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Apr 22. 2023

게으른 농부가 되어 가는 길..

게으른 농부생활 10년 차다. 봄날 이때만 되면 가장 고민이 많다. 농부가 힘든 일이구나를 실감한다.


내가 가진 농지는 경사지다. 지목상 전으로 돼있기는 하지만 농사를 하기보다는 휴양용 건물을 짓기에 안성맞춤인 땅구조다. 과수원을 하다가 감귤나무를 전부 베어 내버린 상태에서 매입을 했다. 매입을 하고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 밭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지정리작업을 부탁했다. 경자유전이라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한 대로 해야 하니까 말이다.


2014년 1주일간의 작업 끝에 만들어낸 결과가 농지를 2칸의 계단식으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위칸이 아래칸 농지의 2배는 되는 것 같다. 넓은 아래칸에서는 단일작물을 위칸에서는 자가소비용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사를 위한 농기계를 구입해서 운영할 조건이 못됐다. 모두 소규모 농기구를 이용해서 수작업으로 농사를 하고 있다. 게으른 농부가 될 수밖에 없다. 매년 이때쯤이면 생각이 많아지고 몸이 힘들어진다.


내가 먹는 작물을 내가 직접 재배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봄은 밭에다가 대부분의 작물을 정식해야 할 시기다. 정식 전에 작물을 심을 수 있도록 밭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게 가장 힘든 작업이다. 밭을 경운 하기 위한 농기구가 없는 소규모 자경농인 농부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이런 경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위에 트랙터를 가진 이웃들에게 평당 얼마의 노임을 주고 부탁을 하면 된다. 그럴 여건이 안되면 직접 괭이와 삽을 가지고 밭을 일궈야 한다. 몸과 시간을 축내는 일이다.


최근 2년간은 이런저런 일로 밭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겨우 위칸에 자가소비용 작물을 재배하는 수준이었다. 고구마, 고추, 양파, 배추를 계절에 따라 심는 정도다. 


그중에서 가게에 도움을 주고 농부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 것은 고추농사다. 작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재배했던 농작물이다. 작황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고, 지금까지도 내가 생산한 고춧가루를 먹고 있다. 


"여보.. 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거나 먹은 식재료가 뭐 있지?" 그래도 농사지으면서 뭐 하나는 집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생각에 아내에게 질문을 했다.

"고추 가루지.. 김치, 찌개, 무침.. 음식 만드는데 안 들어가는데 없잖아" 아내가 너무나 당연한 듯 한말이다.

"그럼, 고추나 재배해서 고춧가루나 해 먹을까?" 해서 시작한 고추재배다.


고추를 많이 먹기는 하지만 막상 재배를 하자니 걱정이 되었다. 농업기술원에서 나눠준 책자도 공부하고, 인터넷도 뒤져보고, 유튜브도 찾으면서 열공했다. 

텃밭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재배하는 작물이라고 했다. 몇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고 한다. 농약과 비료를 생각보다는 자주 줘야 하네, 물 관리도 조심해야 하고, 특히 탄저병 퍼지면 끝이네..


주섬주섬 들어 모은 정보를 가지고 시작을 했다. 처음에는 비닐 멀칭도 안 하고 50주를 그냥 노지에 심었다. 

조그만 모종이 자라서, 줄기와 잎이 커지고 꽃이 핀다. 고추도 달린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서 말리고 방앗간에서 고춧가루를 만들었다. 한 번의 사이클을 돌고 나니 보람과 기쁨도 컸다. 아내는 처음으로 직접 지은 농산물을 무슨 훈장이라도 받은 듯 받아 않고서는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매년 재배하는 양을 늘렸다. 최근에는 200주 이상을 심기도 했다. 200주 정도 심으면 자가소비의 범위를 넘어선다. 가족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줄 정도가 된다. 농사하고 나누는 기쁨을 누려 볼 수가 있다. 지금도 냉장고에는 재작년 수확한 고춧가루가 남아있다.  


게으른 농부는.. 이렇게 만들어지더라,
소규모 다품종의 재배를 하는 자가농


소규모 다품종의 재배를 하는 자가농인 경우 적기에 알맞은 농약과 비료를 하는 게 사실 어렵다. 제초제나 복합비료와 같이 사용범위가 넓은 것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항상 사용하기 때문에 포장을 뜯어도 남을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주 내외로 소규모로 재배하는 작물인 경우 병충해가 발생하면 그것에 맞는 농약을 구입해서 살포를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농약은 대량재배를 전제로 큰 포장으로 대부분 나오기 때문이다. 한번 개봉을 하면 조금 사용하고 많은 양이 남는다. 남는 것은 언제 사용할지 모른다. 약효의 유효기간은 무한이 아니다. 2~3년이다. 다시 사용하려고 보면 그때는 유효기간이 경과된 제품이 돼있는다. 매년 같은 작물을 재배하는 경우는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으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정부에서는 2019년부터 PLS제도를 도입해서 작물에 맞는 농약만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판매하는 경우는 거의 강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기에 나는 할 수 없이 저농약재배, 무농약재배를 할 수밖에 없다. 정식하고 농약은 정식 후 초기에 예방살포를 하던지, 병충해 발생 초기에 살포를 하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수확했을 때 모양이 안 이쁘고, 작고, 거친 수확물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니 판매할 수도 없다. 소비를 하려면 주위에 나누어 줘야 하는데 눈치가 보인다. 파치만 준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사람들한테 공짜로 나누어 주면서 기분 나쁘게 하면 안 됩니다. 이쁘고 큰 것만 줘야 해요. 자기네 못 먹은 파치만 줬다고 할 수도 있어요. 나눠주고 욕먹어.." 항상 주위에 나눠줄 때마다 아내가 하는 말이다. 


사실 농약을 안 치니까 수확물의 모양은 엉망이다. 색상이나 모양이 이쁘지가 않은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덕분에 오일장날 할머니장터에 나온 작물들의 상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원인은 대부분이 병충해 때문이라고 한다. 가끔 비료나 영양 불균형에서 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작물마다, 병충해마다 제 시기에 맞는 처방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낭비다.   


" 농사를 해보니까 알겠네.. 마트에 이쁘게 전시될 정도의 농작물에는 얼마나 많은 농약을 한 건지..

우리가 지금까지 몰라서 농약 덩어리인 농작물을 먹었다는 거 아냐.."

아내가 화난 듯 중얼거린다. 

" 우리가 직접 재배하면서, 농약을 덜 치고 생산한 농작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네.."


이렇게 게으른 농부는 현실적인 합리화를 하면서 진행되어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를 하는 즐거움도 있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