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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영 Aug 21. 2023

가난은 '사랑'을 포기하게 만든다.

가난하면 연애도 사치다.

3월이었다.


벚꽃이 휘날리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새내기의 풋풋함을 알리듯 여기저기 바쁜 걸음들 뿐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담은 공기가 캠퍼스 내에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한 달에 이틀만 쉬고 모두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교에 분기마다 내야 하는 운영비를 못 내서 선생님께 사정을 말한 뒤 지원을 받았다. 우리 고등학교는 쌀을 한 봉지 가져와서 모은 뒤 어려운 친구에게 전달하는 행사가 있었다. 우리 집은 쌀이 두 포대였다. 언니와 내가 각각 쌀을 지원받게 되었다. 혹여 누가 볼까 가장 늦은 시간 학교 경비실에 가서 쌀을 받아왔다. 친가에서 밥이나 축내는 벌레 취급을 받던 때라 이렇게라도 쌀을 받아 뿌듯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무도 내가 이 쌀을 받았다는 사실은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언니와 나는 머리가 좋았다.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과외를 하지 않아도 상을 받고, 높은 성적을 받았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정말 머리가 좋았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까지는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친가에서 매일 같이 폭언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우리는 고시원 1인실에서 함께 살아가기로 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아르바이트를 갔다. 오후 11시, 12시에 일이 끝나면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주말에는 12시간 일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 고시원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성적은 신경 쓸 수 없었다. 그 시절의 기억은 이상하리만치 없다. 꼴등은 아니었지만 하위권은 확실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취업도 생각했지만 내 생애 처음으로 욕심을 내보기로 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때부터 오후 12시에 아르바이트 후 집에서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하고 학교를 갔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사람이 서서 잘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이 좋게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편의점 야간 알바, 우편물 작업 알바(새벽), 과외를 하면서 반수를 시작했다. 새벽알바가 시급이 가장 높았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했다. 행복했다. 그리고 다음 해 내가 원하던 대학, 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2번째 맞이하는 3월이었다. 봄바람이 내 마음에도 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에 설레었다. 드라마 덕후였던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르는 로맨스였다. 하지만 나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드라마에 나오는 가난한 여주, 부자 남주는 현실에 없다. 데이트를 하려면 아니 커피라도 한 잔이라도 마시려면, 아니 그 보다 만남이라도 시작하려면 시간이라도 있어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공강시간에는 국가근로장학생, 학교 끝나자마자 과외를 전전하며 친구들과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연애라니... 그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가...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맛집도 가고, 영화도 보고.... 이 모든 사치는 내가 욕심 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돈을 버는 건 가능했지만 돈은 쓰는 건 불가능했다. 당장 고시원비도 내야 하고,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면 굶지 않도록 라면 한 박스를 사두어야 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병원에 가야 할 수 있어서 비상금도 있어야 했다. 나에게는 돈이 없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교수님 면담을 신청하고, 성적 장학금을 받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나에게 봄바람 살랑이는 설렘이 들어설 자리가 점차 사라졌다.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모두 CC(캠퍼스커플)가 되었다. 우리 4 총사 중 3명은 모두 남자 친구와 다니며 찢어졌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렇다고 고백을 안 받은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고백과 거절... 아직은 연애를 할 자신이 없었다. 당시 대학 입학 후에도 오랜 시간 동안 연애를 하지 않자 언니가 나의 성향을 의심했다고 시간이 지난 후에 고백했다.


드라마와 현실은 달랐다.


드라마에서는 가난한 여주도 사랑할 수 있었지만 현실은 가난한 여주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함께 웃으며 차를 마실 시간도 없는 나에게 연애는... 사랑은... 욕심이었다. 2년 넘게 나를 좋아해 주고, 챙겨주던 오빠가 있었다. 고마운 사람이었다. 끼니를 늘 거르고 일을 하는 나를 위해 간식을 챙겨주고, 시험기간에는 경쟁률 치열한 독서실 자리도 선뜻 내어주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내 주변에서 나를 계속 챙겨주었다. 성년의 날에는 향수와 장미꽃을 내 사물함에 넣어주었다. 그런 날에도 공부만, 일만 하는 나에게 잊지 못할 큰 선물이었다. 내 생일은 방학이었다. 멀리 사는 그분은 내 생일에 우리 동네까지 와서 선물과 축하를 해주고 갔다. 고마웠다. 하지만 그분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그분은 아빠를 참 많이 닮아있었다. 아빠에게 치를 떠는 나에게 그 분과의 연애는 불가능이었다. 아빠와 비슷한 점이 있다면 누구든 바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남사친이 한 명도 없다. 아빠와 단 한 가지의 공통점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고시원에서 살면 마음 편하게 통화도 할 수 없었다. 연애를 하던 언니는 늘 이불속 아니면 고시원 화장실에서 남자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렇게 좋을까? 그런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연애를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야 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사랑하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더 많이 행복하고 싶었다. 그뿐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가슴 저릿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나는 나를 속였다.

가난한 내가 사랑을 욕심내지 않는다고, 혼자여도 괜찮다고...

아니었다. 나는 거짓말쟁이었다.

누구보다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었다.


가장 슬픈 일은 내가 나 자신조차도 아끼고, 사랑해주지 못했던 거였다.

돈이 없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끼니도 거르고, 잠도 자지 않고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한 학기마다 두 번씩 응급실에 실려갔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지 않고, 아껴주지 않았다.

나는 나를 제일 미워했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나를 사랑하려고 한다. 아껴주려고 한다.

지난날에 나를 생각하며 오늘은 나 자신을 더 힘껏 사랑해주고 싶다. 잘했다고, 고생많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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