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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든홍 Oct 25. 2024

<채식주의자> 후기, 끊어지지 않는 폭력의 굴레

대한민국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생긴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다. 명망 높은 지식인들이 최고로 뽑은 사람의 책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결국 책의 중심 내용은 '끊어지지 않는 폭력의 굴레에 대한 혐오'라고 느꼈다. 작품 속 주인공인 영혜가 당한 폭력에 대한 거부감이 육식이라는 메타포로 스며든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와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남편, 그런 폭력을 혐오했던 그녀였다. 영혜가 어렸을 적 집에서 키우던 개가 그녀를 물자 아버지가 오토바이에 개의 목을 매달고 그 생물의 숨이 멎을 때까지 동네를 돌았다. 그러고는 죽은 개의 고기를 요리해 동네 사람들과 나눴다. 바퀴수가 늘어날수록 자의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목에 달린 끈에 의해 강제적으로 끌려다니는 개를 지켜보던, 들깨 냄새로 채 가려지지 않는 개의 냄새를 꿋꿋이 참아내며 개고기 한 그릇을 다 비워낸 영혜였다. '감히 네가 나를 물어'라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그때 자기혐오를 느꼈을 것이다. 폭력의 굴레에 갇혀 환멸을 느끼면서도 자신마저도 그 폭력의 한 축임을 느꼈을 때 오는 역겨움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육식'을 한다는 것은 세상의 폭력을 묵인한다는 것이다. 학대당한 가축이건, 행복을 느꼈던 생명이건 결국 잔인하게 죽은 무언가의 고기가 이빨을 통해 잘게 찢기고, 이빨에 끼기도 하며, 삼켜지는 과정에서 그녀는 그토록 싫어하던 폭력에 가담한 것이다. 그런 점이 주인공인 영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던 것이다.


결국 영혜가 택한 건 자신이 나무가 되는 것이다. 마음이 모질지 못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폭력을 행한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삶에 스쳤던 무례한 다수에게 해를 가할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폭력을 속죄하기 위해 채식을 하는 와중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의 아버지가 쓴 해결책이 폭력이라는 것이었다. 고작 탕수육을 먹이기 위해 그녀를 잡게 시키고 뺨을 때리고 또 때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 몰래 흑염소즙을 한약이라고 속이며 들이키게 했다. 이런 강압과 기만이라는 '폭력'이 그녀의 생각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세상에 나온 이상 사람들은 각자의 모순에 갇혀 산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소심하고 감성적인 사람을 극도로 싫어한다. 삶에서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권태가 몰려온다. 비교도 안될 만큼 장대한 문제가 언젠가는 눈앞에 닥칠 텐데 사소한 문제에 지나친 감정을 쏟는 이들이 미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그렇다. 잠을 잘 때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이 불에 타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친다. 처음 보는 사람을 볼 때면 곱슬기가 심해 정돈되지 않아 보이는 내 머리가 안 좋은 인상을 줘 날 적대시하진 않을지 불안해한다. 내 자전적인 내용을 적은 글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을까 파일명을 ‘대학 논문 과제'로 저장해두기도 한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군상이 곧 나인 것이다.


폭력에서 발버둥 치려 했으나 살아있는 이상 폭력과 단절할 수 없음을, 자신이 즉 폭력임을 알게 된 영혜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 삶 속 모순을 발견함으로써 인간은 성장해 간다고 생각한다. 그 모순을 이미 내 안에 깊숙이 뿌리내린 본성이라며 받아들일 수도, 너무 튀어나와 보기 싫은 부분을 잘 깎아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며칠 전 읽은 '해변의 카프카'처럼 이 책 또한 메타포로 점철된 책이었다. 이런 류의 작품보다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대놓고 드러난 책을 더 선호했었다. 그러나 최근 여러 문학을 접해보니 직설적인 방법으로 작가의 주제를 전해 듣는 것보다는 메타포와 인물 간의 관계 등으로 내가 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책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정작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과는 다를지라도 말이다. 어쨌든 책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내 몫이다. 이런 점 때문에 문학 작품이 좋아진다. 자기 계발서처럼 답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내 입맛대로 해석하고 나만의 단단한 '인생 취향'을 꾸려가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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