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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May 13. 2023

야, 너 T야?

MBTI 과몰입러인 당신에게

MBTI. 사람의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눠 자신을 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심리검사입니다. 언제부터 유행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면 좋아하는 음식이나 취향에 더불어 꼭 물어보는 질문이기도 하죠. 중학교 때 단 4개의 혈액형만으로 하루 종일 떠들 수 있었는데 16개의 종류를 가진 MBTI는 오죽하겠습니까. 대학에 갓 들어간 새내기였던 저도 친구를 사귀고 싶었기에 MBTI 검사를 시도했었지만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질문에 한계를 느껴 10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진 검사로 대충이나마 대화에 끼어든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제 MBTI를 아직까지도 잘 모르고 가끔씩 유행하는 '나는 무슨 나무일까', '나의 성격에 딱 맞는 꽃은?' 등의 성격유형검사를 잘 하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라는 말은 고등학교 진로유형검사를 진행할 때도 '매우 그렇다'와 '중간이다'를 랜덤한 규칙으로 마킹했던 저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니 잠시 접어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만사 귀찮아하는 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제가 MBTI와 여타 다른 성격유형검사에 대해 약간 불편한 감정을 갖는 이유는 자신의 MBTI를 밝히는 순간 일종의 프레임이 씌어지는걸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저만 그런진 모르겠지만, 전 사람이 항상 똑같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분 좋은 날이 있으면 우울한 날도 있고, 사람을 만나가도 싶다가 혼자 있어지고 싶을 수도 있잖습니까. 세상 모든 E들이 사람이 좋다고 해서 꼰대 선배들과 회사 사람들이 있는 회식 자리에 가고 싶은 게 아니니까요. 아, E인 당신은 너무 가고 싶은데 사람이 안 모여서 슬프다고요? 축하합니다. 당신은 꼰대입니다.

다시 MBTI 얘기로 돌아오자면, 4개의 알파벳으로 제 인생 전부를 설명하는 게 싫었습니다. 가성비는 다이소를 뺨쳤지만 고작 다이소처럼 쉽게 팔리고 싶지 않은 인생이었거든요. 빨리빨리 친해져야 하는 첫 만남에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저는 굳이 MBTI를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저와 당신이 서로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는 그런 관계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사실 저도 한때 MBTI 과몰입러였습니다. 인스타 게시물에 'ENFP만이 공감할 수 있는 것들', 'ENFP들의 사고 회로' 등을 보면 얼른 스크롤을 내려 낄낄거리고 댓글 창을 눌러 또 다른 ENFP가 쓴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곤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제가 저 답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어떤 고민이 생겨도 20년간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결정을 내리기보단 'ENFP 특' 이런 게시물에서 본 것들을 생각하며 제가 거기에 맞춰가고 있었거든요.

아마 그때부터 MBTI에 대한 반감이 생겼던 거 같습니다. 물론 제대로 검사조차 안 해보고 대충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MBTI를 단정 지은 제 탓도 있겠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제가 결정하는 주체가 아닌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혹시라도 당신의 MBTI가 당신과 너무 잘 맞고 그걸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신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그게 안 돼서 조금 힘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MBTI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건 아닙니다. 저도 아직까지 MBTI 얘기하는 걸 즐기고 좋아합니다. 사실 I와 E밖에 제대로 모르긴 하지만 대화를 이어가는 거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니까요. 그래도 언젠가 MBTI에 밀려 자신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신다면 잠깐 생각을 멈추고 조용히 노트북을 킨 다음

기원전 2세기부터 시작된 별자리를 통해 성격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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