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재즈, ECM Pt. 1

The Most Beautiful Sound Next To Silence

by XandO

Köln, January 24, 1975, Part I (Live)

The Köln Concert - Keith Jarrett


< The Köln Concert >은 Keith Jarrett 개인의 대표작을 넘어,

ECM Records의 사운드 미학과 유럽 재즈의 정체성을 확인한 앨범이다.


1975년 1월 24일, 독일 쾰른 오페라하우스에서의 한 공연은

공연의 시작 전부터 드라마틱했다.

연주자인 키스 자렛이 원래 요청했던 그랜드 피아노는

풋내기 공연 스태프의 미숙한 준비로

리허설용 소형 베젠도르퍼가 준비되었다.

저음은 빈약했고 고음은 거칠었으며 페달 상태도 완전하지 않았다.

키스 자렛은 당시 심한 등통증으로 보조기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결국, 키스 자렛은 저음을 보강하기 위해 반복적인 리듬과 오스티나토를

의도적으로 자주 활용해야 했고,

강한 타건으로 음향적 빈약함을 채워야만 했다.

악기의 한계를 연주와 편곡적 전략으로 메꾸어 낸 셈이다.

이 반복 구조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내었고

1부 초반부의 최면적 긴장감을 고조로 이끌어간다.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역대 최고의 찬사를 받는 실황 앨범이 탄생한다.


제작자는 설립 6년 차였던 만프레드 아이허.

녹음 엔지니어는 마틴 빌란트였다.

그리고 이 음반은 전 세계적으로

약 350만~400만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집계된다.

재즈, 그것도 솔로 피아노 즉흥 연주 음반으로는 이례적인 수치다.

당시 무명의 신생 레이블이던 ECM은

이 앨범의 성공으로 미래의 유럽재즈의 상징적 레이블이 될

ECM의 재정적 기반을 견고히 확보한다.

이 기반을 바탕으로 ECM은 현대음악, 실험적인 프로젝트들,

그리고 신진 북유럽 연주자 발굴에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상업적인 타협 없이 그들만의 유니크한 카탈로그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 음반 < The Köln Concert >의 수익이 있었던 것이다.


이 앨범은 ECM의 사운드 미학적 차원에서는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CM은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그들만의 확고한 신념을 담은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사운드 철학을 내세웠다.

이 음반은 그 문장을 청각적으로 현실화하였다.

잔향을 길게 살린 마이킹, 홀의 공간감을 전면에 배치한 믹싱,

음과 음 사이의 여백을 음악의 일부로 다루어 내려는 섬세함까지

이 모든 것이 이후 ECM 사운드 미학의 표준이 된다.

음 하나의 길이, 페달의 울림, 공간의 깊이가

작곡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로 다루어진다.


Morales : Parce mihi domine - Jan Garbarek & The Hillard Ensemble


유럽 재즈의 정체성 또한 이 시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Miles Davis 이후 전기 악기와 강한 비트 중심의 퓨전이 확산되고 있었다.

반면 이 음반은 어쿠스틱 피아노 단독 연주로 정적과 반복을 밀어붙인다.

블루스와 가스펠 어법이 드러나지만,

동시에 낭만주의적 화성 진행과 현대음악적 구조 감각이 공존한다.

미국적 어법을 출발점으로 삼되, 유럽적 음향 감수성과 결합한 셈이다.

이후 Jan Garbarek, Eberhard Weber 등 ECM 소속 연주자들이 구축한

이른바 ‘유러피언 챔버 재즈’의 원형이 여기서 선명해진다.

형식적 측면도 분기점이다.

사전에 정해진 스탠더드나 테마 없이,

백지상태에서 출발하는 완전 즉흥 연주.

대규모 청중 앞에서 이를 녹음하고,

그것이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이다.

즉흥이 소수 취향의 실험에 머물지 않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유럽의 자유 즉흥 음악가들에게 현실적 가능성을 제시한 사건이었다.


< The Köln Concert >는 세 가지 측면에서 유럽 재즈를 상징하는 ECM을 규정한다.

첫째, 상업적 성공을 통해 레이블의 존속과 발전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둘째, 공간과 잔향을 중심에 두어 그들만의 새로운 음향적 미학을 확립했다.

셋째, 미국 재즈의 영향권 안에 있던 유럽 재즈가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들만의 감수성을 표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음반은 단순한 재즈 명반 또는 히트작이 아니다.

한 재즈 레이블의 경제적 기반이자,

유럽 재즈의 음악적 선언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만프레드 아이허의 ECM Lable이 있다.


When I Seem To Be Far Away - Terje Rypd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