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한 짬뽕 마지막 면발 한줄기를 “쪼옥~” 하고 입에 넣던 그 순간, 내 하얗던 옷에 주황색 짬뽕 기름 자국 뚝하고 떨어졌다. “이구~칠칠맞게~이리 와봐’” 비누로 쓱싹쓱싹 비벼대고 감쪽같이 얼룩을 지워주던 따뜻한 남자가 있었다. 나의 첫사랑이자, 불안한 승무원 준비생 생활을 함께 해주던 남자친구.
승무원 준비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이어트다. 어린 시절 네 식구의 식탁에서 요리하는 엄마는 열외로 두고 아버지, 동생 그리고 나 이렇게 치열한 반찬 쟁탈전이 벌어졌다. 밥상 전쟁터에서 훈련을 받은 대가로 평생을 전투적으로 식사를 한다.(물론 비행을 할 때는 이 전투력이 매우 도움이 됐다)
누가 봐도 말랐다는 느낌의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합격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대다수의 합격자들이 증명을 하고 있었다. 순간순간 스스로의 식욕과 싸워야 하는 건 승무원을 꿈꾸는 내 숙명이었다. 위가 정말 줄어든 건가? 약간의 자만심이 고개를 빼꼼히 들 때쯤, 눈 앞에 떡볶이가 코웃음을 쳤다. 갑자기 떡볶이가 크게 확대되는 착시 현상까지 보였다. 그 순간 파블로의 개처럼 침이 꼴깍하고 넘어갔다. 떡볶이와 만두 앞에서 이성을 상실하도록 만드는 마법에 걸린 듯하다. 그렇게 떡볶이를 째려보고 있을 때
“그래도 예뻐. 그렇게 먹고 싶으면 먹자” 라며 떡볶이를 같이 먹어주던 남자친구가 있었고 내 힘든 준비생 시절의 하루하루는 꽤나 보람찼다.
지잉~ 지잉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여자였다.
“누구누구 맞죠? 제가 OO 여자친구거든요. 왜 자꾸 연락을 하시는 거예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다. 갑자기 본인이 여자친구라니!
"전화 오신 분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전 이 집을 2013년에 매매를 했고요, 등본 보시면 여기 전입신고 일자가 6월 13일로 되어있죠? 여기 보시면 나와있으니까 다시 한번 보세요.”라고 따지고 싶었다.
나~ 원~ 참! 아파트 점유권 회복을 위한 명도소송이라도 당장 진행하고 싶다. 그런데 생전 모르는 여자가 이토록 당당하게 주장을 하는 데 분명 그의 몫도 있을 것이라. 전화를 끊고 그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지만, 들려오는 건 두 남녀가 싸우고 있는 소리였다.
나도 행복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딸이고 싶었고, 내 손으로 돈도 벌어보고 싶었다. 잘못한 건 그였는데, 자꾸 화살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자꾸만 모자라다고 나를 탓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언제 밝은 날이 찾아올까. 불안한 미래지만, 나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지금은 비록 준비생이지만 승무원 유니폼 멋지게 입고 나타나서 자랑할 날만 기다렸다. 그때까지 함께 일 줄만 알았는데, 가슴 아픈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뭐 하나 이뤄놓은 것 없는 승무원 준비생.
내 처지가 참 처량하다.
눈물을 닦다 보니 콧물도 난다.
콧물을 스~~윽 닦다 보니 코피다.
그것도 쌍코피.
그 사건 이후, 내 의지로는 잘 안되던 강제 다이어트가 시작되었다. 떡볶이를 봐도 눈물이 나고, 라면 봉지는 뜯을 힘이 없어서 못 먹겠고 그렇게 맛있던 소고기만 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맛집은 더 싫다. 여기도 저기도 에브리웨얼 그와의 추억만 상기될 뿐이었다. 뚝뚝하고 흘러내리는 눈물. 내 눈물과 함께 쭉쭉 빠지는 살들. 먹지를 못하니 빠질 수밖에 없다. 먹으면 다 토해내니 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O O O 씨, 많이 약해 보이는데, 일하는 거 괜찮겠어요? “ 최종 면접관이 물었다.
자주 들어봤다면, 익숙했겠지만 태어나 처음 들어보는 약해 보인다는 말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 그렇게 보이십니까? 겉으로는 약해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보기보다 내면이 강한 사람입니다.”
(빙긋)
그리고 그 후, 합격 조회 창에 이름을 입력한
<축하드립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항공사 승무원으로 입사를 했다.
한 남자를 둔 쟁탈전은 일방적으로 내가 포기한 것으로 끝났지만,
그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큰 선물을 나에게 주었다.
첫 번째 승무원 합격을 할 수 있도록 약해 보일 정도로 능동 다이어트를 할 수 있게 해 준 것!
두 번째 왕년에 나도 xxkg였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진실의 숫자
이 글을 빌어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때 그 여자 만나줘서
“고맙다, OO아!”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전화위복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상처를 밝히고 싶지 않고, 묻어두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참으니까 더 곪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의 대나무 숲에서 말이다.
나의 힘든 아픔과 상처를 돌아보고, 해소하고 그 과정에서 치유나 극복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내가 처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이유다.
아픈 경험은 몸서리치게 시리지만, 글을 쓰기에는 좋은 소재가 된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작가가 되기에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 더 다행인지도 모르겠다.