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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idrey Feb 07. 2023

01. 웹디자이너, 주부가 되다

공장형 웹디자이너에서 홈붙박이가 되기까지






멋들어진 오피스에서 허먼 밀러 체어에 앉아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간단한 스트레칭 후, 맥북을 켜 오늘의 업무를 수행하는 커리어 우먼... 이었으면 했다. 난 지독히도 그 이미지를 원해왔지만 이룰 수 없었다. 레드불 한 캔이나 몬스터, 팔자 좋을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텁텁하고 먼지 쌓인 사무실에서 브랜드도 모르는, 끼리릭 소리를 연신 내며 수명을 태워가는 체어에 앉아 하루를 시작했다.



미감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괴이한 클라이언트의 주문, 누르면 다른 음악이 랜덤으로 플레이되는 주크박스처럼 쏟아지는 A~F까지의 시안들, 비핸스나 그라폴리오, 노트폴리오에서 볼 수 있는 대기업형 디자이너들의 작업물과 탑 디자이너들과 기업 간의 신박한 콜라보들, 이것저것 신기한 툴을 곁들인 다양한 디자인과는 다른 중소기업 '공장형' 웹디자이너로서 진부하고 밋밋하게 완성해'내'야만 하는 나의 작업물들.



코딩과 웹디자인은 한배를 탄 선원들과 다름없지만, 부차적으로 항상 무언가를 배워야 했다. 요즘엔 보편적인 영상과 3D는 옵션이거니와 MD 일까지 했더랬다. 편집과 출력, 그리고 전시회에 나갈 부스(공간) 디자인까지 하게 되면서 드는 생각은 나는 '웹디자이너'일까? 나는 어떤 형태의 사무직 직원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다수의 공장형 웹디들도 이 수순을 똑같이 밟아왔을 것이다. 더한 사람도 분명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텁텁한 이 일상 루틴을 보내다 -물론 이 공정에서도 성취감은 있었다.- 8년이란 짧디짧은 경력을 잠깐 홀드하고 '결혼'이라는 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가두리 안에서의 나는 어떠한 일을 하게 될까?



열심히 굴려굴려 모은 돈으로 집 안을 꾸미고, 바꾸고, 갈고 하는 과정에서 직업에서 느끼는 성취감과는 좀 다른 만족감을 느꼈다. 이건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라 내 소유다. 온전히 나와 한 길을 같이 걷는 내 인테리어... (물론, 오늘의 집과 삐까뻔쩍한 리빙 블로그의 인테리어를 참고한 그냥 복사품이나 다름없다.) 6~7평의 좁은 투룸에서 이 악물고 버텨 드디어 가꾼 25평의 아담한 보금자리에 대한 나의 '애완'적인 감정,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누리고 느끼고 살았을 그런 주거에 대한 애정을 난 지금에서야 느낄 때의 살짝 드는 허탈감.



어느새,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고 신혼의 단 꿈은 여전히 녹이 슬지 않게 꿈꾸어가고 있지만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듯이 경제적, 지식적인 레버리지가 전혀 없는 기간 동안 내 두뇌는 '멍텅구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안 끊는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더 썩지 않기 위해 그간 틈틈이 아침에 국내&해외 뉴스 사이트의 기사를 쭉 읽고, 자주 가던 디자인 사이트에서 트렌드나 동향을 체크하고, 간간이 틈날 때마다 외주를 받아 재택을 하였다. 남편은 영상 편집 일을 하는데, 그에게 블렌더와 같은 툴을 배우고 영상도 조금씩 배우며 굳은 두뇌에 조금씩 기름을 뿌려주고 있긴 하다.



요새는 그가 하는 투잡 아닌 투잡에 조금씩 발을 디뎌주며 도움(을 주는 건지 횡포를 부리는 건지 모르겠지만)을 주고 있긴 하다. 영문과에서 배웠던 핫바지 같은 실력으로 교정을 해주고, 글 또한 도움을 요청할 때 작문해 주거나 교정해 준다. 간단한 썸네일이나 작은 디자인적인 감각이 필요한 이미지 컨텐츠도 살짝 건드려주기도 한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코-워커이자 맹랑한 클라이언트인 그와의 연대가 어디까지 이어 질진 모르겠지만, 포트폴리오를 조금씩 꾸밀 조각들을 붙이는 느낌으로 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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