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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Apr 01. 2023

경자유전(耕者有田).. 농사를 하는 즐거움도 있더라..

자급농부가 농사하는 방법

봄날 농부는 다시 시작한다.  

식물들도 땅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인 삶을 시작한다. 농부는 작물들이 제자리를 잡고 자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기에 바쁘다.


나는 퇴직하면서 조그만 농지를 구입했다.

농사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경험이 없기에 곁가지 농사나 할 요량으로 구입한 땅이다.

내가 농지를 구입할 당시는 제주로의 귀향과 이주 바람이 거세던 시기다. 풍광이 좋은 장소에 농막 하나 지어 놓고 시간이 날 때는 농사도 짓고, 힘들면 한숨 자고, 벗이 있으면 막걸리 한잔을 할 수 있다는 로맨틱한 안빈낙도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가 많았다.


내가 구입한 농지가 딱 게으른 안빈낙도의 생활을 실현하기 좋은 지형적 모양을 갖춘 곳이다. 다소 높은 지대에 위치한 비스듬한 경사지다. 제일 높은 곳에 서면 오른쪽으로는 멀리 제주 시내 도두봉부터 수산봉, 한라산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과 왼쪽으로는 제주 시내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여름날 집어등을 켜고 있는 어선들의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이렇듯 뷰는 끝내주는데 농사하기에는 아주 힘든 경사지 비스듬한 땅이다. 따라서 게으른 농부가 될 수밖에 없다.  

멀리 바다가 보인다. 지금은 봄이라 밭까지 가는길에 유채꽃이 피었다. 꽃길이다.


경자유전의 원칙이 적용된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니면 밭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농지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적용된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니면 밭을 가져서는 안 된다. 농지를 구입하려면 사전에 반드시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농지를 구입해서 어떤 작물을 어떻게 재배하겠다는 내용이다. 서류심사이기 때문에 칸만 채우고 제출하면 그만이다. 이젠 농지를 취득할 수 있게 된다. 전국 어디에 살든 대한민국 국민이면, 심지어는 중국 사람도 제주에서 농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농지를 구입했으면 당초 계획서대로 농사를 지으면 된다. 그러나 중국, 서울, 부산 전국 각지에 사는 농지 주인들이 어떻게 제주에서 농사를 짓겠는가? 1년에 한두 번 비행기를 타고 와서 1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거주지를 제주로 옮겨서 농사를 경작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고,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농지를 구입하고 1~2년 재미로 억지 농사를 짓다가 내 버린다. 밭은 잡초만 무심하게도 무성하게 자란다. 마을속 잡초밭, 농사를 짓고 있는 밭들의 사이에서 잡초가 우거진 밭은 병충해와 미관 등 여러 가지로 주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견디다 못한 마을과 주민들의 민원으로 행정에서 칼을 들었다.


몇 년 전부터 가짜 농부를 가려내고자 매년 농지 이용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농사를 안 하는 휴경농지, 불법으로 임대차한 농지, 불법 농막을 설치한 경우를 일일이 현장 조사를 통하여 찾아내고 있다. 위반사항이 발견될 시는 청문절차를 거쳐서 농지처분 등의 행정조치를 취하고 있다.   


매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청문회 과정에서 장관 후보자들의 낙마 1순위인 불법 농지소유 문제가 일어나는 대목이다. 도시민들이 어떤 생각으로든 농지를 소유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농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직접 농사해보니 알겠다.


흔히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라고 한다. 그만큼 하나의 농작물을 심어서 수확하기까지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농작물을 심을 밭은 경운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비료와 퇴비를 주어서 밭을 만들고, 모종을 심고, 각종 농약을 하고, 물을 주고, 다시 잡초를 제거하고 그야말로 농부의 수고는 끊일 날이 없다. 그러니 밭에 가면 하루가 후딱 간다. 다행히도 농작물이 잘 자라주면 천운인데 농부가 맘에 들게 수확을 얻기가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내가 구입한 밭도 농사짓기에는 아주 불편한 밭이지만 지목이 밭이기에 당연히 경자유전의 원칙이 적용된다. 어쩔 수 없이 서툰 농부가 되었다. 한 해라도 농사를 안 지었다가는 언제 현장실사에 걸려서 청문 통지가 날아올지 모른다. 거의 10년 동안 매년 서툰 농부, 게으른 농부 생활을 하고 있다. 비교적 양호한 지역을 골라서 집에서 자가소비를 위한 농사를 하고 있다. 가족들이 먹고 싶은 거, 집에서 가장 필요한 작물 위주로 재배하다 보니 매년 작물이 바뀌고, 작물도 이것저것 무척이나 다양하다.  


콩, 고구마, 고추, 호박, 수박, 참외, 양파, 대파, 얼갈이, 무우, 배추, 토마토, 감자, 쪽파, 마늘 등등.. 내가 지금까지 한 번씩은 재배했던 농작물이다. 나열하고 보니 꽤 많다. 이 중에 조금이나마 나에게 수입을 안겨줬던 작물은 콩, 얼갈이 정도다. 그 외에는 모두 자가소비를 위한 작물이다 보니 다품종 소량 생산이었다. 적게 재배하면 언 듯 쉬울 것으로 보인다. 아니다, 몇 배 힘든다. 작물에 따라 필요한 비료, 농약, 농기구 등이 각각이다. 심는 시기도 각각, 수확시기도 각각, 병충해 방제 방법도 각각 달라서 초짜 농부는 항상 애먹기 마련이다.  


3월 말~ 4월 말까지는 대부분의 작물을 심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월부터는 밭 만들기를 한다.

겨우내 방치됐던 밭에 제초제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것 중 농사를 짓는데 최대의 적은 잡초다.

특히 제주는 따스한 곳이라 잡초가 잘 자란다. 잡초는 자라기 전에 제초제를 하고 제거해야 한다.

잡초가 어느 정도 말라서 시들면 밭을 가는 경운작업을 한다.

요새는 소규모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밭을 갈 수 있는 관리기가 나와서 편리하기는 하다.

관리기가 없는 나는 삽이나 괭이 등 소형농기구를 사용하여 몸으로 밭을 경운 해야 한다.

이게 육체적으로 많이 힘이 드는 작업이다.

밭을 일구는 작업을 하고 나면 말 그대로 "몸이 폭삭"이다

막걸리 한 사발이 생각난다.  


경운할 때는 비료와 퇴비를 뿌리고 고루 섞어주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흙 속에 고루고루 섞여서 제 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퇴비나 일부 농약은 냄새가 고약해서 인근 주민들의 민원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민가나 주택지역에 있는 밭에서의 농사는 어쩔 수 없이 무농약, 저농약 재배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비닐멀칭 없이 농사했었다. 아내와 같이 잡초를 제거하는 게 일과였다. 잡초란 놈은 말 그대로 잡초다. 없애도 없애도 다시 나타난다.


"야, 그거 바닥에 검은 비닐 덮어 불라게.." 하도 안쓰러웠는지 같은 경험을 하던 장모님이 하신 말이다.


멀칭 농사 방법은 이미 귀농 귀촌 교육을 받을 때 배웠다. 그러나 제주는 따뜻한 지역이라서 굳이 필요 없다는 생각에 적용하지 않고 있었다.


"요새는 잡초 안나게 검은색 비닐 멀칭 덮어 분다. 너네도 경허라게 "내가 하는게 하도 답답한 지 장모님의 한마디를 훅 던진다. 

농사는 이론보다는 현장에서 수십 년 체험한 농법이 최고라는 것을 느끼는 대목이다. 나도 이젠 거의 모든 작물재배마다 검은색 비닐 멀칭을 하고 있다.


요새는 멀칭 비닐도 작물별로 나온다. 고추용, 양파용 비닐 등 이런 식이다. 작물은 종류에 따라 심는 거리가 다르다. 어떤 작물은 10cm 간격, 어떤 작물은 30cm 간격...

작물을 심을 때 구멍을 뚫으면서 심어야 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 작물별로 필요한 거리를 두고 구멍을 뚫고 판매를 하는 것이다. 농부에게는 더없이 좋은 고마움이다. 큰 수고를 덜어준다


유공 비닐은 나처럼 소량 다품종 재배를 하는 소농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작물들의 재식거리는 각각 다르다. 따라서 작물의 재식거리에 맞게 구멍이 뚫여있는 유공 비닐을 다른 작물용으로 사용하면 비효율적이거나 낭비가 된다. 그래서 나는 구멍이 없는 검은색 비닐로 일일이 멀칭을 한다. 잡초를 안 나게 하는 방법으로는 최고다. 그러나 작물을 심을 때마다 필요한 거리만큼 구멍을 뚫고, 심어야 하는 수고는 어쩔 수 없다.

"여보, 농협에서 이번 비닐 살 때는 구멍이 만들어진 걸 마게마씸. 그래야 심을 때마다 일일이 구멍을 뚫어야 하는 고생을 덜 수 있을 것 같은데.. " 일일이 구멍을 내면서 작물을 심는 게 답답했던 아내가 하는 말이다.

" 글쎄, 우리는 한 가지 작물만 하는 게 아니고, 이것저것 하니까 그게 안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농협에 가서 들어보고 삽시다"  


나는 농협 조합원이어서 농자재를 구입할 때마다 집 근처에 있는 농협 자재센터를 이용한다. 필요한 물건이 대부분 있고, 저렴하다고 해서 이용은 하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한 가지 작물만 재배할 때는 구멍이 있는 비닐이 좋지만, 여러 작물 재배할 때는 안 돼 마씸, 구멍 간격 때문에" 자재센터 직원이 단호한 어투로 권유를 한다.     


"이거 하나면 내가 저 밭을 팔 때까지 사용하겠다"  500m나 되는 무거운 비닐을 받아 들고, 투덜 투덜거리면서 밭으로 갔다. 무겁기만 하다.


오늘 비닐 멀칭을 하면 일단 밭 만들기는 완성된다.
이제는 작물을 사다 심고, 물을 주면서 새로운 생명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나는 농사를 지으면서 맨땅에 씨앗을 뿌려서 작물이 나는 과정을 경외의 눈으로 쳐다본다.
조그만 모종을 심어서 우리가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도록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본다는 것은 항상 즐겁고 신선하다.
 
오늘도 힘들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농사를 접지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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