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가 되고 싶었던 평범한 아이의 앨범 리뷰
노비츠키. 얼마 전 나온 빈지노의 앨범입니다. 거진 7년 만에 발표하는 앨범이라 많은 리스너들의 기대가 있었고, 저 역시 학창 시절 아빠 차를 타고 오렌지색 터널을 지날 때면 말기 암 환자로 빙의해 '내게도 마지막 호흡이 주어지겠지'를 뒷좌석에서 외치다 누나한테 얻어맞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닐 정도로 빈지노를 좋아했습니다. 뭔가 빈지노의 노래를 들을 때만큼은 정말 자유로운 청춘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의 노래가 지겨워지려야 없겠지만 전역 이후 유튜브에 곡 몇 개 올리는 거 빼고는 아무 소식이 없어 섭섭하려던 찰나 앨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한정판 CD를 구매하진 않았지만 저 역시 꽤나 기다리고 있었고, 앨범 단위로 노래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1시간 만큼은 앨범 전체를 돌려 보기로 마음먹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뿅뿅 거리는 신기한 사운드, 묵직한 목소리, 난해하지만 일단 사람들이 명반이라 하니까 명반인가 보다 하고 한 사이클을 돌렸습니다.
두 번째 사이클을 돌렸습니다. 이번에는 힙합엘이의 인터뷰를 보고 난 뒤 들었습니다. '평범할 거면 뭐 하러 예술을 해요?'라는 그의 뼈 때리는 말과 함께 살만 남은 전 다시 한번 집중해서 들었습니다. 아 물론 스피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고개를 끄떡거리고 있을 만큼의 집중력은 없어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사이클을 돌리고 나서 확신했습니다.
전 빈지노의 감각을 이해할 만큼 귀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요.
최근 들어 어떤 노래를 들어도 설레지가 않습니다. 유명 가수나 래퍼가 신곡을 냈다 하면 한번 들어볼까? 해서 듣고 딱히 플레이리스트엔 저장하지 않는 그런 행태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쭉 살펴보니, 대부분 2000~10년대 노래가 많더라고요. Black Eyed Peas나 비욘세, Puff Daddy, 국내로는 다이나믹듀오나 프라이머리 같은 노래들이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들으면 약간 촌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는데 전 귀가 여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새로운 것들이 잘 안 들어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노비츠키도 몇 곡만 취향에 맞고 나머지는 쉽게 손이 안 가요. 평범하지 않아 예술인 건 맞지만 전 보통 샤워할 때 예술 활동을 하진 않아서인지 과거 쿵짝 노래가 더 취향에 맞는 거 같습니다.
물론 빈지노 덕분에 틱톡 챌린지로 뒤덮인 음악 시장에서 새로운 사운드를 듣게 된 것은 너무나 감사합니다. 단지 제가 아쉬운 건,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저의 음악 취향 때문에 새로운 걸 느끼지 못하는 제 자신입니다. 아이팟에 유튜브 불법 음원 추출로 파일명을 정리하며 노랠 다운받은 습관이 현재 스트리밍 시대에서 손때가 묻은 mp3 파일들을 향한 일그러진 소유욕으로 변질된 건지, 아니면 지금 나오는 노래들을 받아들이기에 제 귀가 굳어버린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사람들이 명반이라고 말하기 전에 제가 먼저 명반이다라고 느끼는 그 순간을 가져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비츠키 앨범을 비롯해 소위 사람들이 명반이라고 불리는 앨범들을 많이 들어보고 노력했지만, 이미 귀가 닫힌 건지 그들이 느끼는 전율과 그들만의 공동체 의식을 느끼긴 어렵더라고요.
옛날 노래가 좋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지만, 저도 힙스터같이 비주류 음악에 해박하고, 새로 나오는 장르에 미쳐 살아도 보고 그들이 느끼는 공동체 의식을 느껴보고 싶어 이리저리 찾아다녔던 제 모습과 실제 저의 음악 취향 사이에 발생한 괴리 때문에 이런 글을 적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의 음악적 취향이 어떻게 변해 갈진 모르겠지만, 이후에 나오는 빈지노의 앨범은 마음껏 즐길 수 있길 바라며 그래도 최대한 다양하게 이것저것 맛봐야겠지요. 아, 물론 과거 쿵짝 리듬의 노래는 평생 동안 들을 예정이니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비욘세&제이지 부부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ps. 아직도 어릴 적 들었던 노래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스마트폰을 늦게 바꿔준 부모님이 이 문제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인 거 같습니다. 훗날 제 자식이 이런 글을 쓸 수도 있으니 15살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을 사줘야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