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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Apr 14. 2023

당신의 10년도 혁명이었기를

연애혁명의 애독자인 당신에게

연애혁명. 2013년에 네이버 베스트 도전에서 시작되어 공주영과 왕자림, 그리고 주위 친구들의 성장 스토리를 담아낸 웹툰입니다. 지금은 웹툰을 잘 안 보는 제가 유일하게 연재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일 거 같은 웹툰이기도 하고요. 뻔한 말이지만 그땐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해 이경우의 머리 스타일이 멋있어 보여서 한쪽 머리만 기르고 다니던 중학생이 어느덧 스물 초반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나이를 지나고 있습니다.

현실에선 1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작중에서는 3년의 시간이 흘러 등장인물들이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10년 동안 매주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게 버릇이 되었다 보니,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친구들이 모여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던가요, 10대의 순수한 연애부터 시작해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그때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을 아쉬움 없이 보여주고 미련 없이 떠나는 232작가에게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애혁명의 마지막 <졸업식> 에피소드에서는 친했던, 싸웠던, 어색했던 친구들이 모두 모여 다 같이 졸업식을 진행합니다. 어쨌든 행사이기에 웃음이 넘치고 북적북적하지만 모두 웃는 얼굴 뒤에는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눈물을 가려두고 있을 겁니다. 이젠 정말 서로를 추억으로 남기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졸업식날 평소에는 신경 쓰지도 않았던 사회적 남성성을 갑자기 의식하며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누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억지로 더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우는 친구를 놀렸던 것이 너무 철이 없었네요.

이별은 늘 어렵습니다. 그게 좋아하던 만화와의 이별이든, 연인과의 이별이든, 가족이든, 친구이든 어떤 형태로 다가와도 감정을 추스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죠. 그래서 전 졸업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식적으로 우리들의 만남은 여기까지고, 앞으로의 만남을 기대하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전교생에게 선포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부터 실제로 전국은 물론 해외 각지로 퍼져 나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다른 사회로 나간다는 기쁨보다 과거의 그리움이 더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당연했던 친구들은 이젠 만나기 힘듭니다. 지겨웠던 등굣길과 하굣길, 몰래 학원을 째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다 사 먹었던 컵 떡볶이, 시험이 끝나고 다 같이 찜질방에서 트램펄린을 타고 놀다 주무시던 아저씨한테 혼난 기억까지, 모두 그때만이 가능했던 것들이었죠. 지금은 각자 어깨에 짊어지는 짐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다 보니 몸이 무거워져 움직이기조차 버겁습니다. 다들 철이 들고 있다고 할까요.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뭔가 가슴 한 켠이 조금은 아립니다.

그렇다고 몸은 성인인데 마냥 중학생인 척, 고등학생인 척할 수 없습니다. 저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공주영과 왕자림도 앞으로 그럴 것처럼 영원히 10대에 머무를 수는 없는 법이죠. 벚꽃처럼 수수하게 화려했다 금방 져 버리는 짧은 시절이기에 아직까지 이별이 힘든 걸지도 모릅니다. 각자의 꿈을 향해서 나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져도 벚꽃이 장마철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잊혀지고 이듬해에 꽃 피울 꽃망울을 준비하는 것처럼 새로운 사회에서 앳된 옛날의 모습을 벗고 비와 바람을 견뎌가며 다시 꽃 피울 언젠가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저를 스쳐갔던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응원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신발의 굽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얀 운동화를 신던 당신이 어느새 딱딱한 구두를 신고 있고, 학교 슬리퍼를 신던 제가 어느새 까만 군화를 신고 있습니다. 당신과 영원한 이별을 기약하자는 것도 아니고, 저나 당신이 갑자기 어디로 사라진다는 말도 아니지만, 단지 예전처럼 쉽게 만나 웃고 떠들 수는 없기에 너무 늦기 전에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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