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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Dec 19. 2023

우영팟에 겹담을 쌓았다

모두가 떠나는 겨울 한가운데에서 

유심재의 겨울을 을씨년스럽다.

입구에서 만나는 오래된 팽나무의 모습에서부터 겨울임을 느껴야 한다.

내가 두 팔을 벌려도 한아름에 안을 수 없는 큰 밑동을 가졌지만

위로는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다.

이따가 바람이 크게 부는 날은 몸을 부스스 떨면서 여름 내내 나무를 감싸주었던 잎들을 털어낸다.

사람만이 아니고 자연들도 필요 없음을 느낄대는 버리는 작업을 한다. 

그 떨어진 나뭇잎들은 유심재로 가는 올레길바닥에 이리저리 나뒹군다.

요새는 겨울바람이 제법 부니 길바닥을 나뒹구는 나뭇잎들도 꽤나 많다.


"아유, 또 나뭇잎을 다 쓸어내야 하네.." 유심재 입구 초입에서 하는 아내의 일성이다.



팽나무가 있는 입구에서 유심재까지 길게 늘어선 올래 30여 M 구간에

한올레를 쓰는 6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지만 청소당번은 늘 우리다. 

장모님이 계실 때는 장모님이 청소당번이었고

이제는 대를 이어서 아내가 청소당번을 한다.

골목대장은 할게 많다.


나뭇잎만이 아니다. 

여름이면 잡초를 제거해야 한다. 사시사철 들고양이들이 일을 보고 간 뒤처리도 해야 한다.

꽃을 좋아하는 장모님은 입구부터 집까지 사랑초를 잔뜩 심어놨다. 

사랑초가 만개하는 계절에는 길을 지나는 불청객들이 

꽃을 따라 사진을 찍으면서 들어오다가 유심재 마당까지 침범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모든 게 벗겨지고, 떨어지고, 사라져  버린 민둥의 계절 겨울에는

이런저런 모양으로 감추어져 있던 자연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여름 내내 푸르름을 주었던 나무다. 

그래서 농부들은 겨울에 나무 가지치기를 많이 한다.

수형을 제대로 볼 수도 있어서 좋고, 가지를 쳐내는데도 쉽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앙상한 가지이기에 쳐내는 게 아깝지가 않기도 하다.


유심재의 나무들도 지금은 앙상하다. 열매를 따자마자 강한 전정을 했다.  

푸르름 대신에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더 다가온다. 진짜로 맑다. 


진짜로 휴대폰에 카메라는 잘 만들었다. 

"좋다!! 또 보고 싶다" 하는 순간 이미 내 손이 휴대폰의 카메라를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찰칵 찍고는 단톡에 올린다.

애들에게 지금 이 시간 고향의 모습과 향기를 전해주고 싶어서다.


" 와, 하늘이 너무 예뻐, 너무 파랗다.." 금세 이모티콘이 착착 올라온다.


이 시간 우리 가족들은 하나의 장면을 공유하면서 공감과 소통을 한다.


요 며칠사이, 우영팟에서 앙상한 가지만 보는 게 썰렁한 느낌이다.

뭔가는 정리가 안되고 많이 비어있는 듯한 기분이다.

우영팟을 정리하면서 한 곳에 모아 두었던 돌 들을 어떻게 유용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삼다의 고장 제주에서는 밭농사가 주업이다. 그러나 그 밭에는 돌반 흙반이다. 

매번 밭을 정리할 때마다 나오는 돌들은 일일이 처분할 수가 없다. 하는 수없이 쉬운 방법으로 밭의 한구석에 모아둔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 꽤나 크나큰 모양의 돌산이 된다. 제주어로는 머들이라고 한다. 

유심재의 우영팟에도 제법 되는 머들이 있다. 

봄에 밭을 정리할 때마가 나오는 돌을 매실나무아래에 그냥 던져서 쌓아두었다. 


" 저 모아둔 돌로 우영팟을 돌아가면서 겹담을 쌓을까? "

" 그럼, 괜찮을 것 같은데,, 겹담 위에는 뭐 하려고..? "

" 그건 당신 영역이니까 당신 맘대로 지, 다육이를 심어도 좋고, 화분을 올려놓아도 좋고.."


이렇게 몇 마디를 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바로 시작을 했다.

겹담을 쌓는 작업은 꽤나 시간이 결렸다. 아니 며칠을 한 것 같다. 한 번에 하는 게 아니고 쉬엄쉬엄 시간이 있을 때 진행을 했으니 말이다. 

겹담이란 양쪽에 큰 돌로 경계석을 놓아서 쌓고 그 가운데 잔돌을 채워놓는 방식이다. 그러면 그 겹담 위에는 평평한 공간이 생겨서 이런저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요새는 건물들의 경계담으로 변형된 겹담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위에다 꽃을 심던지 화분을 놓던지 이쁘게 꾸민다. 


우리는 전통방식으로 나만의 서툰 겹담을 쌓았다. 

이제 유심재의 방식으로 그리고 아내의  생각으로 이쁘게 꾸며볼 참이다.

완성된 모습은 내년 봄 꽃이 피는 계절에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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