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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May 07. 2023

13일째 되는 날입니다

도전하는 당신에게

도전. 뭔가에 도전해 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꽤 많았던 거 같습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지하철 시간에 쫓겨 집에서 뛰쳐나가 1분마다 시계를 보며 10분 길이의 시공간을 5분으로 단축한다든지, 8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먹으면 왠지 첫 키스를 빼앗기는 느낌의 우설을 간장에 찍어 먹어보는 등, 소박하게 도전을 많이 했습니다.

전역한지 13일째 되는 날입니다. 동네 친구들과의 밥 한 끼와 가고 싶었던 동묘에 가본 걸 제외하면 4평짜리 방 안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음악과 영상을 만들고 있지만 아직 너무 초보적인 단계라 작업이라 칭하기도 부끄럽군요. 슬슬 답답하기도 한데 그럴 때마다 적금을 탈탈 털어 산 노트북을 보면 다시 책상 앞에 앉게 됩니다. 마치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 된 느낌이랄까요. 어떻게든 이 최신 현대 기술의 집합체로 뽕을 뽑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행복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생각만 했던 음악을 만들고 아직 조리개조차 미숙하게 다루는 아마추어지만 영상도 아름아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약간은 눈치가 보이더군요. 바로 전 글에서 눈치 보지 말고 할 거 하라고 썼었는데 죄송합니다. 당장 저조차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네요.

사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은 돈이 하나도 안됩니다. 오히려 돈을 먹는 것들이죠. 이것들로 돈을 벌려면 아마 10년 이상은 꾸준히 해야 할 겁니다. 아니 10년을 한다 해도 돈을 벌 수 있는 보장이 없죠. 그동안 모아놓은 돈으로 4년 정도 된 제 핸드폰을 바꿀지, 아니면 카메라를 살지 몇 주를 고민하다 결국 카메라를 산 저에게 누가 드디어 돈 지랄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약간은 속상했습니다만, 이해는 합니다. 아마 그 사람 눈에는 제가 허황된 꿈을 좇는 철없는 아이로 보였을 거니까요. 세상의 각박함을 온몸으로 겪고 치열한 삶의 흔적이 얼굴 곳곳에 남아있는 진짜 어른으로서 이미 수많은 실패 사례를 봐왔으니 답답할 겁니다.

뭔가 빨리 보여주고 싶은데 아직은 마음이 앞서는 거 같습니다. 하루 종일 집구석에 있다 핸드폰으로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들, 회사에 들어가 커리어를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 약간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예고와 예대를 졸업하고도 일반 직장에 다니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는데 저같이 평생 공부만 해온 범생이가 다른 길로 새겠다고 설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작게나마 인스타 채널에 이것저것 올리고 있고 주위 사람들에겐 큰소리를 잔뜩 해놨지만 사실 속으론 매우 불안합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제 잘못도 있고 아직 아마추어 수준도 안되는 제 실력도 탓이겠죠. 조금만 더 재능이 있었더라면, 목소리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피아노를 초등학교 때부터 쳤었더라면 등 침대에 누워있으면 온갖 잡생각들이 밀려오는데 멈추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그러다 햇빛이 부엌 쪽 창문에서 들어올 때면 어느새 부모님이 퇴근하셔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짧게 인사를 나눕니다.

그래도 그냥 계속 키보드도 두들겨보고, 카메라 조리개도 만져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제가 23년 인생을 살면서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거든요. 아마 지금이 제 인생 가운데 가장 큰 도전이지 않을까 싶은데 성공으로 끝날지 실패로 끝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워낙 관심사가 자주 바뀌다 보니 10년 뒤에는 이것과 아무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실패로 끝나더라도 나중에 세상의 각박함을 온몸으로 겪고 있을 제가 이 글을 다시 봤을 때, 불안해하고 철없는 지금 이 모습이 꽤 용기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만족할 거 같습니다.

도전한지 13일째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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