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 속에 찾아온 나
오랜만에 유심재를 찾았다.
조그만 창문 너머로 밖을 본다.
텃밭 끝 팽나무잎이 가끔씩 흔들린다.
바람이 거의 없는 모양이다.
모든 게 숨죽인 일요일 오후다.
팽나무 끝자락 뒤로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팽나무가지와 하늘 사이에 있는 무성한 대나무잎도 같이 출렁거린다.
나도 있다는 티를 낸다.
옅은 파란색의 하늘, 그 가운데는 하얀 구름이 저리 잡고 있다.
마치 그 아주 오래전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면서 내뿜던 담배연기와 같다.
아버지의 담배연기는 세상을 향해 내뿜던 한숨의 담배연기였는데
오늘은 그 담배연기가 구름이 되어 다시 찾아왔다.
한숨짓던 세상이 그리 달라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너무 조용해서 적적하다.
음악은 이런 순간 최고의 벗이 된다.
유튜브를 열면 수많은 음악들이 보인다.
가을은 클래식 기타 선율이 제 맛이다..
플레이를 눌렀다.
노트북의 스피커 볼륨을 올렸다.
한음 한음 정성을 담은 듯한 기타의 울림이 조용한 방 안을 채운다.
클래식기타 소리는 잡음 같은 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들린다.
원래 클래식기타 소리가 그렇다.
손을 옮기는 소리, 지판을 미끄러지듯 달리는 거친 소리, 줄을 튕기는 소리가 요란해야 클래식기타다.
때로는 요란하게, 때로는 방정맞고 시끄럽다가도 제 위치에서 제 소리를 낸다.
여전히 그 소리는 내 마음의 청량제다.
고요는 사람의 마음을 참 복잡하게 만든다.
인간의 모든 감성이 한 번씩은 올라왔다 내려갔다는 반복하게 만드는 것 같다.
좋은 인간이 됐다가, 나쁜 인간이 되기도 하고
센티멘탈한 사춘기 소년이 됐다가, 인생을 다 산 나이 먹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없기에 나를 감출 것도 없기에 그냥 원시림 속에 놓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고요는 무섭고도 좋다.
가끔씩은 깊은 곳의 나, 감춰진 나만의 모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