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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Aug 18. 2023

아웃백은 처음이에요.

주문 어떻게 하지? 손에 땀나고 있어;;

오늘 저녁은 크림파스타다. 고소한 풍미가 가득한 매콤 베이컨 크림파스타를 시켰다. 보통 배달비를 아껴보겠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염이 오나 걸어서 포장을 하러 갔지만 오늘은 퇴근 후 도저히 갈 수 있는 힘이 없어 배달을 시켰다. (그 와중에 아껴보겠다고 묶음 배달을 시켰다가 면이 퉁퉁 불어왔다.) 그래도 크림소스에 불어 터진 면을 살살 비벼서 먹었더니 고소한 크림이 온몸 가득 채워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파스타를 먹을 때마다 생각나는 기억이 있다. 나는 아웃백을 성인이 돼서 처음 가봤다.


보증금을 다 까먹고 친가에 살고 있을 때였다. 아빠의 여동생 중 한 명은 지방에 살았고, 한 번씩 서울에 와서 지내곤 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집도 대단한 집이라는 것을... 친정에 혼자 또는 자식들을 데리고 온다면 대부분 가정의 불화가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외갓집에 가던 엄마의 모습이 늘 그랬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면 고모부가 올라와 죄송하다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 뒤 데려갔다. 친가의 남자들은 모두 아내를 때리고, 여자들은 죄다 남편한테 맞는 아주 대단한 집안이었다. 그렇게 내려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촌동생들과 함께 다시 친가로 돌아왔다.


나는 그 사촌동생들이 부러웠다. 여동생들끼리는 사이가 좋아서 서로서로 챙겨주기 바빴고, 조카들이 오면 꼭 아웃백을 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운 새언니 자식인데 데려갈 리가... 그래도 빵은 얻어먹을 수 있었다. 아웃백에서 밥 다 먹으면 인당 한 개씩 주는 빵을 아는가? 부시맨 브레드라고 조금 퍽퍽하지만 같이 주는 망고소스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그 아이들이 오면 우리만 제외하고 모두 아웃백에 갔다. 다녀온 걸 자랑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악의 없는 선행이었는지 포장한 빵은 먹지도 않으면서 거실 김치냉장고(뚜껑형) 위에 놓아두었다. 눈치를 보다 먹어도 된다는 확신이 들면(보통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빵을 하나 꺼내 맛있게 먹었다. 그때는 빵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런 날 보며 엄마는 속이 상했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다 언니가 취업을 하고, 처음으로 아웃백에 갈 수 있었다. 돈 없는 사람이 돈 써야 하는 곳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실수는 직원이 추천해 주는 걸 다른 생각 없이 선택한다는 것이다. 저녁 시간에 방문해 가장 비싼 세트 메뉴를 추천받고, 수프, 음료, 고기 굽기를 어렵게 정하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우리가 아웃백도 다 와보네.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모두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식사를 마쳤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우리가 밥을 먹는다. 매번 버리듯 가져온 빵만 주워 먹다가 이제는 메인 요리를 먹는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이 글을 쓰는데도 그때 생각에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우린 언니의 월급날, 엄마의 생신날, 언니의 생일, 내 생일을 꼬박꼬박 아웃백에 방문했고, 매번 티슈로 눈물을 닦으면서 식사를 마쳤다. 누군가가 보면 지지리 궁상일 수 있지만 그 공간에만 가면 계속 그때 그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엄마는 울면서 "우리 애들도 좀 데려가주지. 지들끼리만 다녀오고... 난 미워도 우리 애들은 좀 데려가주지... 거기서 가져온 빵을 맛있다고 먹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라고 말하며 또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못 가더라도 내 자식은 제발 데려가달라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빌고 빌었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가 울기 시작하면 언니와 나도 눈물이 전염돼 꾹꾹 참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울음이 터져버린다.


지금도 열심히 아웃백을 가고 있지만, 우리는 3번에 한 번 꼴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아웃백을 가면서 알게 된 꿀팁들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아웃백은 꼭 런치에 갈 것!

빵 먹을 때는 추가 소스 다 달라고 할 것!

두 명 이상 갈 경우 수프 하나는 샐러드로 바꾸고, 치킨텐더를 추가할 것!

음료는 리필되니까 먹고 싶은 탄산으로 리필해 먹을 것!

후식으로 나오는 음료는 테이크 아웃도 되니까 가져 나올 것!

마지막으로 부시맨 브레드는 인당 한 개씩 포장해서 주는데 그때 다른 소스도 추가로 달라고 요청할 것!



오늘은 이상하게 크림파스타가 더 맛있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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