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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May 25. 2024

봄날 유심재 마당에 앉으니..

유심재 정원에서의 단상

오랜 집주인이던 장모님이 심어놓고 가신 사랑초가 유심재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그만 농가인 유심재 앞마당의 봄날은 화사하다.

말 그대로 총천연색이다. 나비들의 천국이다.




유심재로 들어오는 입구, 세월을 머금은 퐁낭 아래  멈추면 사랑초 길이 보인다. 유심재로 들어가는 올래다. 올래에는 파란 잔디 카펫이 깔려있고, 양옆에는 하얀색과 분홍색의 사랑초가 가지런히 길을 안내하고 있다. 까만색의 현무암 돌담과 대비되니 더욱 선명하게 이쁘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참 무심하고 무정한 사랑초다. 인간이 특별한 정을 주지 않았는데도 햇빛과 자연의 정기만으로도 무수한 세월 피고 짐을 반복한다. 번식력은 무서울 정도다. 하나의 구근만 있다면 그 주위는 모두 사랑초밭이 된다.


사랑초의 학명은 옥살리스라고 한다. 하트모양의 잎 때문에 사랑초라고 불린다고 한다. 여러해살이 풀이어서 그런지 꽃의 주인이 집을 떠난지 몇해가 됐건만, 여전히 남아서 집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들어오는 길(올래)와 모퉁이를 안내하는 사랑초

        

모퉁이를 돌아서는 길, 역시 사랑초가 안내한다. 사랑초 사이에는 멀대같이 길게 튀어나온 칸나가 분위기를 모르고 혼자 솟아있다. 하얀색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싶은 모양이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넓은 우영팟과 수돗가, 잔디밭 마당이 펼쳐진다. 좁은 길 마지막에 펼쳐지는 다소 예상외의 풍광이라 보는 이에 따라서는 의외로 기쁨을 느끼게도 해 준다. 겨우내 누런색이던 잔디는 봄날 생기를 되찾고 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잔디 본연의 색상으로 푸르름을 준다.     

 


원래 안거리에는 초가집이 있었다. 내가 이 집에 백년손님으로 들어오던 90년에만 해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후에 사연을 안고 허물었다. 그 자리는 이제 텃밭이 되었다. 텃밭이라기에는 면적이 꽤 크다. 다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일부는 잔디를 심고, 꽃밭을 만들었다. 나의 작품이다.


잔디밭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봄날을 맞아 농익은 철쭉 2그루가 활짝 피었다. 잔디정원에는 이런저런 꽃들과 나무들이 있다. 얼마 전 아내가 심은 페츄니아는 한창이다. 빨강, 분홍, 흰색과 보라의 원색을 지닌 꽃들은 그러지 않아도 강한 봄 햇살로 뜨거운 대지를 더 뜨겁게 만들어 준다. 꽃들의ㅜ배경은 항아리가 만들어주고 있다. 집안에 남아있던 항아리들을 모아서 진열을 해놓았다. 옆에는 몇 년 전에 구해다 심고 존재감을 잊고 있었던 수국이 드디어 꽃망울을 맺었다.      

항아리를 배경으로 피어있는 패츄니아와 잔디정원 입구 대문같은 철쭉


텃밭은 장모님이 계실 때부터 우리들의 부식 창고였다. 매년 적게는 1~2가지부터 한창이던 때에는 10여 가지의 작물을 심었다. 텃밭 한구석에 자리 잡은 부추와 미나리는 터줏대감이었는데, 미나리는 잡초와 함께 사라졌다. 많던 미나리는 이제 흔적도 없다. 부추전의 재료감인 부추만이 여전하다.


텃밭에는 올해도 자가소비용으로 여러 작물을 심었다. 청양고추, 꽈리고추, 가치, 애호박, 가시오이, 대파, 토마토, 참외, 수박, 여러 가지 쌈용 채소 등 내가 집에서 즐겨 찾는 작물들이다. 봄날 작물을 심어놓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풍족해진다. 이 맛에 힘들어도 매년 때가 되면 작물심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사실 우리 가족이 먹을 생각으로 심는 거라면 작물당 1~2포기만 심으면 된다. 작물에 따라 다르지만 제대로 성장했을 때 열매 작물 1포기가 우리에게 주는 생산량은 꽤 많다. 처음 텃밭 농사를 할 때 진짜 소량만 심었다가 작물이 성장을 못하고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후로는 만일을 대비해서 여유 있게 심었다. 적어도 5~6포 기 정도는 심는다. 멀칭도 하고, 터널도 만들어 준다.  

이제는 내가 농사하는 요령이 붙어서 인지 심는 작물은 거의 그대로 성장한다. 생산량이 넘쳐서 처리가 곤란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저기 나누고도 남아서 유튜브를 뒤져서 오래 두었다가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아내의 일과가 되었다. 지금 냉장고 속에는 잉여 생산물의 잔해가 아직도 남아있다.


유심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수돗가다.

수도가 있고, 빨래터와 장독대가 있는 제주 옛 농가의 모습 그대이다. 수돗가 울타리는 돌담이다. 제주에서 지나가다 볼 수 있는 그냥 작은 돌담이 아니다. 돌 크기와 모양을 보니 아마 어디서 깬돌을 구입해서 쌓은 듯하다. 과수원에 있는 돌담 창고와 비슷한 모양이다. 돌 사이사이에는 시멘트를 발라서 구멍을 메웠다. 마을 용천수에 있는 목욕탕이나 마을 공동 수돗가와 비슷한 모양이다.

         

돌담 수돗가, 빈틈이 없다


유심재의 둘레는 돌담이다. 집 울타리이니 집담이다. 집이 있는 방향을 제외하고 삼면이 돌담이다. 돌담 안에는 내가 작년에 쌓은 잣담이 있다. 밭에 있는 돌들을 모아서 쌓았다. 잣담 위에는 아내가 화분과 꽃들로 장식을 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돌을 이용해서 만들었더니 보기도 좋고 어지럽던 돌도 처리가 되어 일거양득이다. 전시 공간도 생겼으니 일거삼득이다.


담은 대나무 숲과 붙어있다. 연접해 있는 밭에서 자란 대나무들이다. 키가 3m 이상자라서 월담을 하고 있다. 유심재의 면을 막고 있어서 바깥세상을 볼 수 없다. 바람이 부는 날은 방풍림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들어온 바람이 출구가 없어서 회오리가 된다. 텃밭을 빙빙 돌면서 유심재의 작물들을 모두 기절시켜 버리기도 한다. 계륵이다.

    

유심재의 마당 가운데에는 8인용 탁자를 만들어 놓았다. 빨간색의 파라솔로 햇빛을 피하고 있다. 처음 유심재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로망의 1과제였다. 가족들이 모여서, 텃밭에 재배한 상추로, 마당에서 삼겹살이라도 구워 먹어볼 생각으로 야심 차게 만들어 놓았다. 탁자가 마당에 자리를 잡은 지 5년이 넘었건만 그런 낭만을 누려본 것은 손을 꼽아봐야 할 듯하다. 꿈은 꿈이고, 현실로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마당 테이블에서 본 우영팟

오늘은 오랜만에 초심을 생각하면서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유심재로 오는 길, 누군가 보내준지 모른 모바일 상품권으로 커피를 샀다.

노트북을 켜고 눈에 보이는 모습을 글로 그려본다.



오후가 되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사랑초가 바람에 날린다. 조그만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꽃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비들도 천국이다.


한 번쯤은 절정기를 맞고, 본연의 생을 마감하는 자연이 부러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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