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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May 20. 2023

당신의 청춘은 얼마짜리입니까

청춘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청춘. 푸를 청에 봄 춘자로 보통 20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냥 봄도 아니고 푸른 봄이라니, 선조들도 애지간히 그 시절이 좋았나 봅니다. 사실 제일 행복할 시절이긴 하죠. 아마 지금 막 대학교를 입학하셨다면 새내기라는 무적의 타이틀이 생기기 때문에 웬만한 알콜 중독자에 비견 가는 삶을 살아도 눈치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만큼 무한한 자유와 재미와 쾌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청춘인 거죠.

그런 청춘을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기 20대가 사라지고 30살이 되는 버튼이 있습니다. 누르시겠습니까? 미쳤나고요? 조건 하나를 추가하겠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50억을 드립니다. 누르는 순간 30살 50억 자산가가 되는 것입니다. 약간 고민하시는 거 같으니 글을 다 읽으실 때까지 시간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저도 얼굴에 '난 20살 새내기'라 써져 있는 친구들처럼 생기 가득하게 청춘을 만끽했습니다. 무한한 자유에 취해 행복감에 젖어 살았죠. 그런데 이 청춘이 마냥 밝은 건 아니었습니다.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건 그만큼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서였죠. 슬슬 신경 쓸게 생겨납니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던 선배는 고시원에, 친구는 프랑스, 동기는 방학 동안 자격증을 3개나 따왔네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뒤처지고 있네'

뒤통수를 누가 망치로 때린 거 같습니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의 경쟁심리가 발동하며 이젠 철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술자리도 조금 줄이고 학점부터 챙기기 시작합니다. 분명 같이 놀았는데 성적 장학금을 탄 친구를 보며 꿀교양만 들었을 거라 자위하지만 스토리에 올라온 3개의 전공과 2개의 전공관련교양의 성적을 보고 시무룩해집니다. 역시 인생은 불공평합니다.

그러다 군대를 갔습니다. 뒤처지지 않고자 SKY 학생이면 다 한다는 CPA와 외국어 공부를 계획했었지만 주위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뒤처짐만 경험했기에 공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하기 싫었습니다. 공부한다 해도 누군가는 계속 나를 앞서 있고 내가 죽을 만큼 노력한 결과가 누구에겐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의 일부분이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아마 그때부터 생각을 안 하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미래에 뭐가 되어서 어떻게 돈을 벌어야지란 생각보단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걸 하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의도해서 찾아보고 탐닉했습니다. 덕분에 총균쇠를 딱 한 번 읽어놓고 소설책은 무시하며 거들먹거리는 중2병 환자에서 조금은 문학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으로, 'Run away' 한 곡만 들어놓고 K-pop은 무시하며 칸예를 최고의 예술가라고 말하던 예술병 말기 환자에서 이제는 K-pop의 위대함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인생에서 목표가 사라졌습니다. 20년간 살면서 항상 확고한 목표를 두고 살아왔는데 갑자기 없어지니 이상했습니다만, 나쁘진 않았습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서 다양한 것들을 이것저것 먹어보는 삶도 괜찮은 거 같더라고요. 물론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휴학생만이 할 수 있는 말이기에 바쁘게 현생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에겐 약간 질투심을 유발할 수 있겠습니다만,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

저도 제가 나중에 커서 뭐하고 살지, 어떻게 살지 모르겠습니다. CPA를 따거나 컨설팅 회사에 입사해 커리어를 쌓겠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니면 어떤 한 가지에 광인처럼 깊게 몰두해 그 분야의 장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습니다. 그냥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순간을 즐기는 당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이해가 되지 않는 수업을 듣고 있어도, 선생님이 되어 말 안 듣는 아이를 혼내고 있어도, 갓 회사에 들어가 온갖 잡일을 맡고 있어도, 미래의 어떤 것에 모든 것을 거는 그런 삶이 아니라 그냥 지금을 즐기며 사는, 불안정한 미결정의 상태를 오히려 즐겨버리는 그런 삶을 살기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물처럼 유해야 할 때도, 얼음처럼 단단해야 할 때도 필요하지만 그 중간 무엇도 아닌 슬러시 같은 삶은 지금 아니면 즐기지 못하니까요.

자, 다시 질문으로 돌아와서, 버튼을 누르시겠어요? 만약 지금의 청춘이 미래의 50억을 위한 청춘이라면 당장 누르시는 게 맞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청춘은 50억보다 가치 있다는 뜻이겠죠.

당신의 청춘이 얼마짜리이기에 빚을 써가면서까지 주변 사람과 미래를 위해 대출해 주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지금 이 순간 청춘의 값어치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것과 견주어봐도 지금의 당신과는 바꿀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일단 오늘 제 청춘의 값어치는 9,990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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