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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Aug 14. 2023

비혼이지만 결혼했습니다

비혼주의인 사람이 결혼 제일 먼저 한다더니...내 이야기였구만

내 평생 결혼을 생각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가장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장소는 지하 단칸방.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지냈던 기억이다.
작은 방과 부엌이 붙어있는 공간이 있었지만 작은 방은 쥐들에게 점령당한지 오래였고, 주방이라고 있는 곳은 좁고 더러웠다. 화장실은? 없었다. 1층에 푸세식 화장실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화장실이었다. 엄마는 나름 여자 아이 둘을 그 곳에 보낼 수 없어 요강을 놔주었다. 하지만 지하 단칸방에서 요강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고, 항상 대소변을 참던 언니와 나는 누가 누가 팬티에 더 자주 실수하는지 대결해왔다.

 그러던 내가 2022년 4월 봄의 신부가 되었다? 왜 였을까?  

결혼은 판단이 흐려지면 한다고 하던데 벌써 판단이 흐려질 나이가 된걸까? 남자를 만나더라도 아빠와 전혀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다짐했는데 실제 내 배우자는 아빠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남자는 아니었다. 그래도 시댁과 갈등이 생기면 내 편부터 들어주는 걸 보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빠와 다른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어린시절의 나는 유독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었던 아이였다. 그게 언니와의 차별에서 오는 결핍이었는지,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받는 차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소한 거라도 양보하고, 배려하게 되었다.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 쳤다는 것을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굳이 그렇게 사랑받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아도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아빠는 술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하루라도 술 없이 살 수 없었고, 술과 함께 도박에 빠지기 시작했다. 술과 도박이 있으면 빠질 수 없는게 있지...폭력이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돈을 내놓으라며 엄마를 때리기 일수였고, 어린 나는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때리지 말라고 옆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내 기억으로 그 때 내 나이 7살이었다.

한 번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응답하라 시리즈의 그 동네 느낌) 영화를 보러간다고 했다. 엄마에게도 함께 가자는 제의가 왔다. 엄마는 당시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을 하고 있었는데 부업 일정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애둘러 거절했다. 당시 나는 영화관이 너무 가고 싶어 사흘전부터 엄마에게 칭얼거렸던 기억이난다. 돈이 없어서 무언가를 사달라고 한 적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계속 떼를 썼던 것 같다. 하루 하루 영화관 가는 날이 다가왔다. 밤새 엄마의 부업을 도와주고, 계속 영화관에 가자고 떼를 썼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엄마가 나를 영화관에 꼭 데려다 줄 것 같았다. 당일에도 계속 기대했다. 엄마가 나에게 가자고 하겠지? 어서 준비하고 가자고 하겠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결국 영화 시작시간이 지나서야 울음이 터졌다. 사흘내내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내가 부업도 도와줬는데 영화도 보러 안가다니...그 배신감이란… 그 날 저녁 밥도 안 먹고 시위를 했다.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는 걸...
 
32살이 된 지금 그 때에 엄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다는 아니지만 조금은 이해가 간다. 사랑하는 이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건 무척이다 괴로운 일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처음 번 돈을 엄마에게 드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작 오십만원 남짓이었지만, 엄마에게 줄 때는 500억 같은 기분이었다. 그 작은 돈을 동동거리는 엄마 손에 쥐어줄 수 있어서 세상 행복했다. 그 돈을 벌기 위해 발이 퉁퉁 붓고, 손이 트고, 운동화가 다 젖는 건 상관없었다. 엄마가 행복해했으니까... 아직도 영화관을 가지 못했던 그 때... 어색한 표정을 짓던 엄마가 생각난다. 그 표정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져온다.


가난,폭력,알콜중독 트리플 크라운으로 30년동안 결혼생각이 없었던 난...왜 결혼을 하게 된 걸까?


남편은 술도 하고, 담배도 피고, 가부장적인 사람이다. 회사에서는 그랬다. 적어도 내 앞에서는 아니었다. 회사 선배로 만나 다정하게 일을 알려주는 이 사람이 좋았다. 일을 배우면서 가끔 무서운 적도 있었지만 재미있는 선배가 좋았다. 우린 4년이라는 시간을 만났고, 내가 이직으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다. 이직한 직장에서 사람 구실도 못하고, 모든 모욕을 참고 견디고 있을 때....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을 때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이었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힘든 적도 많았지만 이  사람과 평생 함께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게 해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혼에 대해 100% 확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엄마처럼 맞고 살지 않을 자신, 내 남편이 술이나 도박에 빠지지 않을 자신, 무엇보다 내가 엄마처럼 참고 살지 않을 자신.


그렇게 비혼주의자인 나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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