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을지는시간 Jul 27. 2016

오빠. . .

오빠야. . .

 저기 저 앞에 낯익은 등이 지나간다

구부정한채로. . .

나는 아는체를 할 수가 없다. . .  갑자기.

목이 콱 메였기 때문이다.


오빠의 등이었다.


경상도 남자 아니랄까봐 무뚝뚝하고 몇번이나 되물어야 퉁명스럽게 단답형의 대답이 겨우 나오던 오빠였는데

이제는 시퍼렇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충청도에서 살다 온 사람처럼 목소리는 무지근해진지 오래다.



예전엔 내가 보낸 청춘과 오빠의 청춘은 별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빠에게도 빛나는 청춘이 있었을까. . . 하는 생각이 들때마다 누가 왜 우냐고 물어보면 차마 대답 할 말이 없는 눈물이 불쑥 쏫는다. . .


 

 

엄마가 돌아가셨을때 동생은 14살이고 나는 22살이었다.  

그때는 나와 동생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언니는 언니라서.

오빠는 오빠니까...

동생보다

나보다 덜 슬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거 같다.

 

하지만

내가 자식을 낳고 키우고 부모가 되고보니

사실은 제일 슬펐던 사람은 우리 오빠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수리 부분에 머리가  빠져나가고 있는 오십 중반을 달려가는 오빠.

딸만 둘을 두어 더욱 지금이 외로울오빠.

혼자가 된 내가 전화하면 목소리가 이미 걱정이 묻어 있는 오빠.

위안이 되어 주는건 오직 야구채널뿐일까봐 걱정되는 오빠지만


오빠를 오빠야~로 부르던 그시절엔

오빠와 눈맞추는 일도 무서웠었다.

 

집안의 맏이로 태어나

미덥지 못한 아버지 때문에 세상으로 빨리 발을 내딛었던 우리 오빠.

그래서 그런 오빠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과 애처러운 마음을 가진 엄마는 그렇게 보란듯이 편애를 하셨을거다.  

오빠 밥과 오빠 반찬,  오빠 이부자리까지...

아침에 오빠가 눈 떠면 딱 그 시간에 맞춰 밥상이 대령되고

예고도 없이 비라도 오는 저녁이면 딸년 둘 중에 누구라도 우산하나 들고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서 하염없이 기다려 오빠를 모셔와야 했던 귀찮기 이를 데 없던 일까지 엄마의 잔소리를, 다그침을 들어가며 수행해야 했던...  그런날은 정말 오빠가 밉고 귀찮았었다...

 

 

 

맏이면서 세상의 바람막이까지 되어 주어야 했던 오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고는 제대로 된 밥상도

출근길 나서는 오빠 옷매무새를 다듬던 손길도 사라지고

담요아래서 따끈하게 데워져 있어야 할 밥은 성그러니 식어 있기 십상이었고

예고도 없이 비오는 날 저녁.

서로 미루는 동생들 때문에 비 맞고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었다.

 

 

맏이라는 무게와 경제력 없는 아버지에게 큰소리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하는 오빠를 유일하게 대접해주고 돈 버는 일 외에는 신경 하나 안써이게 했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엄마 없는 빈자리를 가장 시리게 절감해야 했던 사람은 나도 아니고 동생도 아닌 우리 오빠였다는 것을

나는 늦게늦게 아버렸다.

 

 

엄마의 편애가 그립다.

오빠의 젊었던 시절...

무거운 책임감만 강요되어 있었던 오빠의 젊은 날...

그 시절이 너무 안타깝다.

 

오빠는

잊지 못 할 사랑도

잊지 못 할 이별이라도 해 보았을까...

 

 

 

 

 

작가의 이전글 이럴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