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May 02. 2023

올해도 쑥전을 먹을 수 있다

우리 밭에서 가장 효자 작물은 자연산 쑥이다.

매년 모종을 심거나 별도의 관리를 하지 않는데도 저 혼자 잘 자란다. 말 그대로 자연산 쑥이다. 이제는 밭의 한 모퉁이에 군집을 이루어 자리를 잡았기에 아예 영역 보존을 해주고 있다. 필요하면 예초기를 사용해서 풀베기를 할 뿐 제초제를 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자라는 모습이 기특하기에 좀 더 잘 자라달라고 가끔씩은 남는 복합비료를 뿌려주기도 한다.


쑥은 대표적인 봄나물로 향긋한 향기가 봄날 같다. 강력한 생명력으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동네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쑥은 예전부터 민간에서는 약용과 식용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쓰임새가 아주 다양해서 봄에 쑥이 새로 나오는 시기에는 들판으로 쑥을 캐러 다니기도 한다.

쑥은 워낙 번식력도 생명력도 강하다 보니 제대로 뽑지 않거나 하나만 놔두어도 삽시간에 그 근처의 모든 들판이 쑥밭이 되어버린다.


5월의 어린 쑥은 맛과 향이 우수해서 식용으로 가장 좋다고 한다. 식용으로서의 쑥의 첫 번째 용도는 떡을 만드는 것이다. 간식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동네 들판에서 쑥을 캐다가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쑥떡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약주를 좋아하셨기에 주전부리를 안 하시던 선친도 쑥떡만큼은 몇 개를 드시던 기억이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봄만 되면 쑥을 캐다가 쑥떡을 만들어서 아버님 제사상에 올렸다. 내가 밭에서 나는 쑥을 가져다 드리기 전까지는 봄날 쑥을 어디서 캘까 하는 게 고민이었다. 예전에 쑥은 시골 길가 주변과 경작하기 전 밭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터들이 모두 개간과 개발이 되어버려서 쑥이 자랄 공간이 없다. 길가에 쑥들은 자동차가 내뿜는 중금속에 오염이 돼서 식용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장모님은 쑥버무리와 쑥전을 자주 만들어 드시곤 했다. 장모님에게는 봄날을 기억할 수 있는 일상의 음식이었다. 주식인지 간식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좋아하셨다. 봄날 집에는 항상 쑥으로 만든 간식거리가 있었다. 주재료인 쑥은 조금만 걸어가면 우리 밭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 ㅇㅇ 아빠야, 쑥으로 전 지져놔시난 먹으라 " 봄날 처가댁에 가면 장모님이 문에 들어서는 나를 보면서 하시는 말이다.   


쑥은 고대부터 서민에 세 가장 대중적인 약초였다. 쉽게 어디서나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한방에서는 말린 쑥으로 쑥뜸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놀다가 다치면 어른들이 주위에서 쑥을 따다가 돌로 으깨서 상처 난 부위에 대고 감싸주기도 했다. 아마 초기에 감염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나 여자들은 쑥을 끓인 물을 가지고 머리를 감거나 목욕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쑥은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만치,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단군신화에 따르면 곰이 쑥과 마늘만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어렸을 때 봄이면 달래, 냉이와 함께 쑥을 캐러 누나와 함께 들판으로 다녔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할머니들이 옛 추억을 못 잊어서 쑥을 찾아다니는 분들이 있다.


우리 밭의 쑥도 몇 번의 수난을 겪었다. 밭에는 문이 없고 야생동물들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그물망만 쳐있는 밭이다. 지나다 보면 밭 입구에 소복이 자라고 있는 쑥들이 보인다. 궁금하기도 하고 탐나기도 해서 무엇인지 확인하러 들어왔다가 쑥임을 알고 그냥 캐가버리는 모양이다.  


" 엉, 이게 뭐야. 쑥을 누가 캐가 버렸네.." 오랜만에 찾은 밭에 먼저 들어간 아내가 외치는 말이다.

" 누가?  그럴 리가..." 진짜다. 쑥을 반정도 싹 베어가 버렸다.

" 누구 아는 사람이겠지.. 할 수 없잖아.. 금방 다시 자랄 테니까..ㅎㅎ "  

아는 상황에서 누구한테 주는 것은 아깝지가 않은데 몰래 빼앗긴 상황이니까 기분이 좋치는 않다.


그리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서 꽤나 지났다. 오늘 쑥의 상태는 매우 좋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훌쩍 자라 있었다. 크기를 보니 지금 수확한 쑥이 버무리를 하거나 쑥전을 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 지금 쑥을 캐자.. " 내가 지난 아쉬움이 걱정이 돼서 아내에게 얘기를 했다.

" 쑥은 지금이 딱 좋은데, 캐서 다듬으려면 혼자 힘드는데, 또 양이 엄청날 건데.."

" 내가 같이 하지 뭐.."


이렇게 올해 첫 쑥 수확작업은 시작되었다.

쑥을 캐고, 다듬고, 삶았다. 20여 개 덩어리가 나왔다. 꽤나 많은 양이다.

적당한 크기로 포장을 해서 냉장고에 보관을 했다.

올해도 순도 100%의 자연산 쑥전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게으른 농부에게 자연이 주신 선물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른 농부가 되어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