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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든홍 Nov 18. 2024

<비용의 아내> 후기, 이상주의자들의 찌질함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정말 좋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아파하는 인물에 대한 묘사는 다자이 오사무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내가 읽은 그의 글 중 대부분은 좌절하는 이상주의자 즉, 다자이 오사무의 면면이 조금씩 반영되어 있다. 나 또한 이상을 좇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되지 못함에 늘 고통을 느낀다. 그럴 때그의 글을 읽으며 공감 섞인 위로를 받는다.


<비용의 아내>는 프랑스 중세의 시인 '프랑수아 비용'을 추구하는 남편 오타니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비용은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이지만 여러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는 등 방황을 거듭한 인물이기도 하다. 극 중 오타니도 그렇다. 단골 가게의 돈을 훔치고, 여러 여자들을 홀려 돈을 뜯어내기도 하는 등, 다양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른 여자의 돈을 슬쩍했다는 사실을 주저없이 말하기도, 돈을 찾기 위해 집까지 찾아온 가게 주인을 피해 도망쳐 아내만 남겨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무례에 대한 사과는 언급조차 없다.


작품 중 유일하게 오타니가 직접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건 고작 신문에서 그를 쾌락주의자, 비인간적이라며 비난한 일뿐이다. 그의 '이상'인 비용은 범죄를 저지르긴 했으나 인간적이며 낭만을 가진 인물이기에 그가 저지른 범죄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비용과 닮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받는 것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오타니는 뒤틀린 이상주의자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범죄에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지만 그저 종이에 적힌 비난 몇 줄에는 길길이 날뛰는 몹쓸 인간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자신의 글에 자신의 성격과 고민을 담은 인물을 등장시키는 걸 고려하면 오타니는 작가가 경계하는 모습을 극대화하여 표현한 인물처럼 보였다.


반대로 그의 부인은 현실적이다. 모르는 남자에게 범해졌음에도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아이를 데리고 가게에 출근한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묵묵히 일한다. 그 날 만난 오타니가 신문 기사 내용으로 투정 부리자 '비인간인들 뭐 어때서요? 우린, 살아 있기만 하면 돼요!'라며 초연한 반응을 보인다.


이 글의 주제가 이상과 현실의 대립이라고 한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이상은 부인에 가까울 듯하다. 예민하고 이상만을 좇는 오타니와 같은 자신에게서 벗어나 초연하고 쾌활한 부인처럼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나도 부인처럼 살아가고 싶다.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모든 게 해결되리라 생각하며 단순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오타니처럼 살아갈 것만 같다. 지금의 나이까지 남아 있는 성격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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