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으로 가는 길 3

나름 스페셜한 여행기


아무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와보니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장으로서, 교사로서, 신앙인으로서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 여정의 단상을 되짚어보며 가끔은 미소지어 보고픈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런’ 해외생활기가 아닌 저만의 ‘나름 스페셜한 여행기’가 되기를 바라며.


#6.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힘차게 하늘로 올라왔다. 순식간에 멀어지는 땅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비행기 여행을 할 때면 나는 죽음을 생각한다. 먼 여행은 어쩐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과 닮았다. 떠날 때가 가까움을 알고 주변을 정리하고 동료와 친구와 작별을 고한다. 마지막까지 배웅해 주는 이들은 가족이다. 인사말을 나누고 손을 잡고 부둥켜안았다가 손 흔들며 헤어진다. 그리고 잠시 후 솟구쳐 올라간다. 그곳엔 하늘과 나만 있다. 이래서 죽음을 홀로 떠나는 여행이라 하나보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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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추락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얼마 전 인상 깊게 본 스페인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1972년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비행기 추락 장면이 너무 실감 나게 묘사되어서 기체가 흔들릴 때마다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올랐다.


"추락"이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10여 년 전 태평양을 가로질러 샌프란시스코로 갈 때 번개폭풍을 만난 적이 있었다. 깊은 밤 먹구름 한복판에서 창 너머로 마주했던 굵직한 번개 줄기는 땅에서 볼 때와 차원이 달랐다. 일단 번쩍하는 빛과 천둥소리의 시차가 없었다. 하늘에서 맞는 천둥은 격렬한 진동을 동반했다. 비는 횡으로 쏟아졌다. 수 시간 동안 비바람이 기관총처럼 창문을 쏘아댔고 비행기는 시종일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차처럼 흔들렸다. 눈이 멀 것 같은 흰 섬광과 굉음이 내리칠 때면 수십 미터씩 떨어지는 것 같았다.


전기파리채를 피해 도주하는 모기가 된 기분이랄까. 생명이 위태로움을 느꼈다. 누군가 확실하게 죽고자 한다면 11,000m 상공에서 태평양 한복판으로 추락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사람은 절로 기도하게 되는 것 같다. 내 생명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직감했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주님 비행기가 많이 흔들리네요 근데 저 아직은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덜컹) (꺄악) 에고 살려주세요 주님 제가 뭐 잘못한 게 있었을까요 (쿠르르릉.. 꽈과광! ) 저의 삶도 죽음도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신앙고백할 때쯤 어느새 평안이 마음에 들어왔다. 번개 폭풍과 승객들의 비명 속에서 고요한 평안에 잠겼던 그날의 경험은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8.

몇 년 전 제주도 갈 때 큰 애가 한 말도 생각난다.

미처 한글을 다 떼지는 못한 아이가 비행기 운행 경로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앞 좌석 작은 화면을 보고 지도상의 글자를 앙증맞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거 봐! 여기가 천국인가 봐”


그거 천국 아니야… 태국이야..

잠시 후 비행기가 언제 도착하나 궁금했는지 아이는 참신하게도 어려운 표현 대신 이렇게 물었다.

아주 크고 활기찬 목소리로,


“아빠! 이 비행기 언제 추락해!?"


아들아 추락하면 안 돼… 착륙이겠지..

추락하면 진짜 천국 가는거야...

주변 승객들이 킬킬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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