉에는 아빠꺼. 엄마꺼. 누나꺼..이렇게 주소 대신 이름이 쓰여있었다. 옷을 담고 같이 보낼 편지를 쓰라고 했다고 한다. 옷을 포장하는 마음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을 텐데, 동그라미 모두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는 마음이야 어떻겠나 하는 생각에 울컥한다. 


편지를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박스를 열어두고 20여 분을 아들과 시시콜콜 얘기를 하면서 통화했다. 오늘은 5시까지 휴대폰 사용이 가능하다는데, 그 시간이 거의 다 돼서야 전화를 끊었다.


박스안에 가지런히 놓인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박스를 정리 해볼까?" 아내는 전화를 끊고 박스 속의 옷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작년 겨울방학때 기숙사를 나오면서 집으로 보낸 아들의 택배 상자를 여는 모습이다. 

내의, 양말, 속옷, 준비해 간 비상약도 일부는 돌아왔다. 

백팩을 꺼내고는 여기저기 열어서 있는 물건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이걸 어떻게 보관해야 하지?

"세탁할 것만 하고 다른 물건은 그대로 두자" 가급적 변화를 주고 싶지 않음에 단순한 대답을 했다.

눈물 박스의 개봉식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났다.

"그냥 기숙사에서 입던 옷을 보낸거 같애" 아내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얘기를 했다.

이들과 통화를 하면서 박스를 열다 보니 잠시 편안해진 모양이다.

지금 눈물 박스를 개봉했다는 생각을 잠시 잊어 버린 것 같다. 


"막내가 눈물 박스를 보내면서 누나들헨테도 봉투없는 편지를 붙였는데 어떻게 할까?"

"사진찍어서 보내줘?"

"아니요, 실물을 읽고 싶어요. 다음달 수료식 떄 가져다 주세요"


사복이 왔다는 것은 아들이 최종적으로 무사히 군대에 입대했다는 뜻이다. 

이제 앞으로 18개월을 건강하고 무탈하게 지내기를 기다리면 된다.


남들이 눈물 박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모처럼의 상황에 우리에겐  안심 박스가 되었다. 


고맙다 아들아, 건강하고 무사하게 하루하루를 지내거라.  

그날까지 우리 동그라미 가족들은 모두 모두 기다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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