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선택'을 포기하게 만든다.
선택에는 값이 든다.
며칠전 이마트에서 장을 보며, 해쉬브라운을 한 줄을 구매했다. 집에 오자마자 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노릇노릇하게 튀겨냈다. 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려서 한 입 먹으니...맞다 그 맛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한 알에 50원에 팔던 작은 감자알맹이.
아주 어릴 때부터 뭔가를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 해왔다. 분식집에서 파는 귀가 뾰족한 피카츄 돈까스가 먹고 싶어도 친구들 앞에서 나는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했다. 먹고 싶다는 건 그걸 살 수 있는 돈이 있어야하는데 나는 그런 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아주 소박했다. 분식집 앞에서 팔던 50원짜리 알감자를 한 포대 사서 질릴 때까지 먹어보는 것.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피자와 치킨을 배터지게 먹어보는 꿈으로 바뀌었지만...
중학교 때 작고, 귀여운 미니핀과 시고르자브종 두 마리를 키웠다. 집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키우지 못해 버린 강아지를 아빠가 데려왔다. 늘 그렇듯 아빠의 술과 도박으로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대체 강아지는 왜 데리고 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엄마가 하루종일 시다로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에 딱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퇴근한 엄마 손에 들린 라면 2개를 보면, 하루동안 참던 굶주림이 폭발할 것 같이 심장이 뛰었다. 아이들의 놀이에도 돈은 필요하다. 돈이 없는 난 방학이면 학교에서 줬던 급식도 없이 하루종일 먹을 것들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면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가 야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굶주림에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방에서 시계만 쳐다보는게 일이라면 일이었다. 오후 10시, 엄마가 라면 2봉지를 사들고 퇴근했다. 그 라면 2개를 엄마와 언니와 내가 온전히 다 먹었으면 배가 덜 고팠을까?
당시 키우던 강아지 세 마리의 뼈도 앙상했다. 사료는 이미 바퀴벌레들이 점령해서 배를 땅땅 두드리고 있었고, 강아지들이 먹을 음식은 없었다. 라면을 2개 끓이면 푹 익혀 양을 늘리고, 그렇게 한 봉지 남짓한 라면은 강아지들에게 양보했다. 먹을게 없어도 나누어 먹었다. 강아지들도 밥을 주어야했다. 아직도 나는 그 시절 무능했던 내 자신이 끔찍하게 싫다. 강아지들과 나는 항상 배가 고팠다. 난 배고픔에 항상 지쳐있었지만, 바보같은 강아지들은 나를 보며 앙상한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친척들이 겨우 마련해준 보증금까지 월세로 모두 까이고, 우린 야반도주하는 불륜남녀처럼 옷가지 몇개만 챙겨서 친가에 들어가게 되었다. 내 삶도 위태위태했던터라 강아지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니...하기 싫었다. 내가 먼저 살고 싶었으니까. 친할머니 집에서는 더럽고, 생활비도 못내는 우리가 골치덩어리였을거다. 심지어 내 아들, 고모들 입장에서는 우리 오빠에게 대드는...천하의 쌍놈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술에 취해 아빠가 우릴 때리면 친할머니는 나가 죽으라는 막말을 3시간 내내 떠들었다. 고모들은 언니와 나를 각각 방에 가두고 때렸다. 힘들었다라는 말보다 죽고 싶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고 싶었다는 말이 떠오를만큼 끔찍한 기억이었다.
강아지들의 최후도 좋지 않았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강아지는 하얀 털과 길고 날렵한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진돗개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 늠름한 얼굴이었다. 나는 나의 강아지를 사랑했다. 친할머니네 들어오고 아이들의 생사가 궁금해졌을 무렵 외갓집에 나의 사랑하는 강아지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뻤다. 하지만 아이는 더러운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누구도 치워주지 않는 똥오줌을 밟으며, 나를 보며 좋다고 길고 긴 꼬리를 흔드는 그 아이에게 나는 이제 아파트에 사는 깍쟁이 아가씨가 된 듯 멀리서 손인사만 할 뿐이었다. 그 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얼마 뒤 그 아이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보신탕이 되었다고 한다. 다른 아이들의 최후도 비슷하다.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 자신이 낳은 새끼강아지를 어떤 미친놈이 때려 죽이는 모습을 본 강아지와 죽은 새끼들...모두 다 내 잘못인것만 같았다. 아니 모두 다 내 잘못이다. 어리고, 힘 없고, 돈 없는 내 잘 못이다.
가난이 만든 불행은 아주 진득하고, 끈적여서 함께 옮는다. 불행한 내가 그 아이들을 너무 사랑해서 내 불행까지 강아지들에게 옮았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평생 아니 죽어서도 죄인이다.
하지만 죄인이어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친할머니네 집에서 몇년을 맞고 살다가 처음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경찰에 신고했다. 고아원이라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경찰은...도와주지 못했다...아니 도와주지 않았다. 그저 불안에 떠는 내 눈과 당황한 그의 눈이 마주치고, 욕을 내뱉으며 경찰을 때리는 시늉을 하는 아빠를 피해 경찰은 이러시면 안된다는 한 마디와 함께 돌아가버렸다. 그 당시 경찰에 신고하는 건 내 최후의 보루였는데... 마지막 희망이 무너져버렸다. 경찰에 신고하면 아빠와 분리되고, 조금은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모든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에게 늘 맞고,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갔다. 요즘 엄마의 얼굴은 자체발광 하얀 진주빛인데 그 당시에는 까맣게 타버린 사람 같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에도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의 속이 썩어 문드러지면 그런 얼굴빛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직접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기가 막힌 경험이었다.
나는 여전히 가난이 낸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있다. 모든 선택은 돈이다. 두부를 하나 사더라도 같은 무게에 조금 더 값싼 물건을 찾는다. 돈이 드는 취미생활은 가지지 않는다. 요즘은 이런 사람이 살기 좋아진 세상이 되었다. 나의 가난을 취향으로 포장할 수 있는 집순이라는 단어를 나는 사랑한다.
유튜브를 보다 어느 전문가 인터뷰를 보았다. 가난할 수록 가상세계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오프라인은 부자들이 점유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소비가 실현되는 오프라인보다 내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온라인을 더 선호한다.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대신 유튜브로 다른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주는 것을 본다. 오프라인에서 옷을 구경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싼 가격에 옷을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나는 아직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갇혀 허우적댄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고 밖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 근처에 이렇게 맛집이 많았는지, 구경할 곳이 많았는지, 모르던 장소들을 알게되었다. 외부 활동을 통해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원래의 나라면 집 밖은 무섭고, 알 수 없는 소비들이 가득한 곳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는 시점부터 서있는 거 말고는 모든 행동에 돈이 든다. 인생네컷, 카페, 식당 등 외부 활동은 곧 소비와 같다. 나에게 밖은 그만큼 두려운 곳이었다.
남편을 만나고 처음으로 나에게 소비를 시작했다. 남편의 도움이 컷다.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남편을 만나 소비를 통해 약간의 행복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급이 2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던 달에 남편 생일이 있었다. 비싼 시계는 아니었지만 내 생에 그렇게 많은 돈은 써본 건 처음이었다. 몇 십만원 짜리 였지만 카드 할부를 할 때는 손이 벌벌 떨렸다. 남편은 그 시계를 받고, 나에게 더 좋은 가방을 선물해주었다. 남편과 다니며 쇼핑이 무서운 일이 아니라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쇼핑몰이...백화점이...무섭고 두렵다)
백화점은 문만 봐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곳이다. 너무 좋아서?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정의한 단어는 두려움이다. 백화점 문 앞에 서면 두렵다. 저 곳은 나같이 돈이 없는 사람은 무시하고, 괄시하는 공간 같았다. 소비할 능력도 없으면서 이런 곳을 와? 라고 모두 날 욕하는 것 같았다. 대학생 때 친구가 백화점을 가자고 하면 나는 마치 훈련받는 이등병처럼 왼쪽 손과 왼쪽 발을 맞춰 부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내가 돈이 없는 걸 점원이 알고 날 무시할 거 같은 생각 뿐이었다. 지독한 피해의식에 찌들어 있었다. 항상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자신감 넘치게 쇼핑하는 곳은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가진 돈을 누가 무시할까봐 걱정하지도, 누군가 나를 비웃을까 노심초사 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옷을 많이 사지도 않았다. 친구와 5바퀴를 돌고, 또 돌아야 내 손에는 오천원 짜리 옷 한 벌 겨우 들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빈 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지만...
가난은 나의 모든 선택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수치스럽지 않도록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된다. 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가난은 모든 것을 부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