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스페셜한 여행기
아무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난 건 아니었지만, 막상 와보니 모든 게 새롭고 낯설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가장으로서, 교사로서, 신앙인으로서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조금씩 의미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 여정의 단상을 되짚어보며 가끔은 미소 지어 보고픈 이야기입니다.
‘그냥 그런’ 해외생활기가 아닌 저만의 ‘나름 스페셜한 여행기’가 되기를 바라며.
#9.
쉬운 길보다는 옳은 길로 가라.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직하게 대가를 지불하며 가라. 나는 이 말을 다시금 떠올린다. 고지식해 보이는 말이다. 쉽고 편하고 즐겁게 살면 좋지 뭐.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짧으니 하고 싶은 일 하고 가고 싶은 길로 가라고 한다.
#10.
솔직히 그러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많이 짊어지고 말았다. 그런 경우가 왕왕 있지 않은가? 너무 많은 비극을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측은지심과 부채의식 때문에 자기 즐거움을 오롯이 추구하지 못한다. 편안히 사는 게 행복하지 않고 불편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내 수준에서 그러한 딜레마를 겪는 것 같다. 그간 슬픈 일을 많이 겪었다. 직업상 몸이 불편하고 아프고 생활고를 겪고 우울을 호소하기도 하는 장애학생들과 그 가정을 오래 지켜봐 온 까닭도 있을 것이다.
#11.
어디 그뿐이겠나. 연로해 가실 부모님은 매주 보던 자식과 손주를 그리워하실 터다. 할머니도 건강히 다시 뵐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 우리의 경제적 기반과 일상은 나름 탄탄히 자리 잡은 편이었는데, 정든 차도 팔았고 집도 내놓았다. 사람은 또 어떤가. 아내와 아이들도 나만 바라보고 모든 인연을 뒤로하고 고국을 떠난다. 나도 가족들, 오래도록 함께한 동료들, 제자들, 친구들, 교회 식구들과 크고 작은 인연들을 뒤로하고 택한 길이다. 막연히 새로운 경험이라 좋구나! 앗싸 신난다! 만족하기엔 지불할 대가가 너무 크다. 대가에 상응하는 더 큰 의미와 목적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모르고 가는 셈이니 고민되지 않을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어쩌다 호치민 직행'인 터라 헛웃음이 나온다. 스스로 지원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주변에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면 가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나라도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 있으면 관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모든 과정이 매끄러웠고, 모두가 응원해 주었고, 내가 바라고 기도했던 대로 이끌리는 기분이 들었다. 해외생활은 어릴 때부터 내 오랜 꿈이었다. 더 가난한 나라에서, 더 열악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 사랑으로 실천하고 싶었다.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과 삶을 더 가까이 맞대고 내가 갖춰 온 역량과 기술을 다해 지원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옛 꿈에 한 발짝 다가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는 길이 과연 옳은 길일까 생각한다. 미적지근한 마음과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도피행은 아닐까. 편하게 쉬며 여행 다니고 놀고먹고 애들 잘 교육시키고 떵떵거리며 사는 그림에다 여러 가지 명분을 곱게 덧칠하진 않았나. 혹은 해외생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동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가족들이 힘들어하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딜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 걸까.
#12.
생각해 봐도 잘 모른다. 가봐야 알 것이다. 확실한 건 길을 택했으면 최선을 다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믿는 대로 행동하고, 그 결과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삶은 그 자체로 불확실한 법이다. 사람이 아무리 철저히 계획하더라도 시시때때로 기가 막힌 운과 우연이 압도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인생이다. 생의 길목 길목마다 그런 경험들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쌓여 나름의 확신도 생겼다. 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허상일 수도 있다는 믿음과, 당장은 위태로워 보이는 길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다는 믿음이다.
또 이런 믿음도 있다. 지금 걷는 길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럼에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는 “몰라도 믿는다 “는 모순이 해결된다.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가야할 곳을 모르고 고향을 떠났다고 한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떠난단 말인가? 바보 아니야? 그러나 그 모순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자기 터전을 버리고 믿음으로 떠난 것이다.
#13.
우리 아들은 삶의 경험치가 적어서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아빠의 생각을 어떻게 다 따라가겠나. 아들은 그저 나를 믿고 따라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영원하신 아버지 앞에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기를 원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나는 현실로 받아들인다. 나는 따르고 주님은 인도하신다. 고백하건대 그것이 내 전부다.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떻게 흔들림 없이 소임을 다하고, 좋은 영향을 끼치고, 수고하면서도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의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명을 찾아 나서야겠다. 무엇을 위해 살다 죽을지를 구체화해야겠다. 그렇게 사는 게 진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인도하심, 그분의 선하심과 사람 사랑하심을 증명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내 삶의 궤적에 예상치 못할 사건과 장면이 즐비할지라도, 그런 매일을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새로워 모험을 떠난 어린아이처럼 놀라고 신날 것이다.
이제 비행기 창 너머로 호치민 시가 보인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Robert Fr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