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a Mar 20. 2024

[호모룩스 이야기-15] 귀인이 아닌 귀신

-영화 '귀인'을 보고 나서-

[호모룩스 이야기-15]      







                                                                  귀인이 아닌 귀신  

                                                             -영화 귀인을 보고 나서-               



                                                                                                                              시아


          

  그야말로 물귀신이다. 단단히 잡아서는 빨아 먹어 치웠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사연을 접했다. 꿈을 이루고 싶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걸 이뤄주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섰던 동년배한테 5년간 당했다. 청년의 ‘꿈’은 ‘배우’였는데, 놀랍게도 주인공은 현재 감독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기막힌 일을 다룬 영화가 작년에 개봉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당장 찾아보았고, 그렇게 영화 ‘귀인’을 만났다.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의 개인사를 알게 된 셈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보고 난 뒤에는 먹먹하고 아려왔다. ‘꿈’을 꾼다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제대로 꿈을 간직해본 이들은 알 것이다. 꿈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에도 견뎌낼 수 있다.”는 철학자 니체의 말을 절묘하게 경험하게 한다. 나는 ‘꿈’이 ‘자유’와 같다고 믿었다. 현실은 너무나 팍팍했고,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직장을 다녀도 늘 곤궁했고, 사랑도 만남도 모조리 실패했다. 청년 시절의 나는 암울했고 속으로 늘 울고 있었다. 그러니, 내게 푸른 시절은 푸르딩딩한 멍이 들기만 한 나날이었다. 그때, 일흔 살이 넘어서 시작해서 화가가 된 해리 리버맨을 한 잡지에 실린 글로 만났다. 그 글을 오려서 부적같이 들고 다녔다. 분명, 나도 작가가 될 거라고 다짐했다. 그 부적은 지금까지 내 지갑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 주위에 나 같은 마음을 가진 이를 만날 수 없었다. 메마르고 딱딱한 데다가 간혹 취미생활 정도로만 예술을 즐기는 이들이 다였다. 그때, 만약 이렇게 하면 작가가 될 거라고, 인정과 관심을 퍼부으며 꿈을 알아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 사람은 ‘귀인’이 틀림없다고!     



  다행히도 내게는 그런 이가 없었다. 전권하 감독한테는 목마른 순간에 물을 준 이가 나타났다.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꿈을 품고 있는 이는 ‘아웃사이더’임에 틀림없다. 혼자 걷던 사막에서 선뜻 손을 잡고 이끈 이가 얼마나 반가웠을까. 오아시스 정도가 아니라 쏟아지는 폭포를 알고 있다며 믿고 따라오라며 잡아끄는데 당연히 혹했을 것이다. 유명해지고 부를 얻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신뢰’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큰 용기가 솟아올랐을 것이다. 이제야말로 평생의 꿈을 이룰 기회라고도 여겼을 것이다. 그치가 이끄는 대로 따라 했던 그는 급기야 여러 일을 전전하게 된다. 피트니스 사업을 정리하고 근육질 몸에서 비만한 몸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오른쪽 가슴에서 팔뚝으로 이어지는 미키마우스 문신도 했다. 택시 운전, 정육점 일을  하라는 지시에도 묵묵하게 응했다. 고공 공포증이 있었던 그에게 번지점프를 하라고 한 것도, 곤지암 정신병원 근처에서 야밤에 절을 하라는 것도, 말도 안 될 정도의 촌스러운 이름으로 개명하라는 말도 그대로 들었다. 매니지먼트 비용이라며 달라고 한 300만 원도 달마다 꼬박꼬박 내주었다. 그 모든 것이 영화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가 운영하던 피트니스 사업체에 직원이었던 물귀신은 미끼를 툭 던졌다. 자신은 곧 결혼할 텐데, 장모가 될 사람은 중국의 갑부라는 거였다. 결혼만 하면 장모의 돈을 끌어당겨 영화를 제작해주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를 취재한 SBS 프로그램 제작인이 한 왜 그랬냐는 질문에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친구끼리 장난친 거예요.”라고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피트니스에서 일할 때 당한 갑질 때문에 골탕 먹이려고 복수한 것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비로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전권하는 눈물을 흘렸다. 친구라고 믿었는데, 진심으로 사과하면 되는데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니...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장장 5년의 세월이었다. 친구의 꿈을 가지고 놀았다지만, 그것은 폭탄을 터뜨린 거였다.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선 전권하는 세 편의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되었다. 그가 겪은 이야기를 녹아내어 만든 영화가 ‘귀인’이다.      



  ‘귀인’은 물귀신이 무속인한테 가자고 이끄는 바람에 가서 겪은 일화를 제목으로 한 것이다. 무속인이 대뜸 물귀신이 ‘귀인’이니 믿고 따르라고 했던 거였다. 영화의 프롤로그 화면에 나오는 ‘간절함, 희망, 그리고...’의 생략된 말은 단연코 ‘사기’다. 그런데도 영화는 차갑지 않다. 물귀신 역이었던 ‘강구’ 역시 혼인빙자 사기를 당했다. 불치병으로 시한부 삶을 살면서도 끝까지 영화판에 친구를 알리며 의리를 지켰다. 결국, 물귀신은 귀인이었다. 각본과 감독과 주연을 함께 맡은 전권하는 따뜻한 휴머니즘 영화를 만들고 말았다. 그것이 자못 아쉽기만 하다. 꼬임에 넘어갔던 어리석음도 물귀신 작전의 비뚤어진 행각도 영화 속에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파스텔 톤의 각색도 흥미 있기는 하지만, 동화는 누가 봐도 동화일 뿐이다. 치졸하고 비열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작용했고, 어떻게 버텨왔는지 예리하고 치명적인 극복담이었다면 어땠을까. 영화 ‘귀인’으로 전권하 감독은 2022년에 12회 충무로 단편 독립영화제에서 특별부문 감독상을 받았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칼날을 현란하게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닌가? 



  꿈을 짓밟혀본 트라우마를 가졌기 때문에 이렇게 할 말을 남길 따름이다. 뭐? 네가 작가가 되겠다고! 아서라. 취직이나 해! 돈이나 벌란 말이야! 이런 말을 가족한테 들어온 나는 맞지도 않은 옷을 입고 이십 년 넘게 직장을 다녔다. 지금의 나는 돈을 벌지는 못하는 ‘작가’가 되었다. 돈과 꿈을 감히 결합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꿈’이 너무나 소중해서 그 영역은 돈으로 계산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겨우 변명할 뿐이다. 영화 ‘귀인’이 적나라하게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면 어땠을까. 이랬으면 좋았을 거라고 희구하는 쪽으로만 스토리를 구성하지 말고, 속까지 다 까뒤집었다면 제법 칼칼한 맛으로 희대의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꿈은 아무 잘못이 없다. 때로는 가시밭과 진흙으로 엉망이기도 한 길이지만,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갔냐는 것이 새겨진다. 다리가 꼬이거나 발바닥에 뾰루지가 났다면, 잠시 멈춰서 자세히 들여다보며 다시 걸을 일이다. 신발에 돌멩이가 들어왔으면 탈탈 털어 신고 다시 나설 일이다. 사실, 그렇게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삶의 온갖 흔적들을 글로 처참하게 까발린 다음에야 겨우 그럴 힘이 움텄다.                







    호모 룩스(HOMO LUX)는 빛으로서의 인간을 일컫습니다라틴어로 인간이라는 호모(HOMO)’와 빛인 룩스(LUX)’가 결합한 단어입니다     

  * ‘호모룩스 이야기는 치유와 결합한 시사와 심리예술과 문화에세이 이야기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호모룩스 이야기-14] 감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