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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선우 Jun 29. 2023

'희생'이 아니라 '행복'이에요.

드라마 <나쁜 엄마> 리뷰

며칠 전 아침 일찍 청계천에서 러닝을 하던 중 한 나이 드신 여성분이 청계천에서 빨래를 하고 계신 것을 봤습니다. 잠깐 스쳐가듯 본모습이었지만 왠지 옛날 사진 한 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예전 천변의 풍경을 담은 흑백 사진을 보면 냇가에 옹기종기 모여 어머니들이 빨래를 하고 계셨습니다. 지금은 물론 세탁기도 생기고 건조기도 생기며 볼 수 없는 모습이지만요. 사회가 발전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과거에 비해 상승하며 가족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광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2000년대 초반의 광고만 해도 어머니들은 주방에서 자식과 남편을 기다리며 요리하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광고에서는 맞벌이하는 부부의 모습 혹은 아내가 늦으면 자식을 케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과거에 비해 변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어머니가 희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비율이 높습니다.   


정확한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어머니가 비율적으로 아버지보다 희생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직 남은 과거의 성불평등의 흔적일까요?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아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 이유를 생물학적인 부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부부 사이에 자식의 등장은 큰 의미입니다.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가족 간 유대감은 전보다 커집니다. 이때 아이의 잉태부터 출산까지 가장 가까이서 함께하는 것은 어머니입니다. 산모와 태아는 출산까지 약 10개월간 육체적으로 함께하며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가족에 대한 어머니의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대감이 희생에 기꺼이 나설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나쁜 엄마>는 어머니의 희생에 대해 생각해 보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나쁜 엄마> 포스터

"나쁜 엄마" 화가 나 외치는 강호(이도현)의 말에 진영순(라미란)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 바른 그녀였지만 자식에게만은 유난히 엄격하고 가혹했습니다. 그에게 항상 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영순은 강호를 쉬지 않고 공부하게 시켰습니다. 그리고 결국 강호는 서울 중앙지검 검사가 됩니다. 그녀는 혹독하게 강호를 교육하며 항상 말합니다. 너희 아빠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알아봐 주라. 이는 영순이 강호를 혹독하게 키운 이유이자 그녀가 강호를 힘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려는 이유입니다. 영순은 힘이 없어 겪은 수모가 자식에게도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더욱 강호를 몰아세웠습니다. 


이야기는 강호의 아버지가 돼지 농장 철거에 반대하면서 시작됩니다. 영순과 해식(조진웅)은 결혼 이후 돼지 농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어느 날 농장으로 건설 용역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들은 돼지 농장을 철거하라고 말하는데 해신은 물러서지 않고 강력하게 반발합니다. 그러고 며칠 뒤, 돼지 농장은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가 나며 전부 불타버립니다. 해신은 용역들을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소송의 결과에 굴복하지 않고 해신은 다시 증거를 모아 담당 검사인 오태수(정웅인) 검사를 찾아갑니다. 검사를 만나고 집에 가던 해신은 건설 용역 무리와 맞닥뜨리게 되고 송우벽(최무성)의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하지만 사건은 자살로 마무리되었고 영순은 강호를 뱃속에 품은 채 남편을 여의게 됩니다. 시골로 이사해 다시 돼지 농장을 연 영순은 '주우리'에서 강호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해신이 영순에게 프러포즈한 뒤 찍은 사진 / 억울함을 풀기 위해 오태수 검사를 찾아간 최해식(조진웅)


검사가 된 강호는 아버지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우벽 그룹 총수 송우벽(최무성)과 차기 대권주자인 오태수(정웅인)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복수를 시작합니다. 송우벽의 해결사로 밑에서 일하며 증거를 모았고 오태수 검사의 딸인 오하영(홍비라)에게 접근하여 결혼까지 하려고 합니다. 사실, 강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이자 동네 친구인 미주(안은진)가 있습니다. 하지만 복수를 위해 강호는 자신의 모든 행복을 포기한 것입니다. 수월하게 흘러가던 복수는 한순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결혼을 앞둔 강호와 하영이 영순을 만나러 주우리에 갔다 올라오던 길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이는 오태수 검사가 지시해서 벌어진 일이 었는데 하영에게 시켜 강호의 물에 약을 타라고 한 것입니다. 사고 이후 강호는 걷지도 못하는 9살짜리 어린아이로 돌아갔습니다. 


왼쪽 : 재활 훈련 중인 최강호  / 오른쪽 : 결국 다시 걷게 된 최강호


어린아이로 돌아간 강호는 영순과 함께 시골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영순은 그간 강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한 시절을 후회하며 따뜻한 사랑으로 보듬어줍니다. 그렇게 어머니의 극진한 보살핌과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강호는 기억을 되찾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사랑으로 강호는 나아졌지만 영순은 강호를 보살피며 병세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녀는 위암 4기 판정을 받았지만 강호를 지키기 위해 치료도 거부한 채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원래대로 돌아온 강호는 마저 못한 복수를 다시금 시작합니다. 송우벽과 오태수를 모두 기소하고 재판에서 통쾌하게 복수합니다. 영순은 재판장에서 병세가 더욱 심해졌지만 강호가 재판을 마칠 수 있도록 죽을힘을 다합니다. 그리고 복수가 성공하고 남편의 억울함이 모두 풀리자 영순은 벌떡 일어나 '만세'를 외칩니다. 영순은 남편의 억울함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던 것일까요? 재판이 끝나고 얼마 뒤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한 재판을 하고 있는 강호(이도현)와 그걸 지켜보는 영순(라미란)


영순의 삶을 위대하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녀는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강호는 사실 혹독한 어머니의 모습이 사랑해서 그런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에게 모질게 대하고 공부시킬 때 그녀 또한 힘들어함을 알고 있었죠. 하지만 강호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사고가 없었다면 평생 이 마음을 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드라마 속 영순은 물론 위대한 어머니이지만 사실 저희에게는 영순보다 더 위대한 저희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각자 사랑의 방식이 다른 뿐 사랑하는 마음은 그 어떤 것보다 거대합니다. 드라마를 보고 부모님의 사랑에 대해 답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내리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랑에 보답하는 효도는 돈도 성공도 아닌 부모님을 사랑하는 자식으로 남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밤 용기를 내어 부모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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