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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r 15. 2024

훈련소에서 오는 위문전화

아들의 위문전화를 기다리는 엄마

아내는 아침 TV 드라마 애청자다.

요새 아침드라마는 재방송이다. 본방송은 저녁에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 드라마는 없다.


아내는 저녁 본방송을 본다. 부득이하게 저녁 시간 약속으로 시청을 못 했을 때는 다음 날 아침 방송을 보는 패턴이다. 아들을 군대 보내고 나서는 TV 드라마를 보는 시간대가 달라졌다.

군대 신병훈련소에 있는 아들은 저녁 TV 드라마 시간이면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들을 군대 훈련소에 입소시키고 고등학교 동창들과 잠시 외국 여행을 다녀왔다. 아들의 입대와 여행이 연달아서 이어지길래 다행이다 싶었다. 아들을 보낸 후유증을 잠시 잊도록 하는데 좋을 싶어서다.


그러나 여행지에서 잠시 통화하다 끊긴 아들의 전화 때문에 여행 내내 불편했다고 한다. 집에 오자마자 그런 불편함을 호소하길래 내가 아들과 통화한 녹음화일을 들려주었다. 아내가 없는 주말 동안 아들과 통화한 내용이다. 주절주절 평소와 같이 얘기하고 있는 아들의 명랑한 목소리를 듣고는 이내 긴 한숨을 쉰다.


"아, 아들 목소리를 들으니 이젠 좀 숨 쉴 것같애. 여행 기간 내내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 잠시 전화 와서는 이름만 얘기하고 끊겼으니, 여행이고 뭐고 기분이 안 나더라고···."


아내는 여행 가면서 WIFI BOX를 임대하고 갔는데, 불량품이었던 모양이다. 전원 연결부분이 불량이어서 충전이 안 되다 보니 사용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카톡도 안되고 보이스톡도 안되고 아날로그 세상에서 살고 왔다고 한다.



군대에서 아들들이 통화를 하는 방법은 2가지다.

본인의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방법과 부대 내 설치되어 있는 수신자 부담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휴대전화는 주말에만 정해진 시간 동안만 사용이 가능하다. 사용이 아주 제한적이다. 이를 보완할 수있는 방법이 평일 일과시간 후에 이용할 수있는 부대 내 공중전화다. 사용 방법이 좀 특이하다. 미리 설정한 계좌에 일정 금액이 있어야 한다.


"아빠, 나 아들" 입대하고 첫 주말을 앞둔 금요일인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평소에는 지역번호가 찍히는 전화를 거절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받고 싶었다.

"응? 누구?" 당황스러운 일이다. 입대하고 나서 4일째 되는 날이니 말이다.

"내가 부르는 계좌로 돈 좀 넣어주세요?"

"뭐라고?" 군대 간 아들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다짜고짜 송금을 해달라니 귀가 번쩍 선다.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을 경험해 보는 건가?  

"아빠, 나 진짜 아들이야. 공중전화라 금방 끊기는데 앞으로 이걸 사용하려면 계좌에 돈이 있어야 한데. 내가 부르는 계좌로 5,000원만 보내줘"

"5,000원? 보이스 피싱이 5,000원만 보내주라고 하나, 진짜 아들인가?" 얼른 휴대전화의 음성녹음을 눌렀다. 계좌번호를 한번 부르더니 뚜뚜 전화는 매정하게 끊겼다. 전화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니 아들이 맞다.



아내는 월요일 입국했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오전에 집에 온 사람이 저녁까지 내내 잠만 잤다. 저녁 시간 아들이 일과가 끝나는 것 같아서 아내를 깨웠다.


"혹시, 아들이 전화 올지 모르니 일어나시고, 전화도 벨소리 모드로 하고···." 아들 소리에 얼른 깨어났다.

아내가 일상으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신호는 저녁 드라마 시청이다.

"여보, 이거 그번호 맞아?" 갑자기 아내가 손에 들었던 휴대전화를 나에게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다.

"응, 그 번호가 맞아, 얼른 받아봐···." 아들의 부대내 공중전화번호가 찍혀있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3~4분여, 내무반 전우들이 돌아가면서 전화하기로 한 거라 순서가 있는 모양이다. 통화중에 내무반에 방송하는 소리, 옆에서 떠드는 소리로 정확히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부대 내 공중전화는 잡음도 유독 심하다. 그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정도면 좋을 듯했다.

"그래, 아들 목소리 직접 들어서 좋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이 정도다.


아내는 직접 통화를 마치고서는 아쉽지마는 편안한 모습이다. 서로가 잘 있음을 확인하니 말이다.

아들은 내내 " 걱정 없습니다. 잘 있습니다. 좋습니다." 다소 서툰 군대 용어로 대답을 했다. 이 모습이 아내의 입장에서는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그리해야 함을, 그러면서 변해가야 함을 말이다.    



화요일, 아무 생각 없이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 아들 전화. TV 소리 줄여···." 갑자기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들어 올리면서 외쳤다.

이런 풍경은 수요일, 목요일도 계속되었다.

저녁 시간, 아내는 아예 휴대전화를 손에 달고 다닌다.

TV 드라마 아침드라마를 보는 걸로 해야할 듯하다.


아마, 오늘도 내일도 아내는 군대에서 오는 아들의 전화를 기다릴 것이다. 엄마의 위문 전화다.


"아들이 군대 안 간 것 같애, 지금도 기숙사에 있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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